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배 비싸도 고객중심 전략 통했다"… LG전자, 대만서 워시타워 연 1만대 돌파
"작지만 ASP 높은 시장… 아시아 전략 검증 거점"

"430만원짜리 워시타워를 1년에 1만대 팔겠다고 했더니 다들 웃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1만대를 훌쩍 넘겼습니다."
지난달 31일 대만 타이베이 신의구에 위치한 원동백화점 A13점. 백화점 8층 가전 매장 중심부에 자리 잡은 LG전자 전시장 앞에서 만난 김건일 LG전자 대만법인장은 대만 시장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구 2350만명의 대만은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보다 작은 시장이다. 하지만 LG전자에게 대만은 단순한 판매 거점이 아니다.
프리미엄 가전의 성공 가능성을 검증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를 시험하는 전략 시장이다. 워시타워와 스타일러, 제습기, 공기청정기, 스탠바이미 등 LG전자의 주요 제품들이 잇따라 성과를 내며 아시아 시장 공략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법인장은 "대만은 판매량보다 제품 평균판매단가(ASP)가 높은 시장"이라며 "태국은 세탁기 판매량이 대만보다 3배 정도 많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대만 시장이 더 크다. 그만큼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강하다"고 말했다.
LG전자 측은 대만이 소비자들의 신기술 수용 속도가 빠르고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신제품과 신사업을 가장 먼저 시험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로 대만을 주목하는 이유다.
대표 사례가 워시타워다. LG전자는 워시타워 출시 당시 현지 판매 가격을 한국 돈으로 약 430만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당시 대만 세탁기 시장 평균 가격의 3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김 법인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연간 판매 목표를 1만대로 제시했는데 현지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많았다"며 "결과적으로 1만대를 훌쩍 넘겼고 LG전자가 대만 세탁기 시장 1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대만 특유의 주거 환경이 워시타워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대만은 연평균 습도가 75%에 달할 정도로 습하고 최근 주거 공간도 점차 좁아지고 있다.
건조기에 대한 수요는 커졌지만 별도 설치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수직으로 결합한 워시타워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회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만 소비자들의 생활 환경을 반영한 신제품도 선보인다. 이달 말부터 판매될 예정인 65㎝ 폭 워시타워가 대표적이다.
해당 제품은 기존 대형 모델과 소형 모델의 중간 크기로 개발됐으며, LG전자 세탁기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보다 해외 시장에 먼저 출시되는 제품이다.
김 법인장은 "대만 아파트 베란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뒤 사업부에 직접 개발을 요청한 제품"이라며 "대만 소비자들의 생활 환경을 반영한 맞춤형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스타일러 역시 대만에서 LG전자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한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시장이 대만이다.
김 법인장은 "대만 고객들은 스타일러를 현관에 두고 외부 오염물질을 차단하거나 오토바이 헬멧을 관리하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며 "스타일러가 사실상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판매되는 스타일러의 약 82%는 대용량인 5벌용 모델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옷장 대신 스타일러 두 대를 설치해 의류 보관 공간으로 활용할 정도다.
AI 전략도 대만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대만 가전업계는 AI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냉정하다는 것이 현지의 평가다.
그는 "모든 브랜드가 AI를 이야기하지만 소비자들은 실제로 어떤 편익을 제공하는지 궁금해한다"며 "LG전자는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실제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AI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AI 세탁기는 세탁물의 무게뿐 아니라 오염도까지 분석해 세탁 시간과 물 사용량, 세제 사용량을 스스로 조절한다. 사용자는 LG 씽큐(ThinQ) 앱을 통해 절감된 에너지 사용량까지 확인할 수 있다.
구독 사업 역시 대만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만은 말레이시아에 이어 LG전자가 해외에서 두 번째로 가전 구독 사업을 도입한 국가다.
김 법인장은 "구독의 가장 큰 의미는 제품 판매가 아니라 고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구매 이후 고객 경험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LG전자는 대만에서 세탁기와 TV, 공기청정기, 제습기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공기청정기와 제습기의 경우 글로벌 판매량 절반 이상이 대만에서 발생할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김 법인장은 "대만은 소비자 반응이 빠르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 수용하는 시장"이라며 "성공과 실패 경험을 축적해 다른 국가로 확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만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LG전자의 미래 가전 전략을 검증하는 시험장"이라며 "AI와 프리미엄 가전을 앞세워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대만)/글·사진=이상현 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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