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에서 시작하지 못한 지도자’ 국가대표·프로 경력 없이 증명한 이영민의 20년···“준비된 자에겐 반드시 기회 온다” [이근승의 믹스트존]

이근승 MK스포츠 기자(specialone2387@maekyung.com) 2026. 6. 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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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52) 부천 FC 감독은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이 감독은 한국 프로축구 감독의 경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험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K리그에서 뛴 경험도 없다. 1996년 K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폐지)를 통해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긴 했지만,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실업 리그(내셔널리그) 소속이던 국민은행 축구단에서만 뛰었다.

이 감독은 2006년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지도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가 아주 재밌고, 좋았다. 축구계에 머물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이어가고 싶었다. 이 감독의 이 마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감독이 걸어온 지도자의 길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다. 한국 축구계는 지금도 ‘축구를 잘했던 선수’가 ‘수많은 선수를 잘 가르쳐야 하는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국가대표는커녕 프로 무대를 밟지 못한 무명 선수 출신은 프로에서 지도자 기회를 받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다.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이 감독은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20년 동안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걸으며 내온 성과다.

‘MK스포츠’가 지난해 부천의 역사상 첫 K리그1 승격을 일구고, 올 시즌 K리그1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사령탑 이영민을 만났다.

이영민 감독이 훈련 중 선수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근승 기자
Q. 부천은 5월 17일 포항전을 끝으로 월드컵 휴식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휴식기인데 조금 쉬었습니까.

선수단 휴가가 10일 정도 있었어요. 그때 같이 쉬었죠(웃음).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자녀들이 대학생인데 수업이 없는 날을 활용해 3박 4일간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푹 쉬었으니 다시 뛰어야죠. 후반기 땐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Q. 부천 역사상 첫 K리그1 승격을 이끌었습니다. K리그1에서 보내는 첫 시즌인데요. 15경기를 치렀습니다. 전반기를 돌아본다면 어떻게 평가합니까.

K리그1과 K리그2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K리그1은 실수를 허용하지 않아요. 조금만 방심해도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옵니다. 경기 준비, 실전에서 변수가 나왔을 때의 대응 등 모든 부분에서 틈이 없어야 해요. 우리가 K리그1으로 올라오면서 팬도 늘었습니다. 더 많은 팬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려면 쉴 틈이 없는 듯해요.

Q. 2006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영민 감독은 단계를 밟아 K리그1까지 올라온 지도자인데요. 경험이 풍부하잖습니까. 그런데도 K리그1은 다른 겁니까.

달라요. 진짜 다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고 한들 100% 완벽하긴 어렵거든요. 특히나 K리그1은 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잖습니까.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무대입니다.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도 상당히 높죠. 우리가 철저하게 대비하고, 상황에 맞는 변화를 주더라도 어려울 때가 있어요. 선수 개개인 능력이 특출나다 보니 개인기로 조직을 뚫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솔직히 K리그2에선 전술적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면 상대의 장점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거든요. K리그1엔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수가 많다 보니 그런 부분을 봉쇄하는 게 조금 더 어려운 듯합니다. 이 부분이 K리그1과 K리그2의 가장 큰 차이이지 않나 싶어요.

훈련 중인 부천 FC 선수들. 사진=이근승 기자
Q. 부천의 새 역사를 쓰면서 지도자 이영민이 예전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에 반해 이영민의 선수 시절은 모르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이영민 감독은 어떤 선수 시절을 보냈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로 갔었죠. 그 당시 K리그는 드래프트로 신인선수를 뽑았어요. 저는 포항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문했죠. 하지만, 프로에서 기회를 받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때 포항엔 좋은 선수가 많았습니다. 선수층이 두꺼웠어요. 황선홍, 홍명보, 박태하 등이 포항 유니폼을 입고 호흡을 맞출 때였죠. 1년 차 때 그런 선수들과 훈련하고 경쟁해서 살아남는다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프로 1년 차 시즌을 마치고 바로 입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회를 붙잡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섰죠.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던 중 구단에서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경찰 축구단으로 향해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경쟁이라는 게 1년 차 때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프로는 하루하루가 경쟁입니다. 전역해서 돌아왔을 때도 내 자리를 얻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고 떠나게 됐죠.

Q. 그때 향했던 팀이 내셔널리그 소속이던 국민은행 축구단이었죠?

맞아요. K리그가 지금처럼 1, 2부 승강제를 운영하던 때가 아닙니다. 팀 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거죠.

