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에 담은 ‘ETF 톱4’ 모두 美 주식
국내 증시 호황에 힘입어 퇴직연금 계좌에서 국내 증시로 흘러가는 돈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퇴직연금 적립금 투자 주류는 해외 증시인 것으로 파악됐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사전에 적립해 운용하다가 은퇴 이후 연금 등으로 받는 상품이다. 퇴직연금에 붙는 절세 효과는 해외 증시에 투자했을 때 상대적으로 크다. 여기에 노후 대비용 장기·분산 투자처로는 해외 증시가 안정적이라는 판단까지 더해지며 퇴직연금 적립금이 해외 증시로 계속 빠져나가는 모습이다.

◇퇴직연금 투자 펀드 상위권은 ‘해외 증시 투자’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가운데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급여(DB)형 계좌 적립금은 221조8000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43.6% 수준이었다. 근로자 개인이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 IRP 적립금은 286조9000억원으로 전체의 56.4%였다. 지난 2023년까지만 해도 DB형 비율이 53.7%로 절반 이상이었지만, 2024년 들어 DC·IRP 비율이 50.3%로 역전한 이후 계속 늘고 있다. DB형은 보험이나 예금 등 원금이 보장되지만 수익률이 낮은 상품 위주로 투자하지만, DC·IRP형은 펀드나 회사채 등 위험이 크지만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상품에 더 많이 투자한다.
펀드 등을 중심으로 늘어난 퇴직연금 적립금 상당수는 해외 증시로 흘러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투자 규모가 가장 컸던 펀드 1위는 미국 S&P500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로 총 3조7000억원의 적립금이 몰렸다. 2위는 미국 나스닥100 ETF(2조1000억원), 3위는 미국 S&P500 환헤지 ETF(1조6000억원), 4위는 미국 나스닥100 환헤지 ETF(1조5000억원), 5위는 금 현물 ETF(1조3000억원), 그리고 6위는 미국 상위 10개 테크주에 투자하는 환헤지 펀드(1조원)였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상품인 코스피200 ETF가 투자 규모 9000억원으로 펀드 중 7위였다.
1년 전인 2024년 말까지도 상위 펀드 7위 안에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상품은 없었다. 당시 1위도 미국 S&P500 ETF였고, 2위는 글로벌 테크주 투자 펀드였다. 3~4위는 해외 증시 위주로 투자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였다. 그나마 국내 주식·채권 혼합형 펀드가 5위에 올라섰지만, 이는 채권에 60%, 주식에 40%씩 투자하는 채권 위주 상품이다.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는 퇴직연금, 환율에 부담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증시가 상승하면서 국내 증시 추종 ETF가 투자 상위 7위 안으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해외 증시가 퇴직연금 투자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좋았던 만큼 해외 증시도 좋았다”며 “노후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투자할 때는 해외 증시가 더 안정적이라고 판단하는 투자자도 여전히 많다”고 했다.
여기에 퇴직연금에 붙는 과세 이연 효과도 해외 증시에 투자할 때 더 크게 누릴 수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해 거둔 수익에 대해서는 실제 연금으로 받기 전까지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해외 주식에 투자해 250만원 이상 수익을 내더라도 양도소득세를 곧바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세금으로 내야 할 수익을 다시 굴려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반면 국내 주식은 대주주가 아닌 한 양도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절세에 따른 혜택이 작다.
이처럼 퇴직연금 적립금 투자가 국내 증시가 아닌 해외 증시 위주로 운용되면서 환율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한 달 가까이 1500원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넘쳐나는 달러 수요가 고환율의 주범으로 꼽힌다. 여기에 퇴직연금을 통해 해외 증시로 몰려드는 자금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현재의 환율 문제는 달러 수요를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라며 “퇴직연금과 같은 큰 몫의 자금 유출이 이어지는 한 환율을 빠르게 가라앉히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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