“새벽2시 병원 도착했는데 71번째”… 영유아검진 ‘예약 전쟁’
“인기 병원은 홈피 예약 1초컷”
돗자리 깔고 캠핑의자 펴고…
새벽4시인데 200여명 오픈런
수가는 낮고 악성민원은 급증
기피 늘면서 지정 기관 10%↓

“연차 쓰고 새벽 2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제 앞에 60~70명은 있더라고요.”
지난 1일 새벽 4시, 야심한 시간이지만 유일하게 불이 켜진 서울 노원구의 한 상가에는 영유아건강검진을 예약하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기 인원만 200여 명이 몰리면서 2층에 위치한 소아과 앞에서부터 시작한 대기 줄은 지하 1층까지 내려갔다가 옥상까지 이어졌다. 긴 대기시간을 견디기 위해 돗자리나 캠핑용 1인 의자까지 준비한 사람도 많았다. 이모(35) 씨는 “다른 곳은 길어야 10분 봐주는데 이곳은 길면 40분까지 아이들을 꼼꼼히 봐준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9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국가가 정한 무료 필수검진이자 비만, 뇌성마비, 성장·발달 이상 등을 조기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유아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부모들이 ‘예약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이 0.95명으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검진 지정 의료기관은 갈수록 줄면서 예약 전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 영유아건강검진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서울 구로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홈페이지를 통해 검진 예약을 받고 있다. 일주일 치 검진을 예약할 수 있지만 ‘1초’ 만에 마감되는 탓에 맘카페에서는 “서버 시간을 보여주는 초 단위 시계를 켜두고 있다가 정각에 맞춰 눌러야 한다” 는 등 ‘예약 꿀팁’이 공유되고 있었다. 경기에 위치한 한 2차 병원도 매월 1일 오전 9시부터 한 달 치 예약을 받고 있지만 이 역시 10분이 지나지 않아 마감됐다.
영유아 검진 지정 의료기관은 2020년 4121곳에서 지난 1분기 3713개소로 10%가량 줄어들었다. 소아청소년과 의원도 2020년 1분기 2212곳에서 올해 1분기에는 2134곳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89곳으로, 신규 개원(59곳)보다 많았다. 개원 대비 폐업률은 150.8%에 달했다.
현장에서는 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낮은 수가 등을 이유로 영유아건강검진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보호자의 요구사항을 조금만 만족시키지 못해도 악플은 물론 소문이 나기 때문에 검진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성평등가족부는 이날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6~2030)을 확정했다. 이번 계획에는 아동양육가족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2026년부터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매년 1세씩 확대해 2030년까지 만 13세 미만 아동으로 넓히는 내용이 담겼다. 또 미혼·한부모 임산부에 대한 경제·의료 지원을 강화하고, 생계가 어려운 임산부에게는 긴급복지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노지운·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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