Q. 현재 K리그를 보시는 분들은 내셔널리그가 어떤 리그인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당시의 내셔널리그는 어떤 리그였습니까.

쉽게 설명하면, 현재의 K리그2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K리그1에서 경쟁하기엔 부족한 선수들이 내셔널리그에서 뛰었거든요. 다만, 큰 차이가 하나 있었어요.

Q. 어떤?

지금은 K리그2에서 성장해 K리그1에서 자리 잡은 선수가 많잖아요. 제가 선수 생활할 땐 아니었습니다. 한 번 내셔널리그로 내려가면, K리그1으로 올라오는 게 매우 어려웠어요. 내셔널리그에서 프로로 올라가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선수 시절 제일 아쉬운 부분을 꼽으라면 이게 아닐까 싶어요.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Q. 지도자의 눈으로 이영민의 선수 시절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수 땐 여러 포지션을 맡았어요. 중앙 수비수, 사이드백, 수비형 미드필더 등 팀이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죠. 저는 장점이 뚜렷한 선수가 아니었어요. 대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이 있었습니다. 후방 빌드업에 자신도 있었고요. 저의 이런 선수 시절 장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기도 해요.

Q.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 포지션을 맡았다는 걸 냉정하게 보면, 한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내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축구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해 봤던 것 같아요.

Q. 그래도 내셔널리그에서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국민은행이 실업 리그 최강자로 군림하는 데 앞장서지 않았습니까.

제가 국민은행에 입단한 게 2000년 1월입니다. 축구단이 IMF 외환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난 뒤 재창단한 때였죠. 당시 내셔널리그에선 운동 환경 등이 좋은 팀이었어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선수도 여럿 왔고요. 그 당시 내셔널리그에선 강한 팀 중 하나였습니다. 명문이었죠(웃음). 추후 떠오른 울산 현대미포조선과 내셔널리그를 이끌어가는 팀이었다고 생각해요.

Q. 지도자의 꿈은 선수 때부터 가졌던 겁니까.

선수 은퇴를 앞둔 2006년 후반기부터 플레잉 코치를 맡았어요. 그 당시 국민은행 감독님이 FC 안양 이우형 단장님이었습니다. 당시 이우형 감독께서 “선수 생활을 더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지도자 생활을 일찍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이우형 감독께서 “나 좀 도와달라”고 하셨죠(웃음).

Q. 고민이 많았겠습니다.

많았죠. 선수 생활이라는 게 한 번 지나면 다신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고심 끝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했어요. 어릴 때부터 ‘축구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2006년 후반기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의 감을 익힌 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죠.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Q. 그 당시 어떤 꿈을 갖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까.

지금도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꿈은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그 사람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큰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부끄럽다는 건 지도자 자격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요. 축구 지도자가 축구를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린 팬들의 사랑을 받잖습니까. 그라운드 안팎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런 철학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좋은 지도자를 만났어요.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만 만났던 건 아닙니다(웃음). 특히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아요. 지도자를 보면서 ‘부끄러운 사람’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도자는 남들 앞에 섰을 때 절대 부끄러워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좋은 분들을 만나서 배우고 얻은 게 많지만, 그러지 못한 분들을 겪으면서도 느낀 것이 많습니다.

Q. 학창 시절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을 때 ‘축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제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축구 선수로 성공해야만 했습니다. 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했고요. 중학교 때 두 달 정도 축구를 그만했던 적은 있어요. 아버지께서 “축구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잠시 공부에 집중했었죠. 공부만 하니까 성적이 조금씩 오르는 게 보였어요. 이대로 축구와의 인연이 끊기나 싶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아버지 모시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Q.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전혀. 문제를 일으키거나 한 게 아니었어요. 평소처럼 학교생활에 열중하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했죠.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께 “(이)영민이가 오전 수업은 집중해서 아주 잘한다. 그런데 오후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창밖만 쳐다보는 것 같다. 아이의 진로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날 저녁 저를 불러서 이야기했죠.

Q. 어떤 이야기가 오갔습니까.

아버지가 제게 “축구가 그리 좋으냐. 계속하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크게 고민하지 않았죠. 축구가 정말 좋으니까. 아버지께 “공부보단 축구가 좋다. 계속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턴 축구와 이별하지 않고 계속 함께하고 있어요.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2007년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팀에서 감독을 맡을 때와 코치를 맡았을 때의 역할은 확실히 달라요. 공통점도 있습니다. 지도자를 하면서 제일 힘들 때인데요. 지도자는 다음 경기 준비에 몰입합니다. 감독이든 코치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경기를 준비하죠. 그런데 축구라는 게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준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정말 힘듭니다(웃음). 잘못된 원인이 내 잘못이란 생각이 들죠. ‘왜 다른 방식으로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진작 대비하지 못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겁니다.

