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엔비디아는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걸까?

최진홍 기자 2026. 6. 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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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DSX' 올라타 GW급 AI 팩토리 짓는다...칩 사는 고객에서 같이 짓는 동업자로
55MW로 시작해 기가와트까지, 하이퍼클로바X·서울 월드 모델까지 전 스택 묶은 동맹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만났다. 

통상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국내 기업은 GPU를 구매하는 고객 자리에 머물렀지만 네이버는 앞으로 엔비디아 칩과 시스템, 소프트웨어, 모델까지 전 영역을 함께 설계하고 사업의 성과와 위험을 공동으로 떠안는 동업자로 올라설 전망이다. 토큰이 새로운 생산 단위가 된 시대에 그 토큰을 찍어내는 공장의 설계도를 엔비디아와 공유하게 됐다는 뜻이다.

엔비디아와 네이버는 네이버가 엔비디아 DSX 플랫폼을 활용해 소버린 AI 인프라를 확장한다고 8일 밝혔다. 초기 55메가와트(MW) 규모로 시작해 향후 기가와트(GW)급까지 확장하며 기업과 산업계, 정부를 지원할 풀스택 엔드투엔드 AI 플랫폼을 설계하고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협력의 핵심 무대는 네이버의 차세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각 세종'이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이 거점에 DSX 기반 AI 클라우드가 투입된다. 네이버와 엔비디아는 각 세종부터 기가와트급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1GW는 각 세종 최대 용량의 약 4배에 달하는 규모로 엔비디아 최신 GPU 수십만 장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확장 경로는 단계별로 짜였다. 2027년 상반기 55MW 가동을 신호탄으로 같은 해 100MW, 2028년 200MW까지 규모를 키우고 종착점인 GW급으로 나아간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날 네이버 사옥 1784에서 만나 사업 로드맵과 글로벌 시장 공동 진출 방안을 논의했다. 양사는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유럽, 중동 시장까지 함께 AI 인프라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방향에 이미 뜻을 모았다.

이번 협력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DSX라는 플랫폼 자체의 존재감이다.

엔비디아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베라 루빈 DSX AI 팩토리 레퍼런스 디자인과 옴니버스 DSX 블루프린트를 공개했다. AI 팩토리의 설계와 구축, 운영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가이드로, 물리적으로 정밀한 디지털 트윈 기반 AI 인프라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DSX는 모듈형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와 API, 레퍼런스 디자인, 엔비디아 가속 컴퓨팅 플랫폼, 파트너사 기술을 하나로 통합해 AI 팩토리의 설계·배포·운영 전 과정을 지원한다.

네이버가 15년 가까이 쌓아온 대규모 GPU 클러스터 운영 역량과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노하우가 이 플랫폼에 맞물릴 전망이다. 

두 회사는 DSX 플랫폼, DSX OS, DSX 맥스LPS를 중심으로 협력한다. 맥스LPS 소프트웨어는 메가와트당 토큰 처리량을 끌어올려 토큰 비용을 최소화하고, DSX OS는 수명주기 관리와 멀티테넌트 AI 팩토리 운영을 돕는 운영 계층을 제공한다. 클라우드 사업자가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매출을 뽑아내도록 설계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협력은 인프라에 그치지 않고 모델 층위로 확장된다. 네이버는 엔비디아 네모트론 계열과 자체 데이터, 학습 역량을 결합해 거대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고도화하며, 한국 기업 최초로 엔비디아 네모트론 연합에 합류한다. 

커서와 미스트랄AI, 퍼플렉시티 등 12개 글로벌 탑티어 AI 기업이 참여하는 연합이다. 네이버는 사전학습과 후학습, 강화학습 등 오픈 모델 개발 과정에 기여한다. 네모트론 3 울트라 오픈 모델을 자체 데이터로 파인튜닝한 하이퍼클로바X는 유럽과 중동 소버린 AI 이니셔티브를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도 맡는다. 올해 하반기에는 엔비디아 네모클로 블루프린트 기반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피지컬 AI로도 보폭을 넓힌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지난 3월 엔비디아 피지컬 AI 플랫폼 코스모스를 활용해 서울의 실제 공간 데이터를 재현한 서울 월드 모델을 공개한 바 있다. 네이버는 코스모스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에 자사 도시 거리뷰 데이터와 공간 모델링 기술을 결합해 이 모델을 고도화하며, 스마트시티와 로보틱스, 산업 자동화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방침이다. AI 에이전트부터 AI 팩토리, 피지컬 AI까지 전 스택을 하나의 동맹 안에 묶은 셈이다.
데이터센터 서버실. 사진=네이버

그림은 더 선명해지고 있다. 당장 황 CEO는 5일 입국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의장과 삼겹살 회동을 가졌고 SK그룹 사장단과는 깐부치킨에서 치맥 회동을 했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SKT와는 피지컬 AI 데이터센터를, 현대차와는 로보틱스를 두고 각각 협력을 다졌다.

한국 전체가 엔비디아 생태계의 부품과 전력, 응용을 나눠 맡는 분업 구도가 짜인 가운데 네이버가 가져간 몫은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그리고 소버린 AI다.

소버린 AI라는 키워드에 네이버가 무게를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르푸리 부사장은 네이버 강점에 대해 한국어와 도메인 특화 AI 모델을 이미 구축했고 이를 한국의 소버린 AI 요구에 더 적합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데이터 주권과 현지 규제를 이유로 자국 통제권 안의 AI 인프라를 원하는 흐름이 강해지는 가운데 네이버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역량과 DSX를 결합해 미국 빅테크 클라우드의 대안을 자처하려는 그림이다. 유럽과 중동을 겨냥한 인프라 구축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이해진 의장은 "이번 동맹을 통해 전 세계 각 지역과 국가가 독자적인 소버린 AI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며 "네이버가 보유한 기술 인프라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으로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남는 변수는 전력이다. GW급은 원자력발전소 한 기 출력에 맞먹는 전력을 요구한다. 엔비디아가 DSX 생태계에 에메랄드 AI, GE 버노바, 히타치, 지멘스 에너지 등을 끌어들여 전력망 확장과 안정적 전력 공급을 지원하도록 한 것도 에너지가 AI 인프라 확장의 핵심 병목임을 보여준다. 55MW에서 200MW를 거쳐 GW로 가는 단계적 설계 자체가 국내 전력망과 부지, 냉각 인프라의 현실을 의식한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미르푸리 부사장도 확장 시점과 규모에 대해서는 전력 확보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넓혀가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미국에서 수GW급 AI 팩토리 건설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아시아에서 엔비디아와 공동 사업 형태로 GW급 인프라를 짓고 그 위에 소버린 모델과 피지컬 AI까지 얹는 사례는 흔치 않다. 

네이버가 각 세종을 발판으로 이 로드맵을 현실로 옮긴다면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경쟁 구도를 넘어 아시아 소버린 AI 인프라의 기준점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열린다. 화려한 회동 뒤에 받아든 설계도가 결국 매출로 바뀌는지가 이번 동맹의 진짜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