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선관위

김동인 기자 2026. 6. 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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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투표용지를 줄이려던 선관위의 대응이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선관위의 부실 관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먹잇감을 주는 결과가 되었다.
6월4일 새벽,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인파가 모였다. ⓒ시사IN 박미소

투표소에 준비된 투표용지는 선거인 수보다 적다. 유권자 상당수는 이 사실을 6월3일에야 처음 알게 됐다. 6·3 지방선거 투표가 막바지로 흐르던 이날 오후, 서울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멈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투표 행렬은 몰렸지만 표를 행사할 수 없어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6월8일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투표용지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어 용지를 추가로 보낸(송부한) 투표소는 전국 140곳, 이렇게 송부한 추가 용지를 실제로 사용한 투표소는 전국 91곳이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투표가 잠시라도 중단되고 유권자들 대기하는 문제가 발생한 투표소는 26곳이나 되었다. 서울은 송파구(15곳)를 비롯해 총 22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중단되었고, 부산, 대구, 인천, 경기 김포시에서도 투표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6·3 지방선거는 61%로 역대 두 번째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효율을 극대화하려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의 선거 사무 방침 때문에 발생했다. 선거에서 투표율 100%란 존재하기 어렵다. 사전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이미 투표를 마친 유권자도 존재한다. 이번 6·3 지방선거의 사전투표율은 23.51%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터였다. 선거인 수만큼 투표용지를 인쇄해 준비하면 남는 투표용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각 지역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선거인 수 대비 특정 ‘비율’만큼만 투표용지를 준비한다. 버리는 투표용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특정 투표소에서 예상을 뛰어넘어 투표율이 높을 때 발생한다. 서울시 송파구 선관위, 인천시 선관위 등은 선거인 수의 50%만 투표용지를 인쇄했다가 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50%는 중앙선관위가 설정한 ‘최소 가이드라인’이다. 기존 가이드라인은 최소 60%까지 투표용지를 준비하게 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하향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6월3일 밤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투표용지는 최근 선거의 투표율과 예상 사전투표율을 고려해 구·시·군 선관위에서 결정한다. 송파구는 투표소가 총 146개인데, 일부 투표소에 (투표하러 온) 유권자 수가 예상보다 많아 그 지역(투표소)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설명했다. 명확한 예측 실패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투표장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선관위가 투표용지 관리의 효율성에 집착하게 된 배경이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5월부터 12월까지 중앙선관위 정책연구 용역으로 진행한 ‘선거 절차사무 개선방안’ 보고서에는 투표용지 관련 사무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 해당 연구 기간에는 마침 2022년 6·1 지방선거가 시행되기도 했다.

선거에서 투표용지는 크게 둘로 나뉜다. 사전 투표 시 현장에서 ‘투표용지 발급기’로 출력해 나누어주는 투표용지와 본 선거일에 맞춰 미리 각 지역 선관위가 인쇄업체에 발주해 인쇄하는 투표용지다. 그런데 본 선거일에 쓸 투표용지를 인쇄할 때 여러 난항이 따른다. 우선 시간이 촉박하다. 투표용지 인쇄는 후보자 등록 마감(5월15일) 이후 진행되는데, 약 20일 이내에 인쇄와 검수·교부·송부가 모두 완료되어야 한다. 일부 지역은 인쇄업체에서 디지털 인쇄가 불가능해 재단과 검수 과정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준비한 투표용지를 각 지역 선관위에 보관할 때도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 때문에 당시 보고서는 “투표용지 인쇄 축소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렵게 인쇄하고 보관한 투표용지가 막상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였다.

보고서는 이 같은 제언을 하며 한 가지 대안도 제시한다. 바로 “선거일 투표에도 사전 투표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 투표 방식대로 100% ‘투표용지 발급기’를 이용하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전국 투표소는 총 1만4288곳으로, 전국 사전투표소 3571곳의 4배가 넘는다. 이 모든 투표소에 용지 발급기를 설치하고 운용하는 데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노후 발급기가 선거 당일 고장날 경우에 대비하는 장비 유지보수 인프라도 부족하다. 변수 통제를 감안하면 현장 인쇄가 능사는 아닌 셈이다.

인쇄 물량을 줄인 선관위의 선택은 오히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집단에 먹잇감만 준 셈이 되었다. 6월3일 밤, 극우단체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총 세 곳으로 모여들었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 그리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잠실 우성아파트 경로당)였다.

극우 음모론에 먹잇감 준 선관위

잠실 투표소 앞은 부정선거론자들이 가장 크게 흥분하며 몰려든 공간이었다. 이곳은 투표용지가 부족해 밤 10시까지 투표를 진행했는데,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인파가 투표소를 에워싸고 이튿날까지 투표함 반출을 막아 세웠다. 이 때문에 이미 경쟁 후보와 표차를 벌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등 일부 후보가 6월4일 밤까지 선관위에서 당선자 확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6월4일 새벽,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인파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앞날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6월5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사퇴할 뜻을 밝혔고, 선거 사무를 총괄하는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역시 사의를 표명했다. 6월9일 더불어민주당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번 부실 선거 사무로 인해 정치권 안팎에서 각종 고소·고발 건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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