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공포'에 갇힌 퇴직연금…가입자 발목 잡는 '심리적 장벽'

김남희 기자 2026. 6. 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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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연 "퇴직금 '금융자산' 아니라, 원금형 '최후의 안전판' 간주"
가입자들, 실적배당상품의 효율·자산증식 수단 가치 낮게 평가
"퇴직연금 고객 근본적 인식·가치체계 전환할 깊은 소통 필요"
[출처=구글 ]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원리금보장상품 편중 현상이 장기 고착화되고 있다. 정부가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도입하는 등 실적배당상품 확대를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으나, 가입자들의 강한 위험회피 성향을 깨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9일 보험연구원은 이같은 가입자들의 원리금보장상품 선호 행동을 단순한 투자 역량 부족이나 위험회피 심리를 넘어 '혁신저항이론(Innovation Resistance Theory)' 관점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해 그 근본 원인을 규명했다. 

이날 보험연구원 연구진(장준호·성주호)는 퇴직연금 실적배당상품 수용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심리적 저항요인을 규명하기 위해 5대 혁신 장벽(사용·가치·위험·전통·이미지 장벽)을 독립변수로, 현재 가입행태 및 향후 가입의도를 종속변수로 설정하고 구조모형 분석을 실시했다.

◆"퇴직연금 '금융자산' 아니라, 원금형 '최후의 안전판'으로 간주"

우선 전통장벽(TB)의 지배적 영향력이 존재했다. 전통장벽은 현재 가입행태와 향후 가입의도 모두에 가장 강력한 부(-)의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나타났다. 이는 퇴직연금을 자산증식 목적의 '금융자산'이 아니라, 원금이 보장되어야 하는 '노후 최후의 안전판'으로 간주하는 규범적·관성적 가치지향이 가입자들의 심리 저변에 깊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였다. 

또 제한적 합리성에 기반한 가치장벽(VB)도 존재했다. 가치장벽 역시 두 종속변수 모두에 유의한 부(-)의 영향을 미쳤다.

이는 가입자들이 실적배당상품의 장기적인 재무적 효용이나 자산증식 수단으로서의 적절성을 주관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년 단위의 단기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인 시장 환경에서 가입자들이 '근시안적 손실회피(Myopic Loss Aversion)' 편향에 사로잡혀 실적배당상품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출처=보험연구원]

◆"가입자 내면에 안착한 원리금보장 관행 없앨 정교한 접근 필요"

위험장벽(RB)의 반전 결과도 있었다. 통념과 달리 원금손실 우려를 뜻하는 위험장벽은 현재 가입행태에 유의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나아가 미래 가입의도 구조에서는 가설과 반대 방향인 정(+)의 영향력을 보여 가설이 기각됐다. 이는 손실위험에 대한 인식이 무조건적인 기피로 이어지기보다, 노후 소득보장에 대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판단 기제 속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외 가입 절차의 복잡성이나 자본시장 상품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 등은 실제 가입 기피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아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 결과는 투자 한도 확대나 디폴트옵션 도입 등 외부적인 제도 보완만으로는 국내 퇴직연금의 저수익 고착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음을 명확히 경고했다. 

보험연구원은 "실적배당상품의 저변을 실질적으로 넓히기 위해서는 가입자의 내면에 자리 잡은 원리금보장 관행을 걷어낼 수 있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퇴직연금 단기적 유인 넘어선 '근본적 인식 전환' 전략

무엇보다 가입자가 직면한 주관적·제한적 합리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연구진은 실적배당상품이 가진 장기 수익성, 분산투자 효과, 실질 구매력 보전 기능(인플레이션 헤지) 등의 구체적 효용을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가입자 집단을 수용 지연자·반대자·거부자 등으로 세분화하여 각 장벽의 작동 방식에 맞춘 맞춤형 정책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단순히 모바일 앱을 편하게 만들거나(사용장벽 완화), 투자 상품 위험성만을 경감시키는 조치(위험장벽 완화)로는 장기 고착화된 원리금보장 편중 현상을 깨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퇴직연금을 대하는 가입자들의 근본적인 인식과 규범적 가치체계를 전환할 수 있는 장기적인 소통 전략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E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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