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조심해”
“낯선 사람 조심해.”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공익광고에서도 어린이와 여성에게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안전 교육은 늘 비슷했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 것, 친절을 쉽게 믿지 말 것, 위험해 보이면 피할 것. 위험은 바깥에 있고, 안전은 스스로를 잘 방어하는 데 있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는 점점 궁금해졌다. 정말 그렇게 경계하는 것이 성폭력의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우리를 안전하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이길래, 왜 안전을 개인의 경계 능력에 맡기게 되었는가.
한국 사회의 성폭력 통계를 보면, 많은 경우 가해자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다. 친구, 선배, 연인, 가족, 직장 동료처럼 이미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가까운 관계 안에서 발생한 성범죄에서 피해자는 더 오래 침묵하고, 더 많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신고를 망설인다. 그럼에도 사회는 여전히 어린이와 여성에게 “조심했어야지”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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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본 여행 중에 성희롱, 성추행을 겪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 충격의 여파가 남아 있다. 이 사진은 비 오는 날 먹구름 끼어 어두운 하늘에 무지개가 뜨는 걸 보고 찍은 장면이다. [사진-이은선 제공] |
최근 일본 여행 중 성희롱과 성추행을 겪었다. 언어교환과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플랫폼을 통해 사람을 만났고, 나는 그것이 비교적 안전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 중에는 그런 플랫폼을 통해 오래 이어지는 우정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SNS를 통해 관심사를 나누며 관계를 이어온 사람들이 많은데,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일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와 한일의 문화에 대해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상대는 나에게 성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통로가 언어교환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당황했다. 이후에는 상대가 그런 상황에서 불편해하고 당황하는 내 반응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성폭력을 겪고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공포와 모욕감만이 아니었다. “내가 낯선 사람을 믿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건가?”라는 자책이었다. 왜 그런 자리에 나갔는지, 왜 친절을 경계하지 못했는지, 왜 조금 더 의심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계속 검열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여행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비슷한 경험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었을 때 처음 그런 일을 겪었다. 그래서 더 쉽게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나’라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가해자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심문하게 된다. “왜 만났어?”, “왜 그때 바로 도망가지 못했어?” 사회는 가해자의 행동보다 피해자의 선택을 더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렇게 안전은 어느새 개인의 책임이 된다. 피해를 막지 못한 사람은 충분히 조심하지 못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1366(여성긴급전화) 상담을 받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타인을 믿은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상대의 가해 행위였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대화를 나누고 문화를 교류하고 새로운 관계를 기대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쉽게 피해자의 선택과 판단을 검열한다. 결국 피해자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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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고 위험을 예측하며 살아남고자 하면,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된다. 사진은 이번 일본 여행 중에 한 비건 식당에서 만난 독일인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다이어리를 교환해서 적은 내용이다. (사진-이은선 제공) |
물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경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지금의 ‘안전’ 담론이 지나치게 개인의 방어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약자에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타인을 경계하고, 위험을 예측하며 살아남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아가는 삶은 사람을 고립시킨다.
나는 살아오며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도 많이 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잃었을 때 친절하게 안내해준 사람, 비건 식당에서 만난 옆자리 여행자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 경험, 우울에 대한 글쓰기를 함께하며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던 사람들, 처음 만난 어린이와 함께 스티커를 붙이며 웃었던 순간들. 우리는 낯선 존재들의 친절과 환대 속에서 살아간다.
만약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는 말만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환대도, 기회도, 모험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사회. 그것이 안전한 사회일까?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서 종종 말하듯,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장애인 개인의 몸/장애가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설계다. 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은 개인이 얼마나 완벽하게 경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와 구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 신고 이후에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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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연결이 있는 사회로”라고 적혀 있다. [사진-이은선 제공] |
이 글은 “낯선 사람도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는 성폭력 피해 경험 이후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하게 되는지, 왜 안전의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려는 마음마저 죄책감이 되어버리는지, 안전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생각해보길 바라는 것이다.
[필자 소개] 이은선. 고등학생 시기 학칙 개정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활동을 하며 청소년 인권 운동을 만났다. 청소년이 학교와 사회에서 그저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부당한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 고민하며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폭력에 반대하며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시민입니다』, 『노키즈존 한국 사회』 등을 공저했고 청소년의 경험과 권리, 젠더화된 규범에 대해 글을 써왔다. 주변 존재들에 물들고, 물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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