Q. 어떤 지도자든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가 모든 걸 쏟는 만큼 상대도 모든 걸 쏟으니까.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승부의 세계잖아요. 승리의 기쁨은 진짜 짧아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 안도감과 기쁨이 공존하죠. 그 순간뿐입니다. 머릿속이 다음 경기 생각으로 빠르게 채워져요. 100% 만족스러운 승리가 드물기도 하거든요. 오늘 경기에서 부족했던 부분, 빠르게 보완해야 하는 부분 등을 생각하다 보면 승리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죠. 지도자를 하다 보면, 승리가 ‘허무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Q. 힘들 때 계속해서 내 일에 집중하면서 나아갈 힘은 어디서 얻습니까.

가족이죠. 가족이 있어서 버티며 나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가장이기도 하거든요.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남편이자 아빠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꿈도 있고요. 가장은 힘들어도 멈출 수 없습니다. 버티면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가장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Q. 국민은행과 안양에서 긴 시간 코치 생활을 했습니다. 2015년 안양의 감독대행으로 좋은 성적을 낸 뒤 2016년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10년 만에 얻은 ‘첫 기회’였습니다. 처음 정식 감독이 됐을 때의 감정 기억합니까.

10년이었죠.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때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Q. 코치 경력에 감독대행까지 무려 10년을 준비했는데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 지도자 경험을 10년 동안 쌓았지만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특히 정식 감독은 처음이었잖아요.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일 초조했어요. 감독으로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그 강박이 사고의 폭을 좁게 만들었어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시야가 좁아지는데 좋은 성과가 나올 리 없었죠.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보니 더 조급해졌던 때였어요.

안산 그리너스 시절 이영민.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이영민 감독의 경력을 살펴보면 특이한 게 있습니다. 안양 감독직을 내려놓은 뒤 안산 그리너스 코치로 갑니다. 한국에서 감독을 맡았던 지도자가 코치로 가는 경우는 드물잖습니까.

제가 그땐 젊었어요(웃음). 4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안산을 이끄셨던 이흥실 감독님에게 배울 기회라고 봤고요. 도전과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마다할 필요가 없었죠.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제가 사랑하는 일을 이어갈 수 있는데 직책이 무슨 상관입니까.

Q. 한국 축구계에선 감독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이 코치를 맡으면 ‘자존심 상하는 일’로 보지 않습니까.

글쎄요. 만약 지금 제게 그런 상황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팀이 없는 상태예요. 저보다 어린 감독이 제게 연락해서 “전술 코치로 와서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면 고민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축구 현장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에요. 자존심 때문에 기회를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직책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젊은 감독을 도우면서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기도 할 거고요. 상상이지만 재밌을 것 같은데요. 안산 코치로 갈 때 이흥실 감독님도 그 얘길 하긴 했어요.

Q. 어떤 얘길 했죠?

이흥실 감독님과 처음 통화할 때였어요. 이흥실 감독님이 제게 처음 한 말이 “다시 코치 맡을 수 있겠어?”였습니다. 감독님에게 말씀드렸죠. “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감독님에게 많이 배우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 역할에 충실히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훈련 중인 부천 FC 선수들. 사진=이근승 기자
Q. 이영민 감독이 축구계에서 ‘학구파’ 지도자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 물어볼게요. 자신이 축구를 잘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축구를 잘하려면, 나만 신경 쓰면 돼요. 내가 해야 할 것에 충실히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내보이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을 가르치는 건 달라요. 프로 지도자는 개인 레슨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력, 성격 등 모든 게 다른 개개인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야 해요. 특히 지도자가 무언가를 가르쳐줬을 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 등이 다 다릅니다. 선수마다 확실히 달라요. 선수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선수에게 맞는 역할과 가르침을 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Q. 말만 들어도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정말 어렵죠. 쉽지 않습니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내 기대치를 선수에게 투영하지 않는 겁니다. 선수의 능력치를 너무 높게 잡으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선수나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거든요. 그 선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선수에게 맞는 역할, 훈련 등을 제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게 선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지도자도 노력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선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아야 하고, 연구해야 하죠. 훈련장에서 선수에게 간단한 피드백을 주더라도 그 선수가 완벽히 이해하고 나아질 수 있도록 만들려면 정말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코칭스태프는 K리그뿐 아니라 유럽 축구도 최대한 챙겨보거든요.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Q. 빡빡한 일정 속 유럽 축구까지 챙기는 이유가 있습니까.

선수가 무언가를 물어봤을 땐 답을 줘야 하잖아요. 선수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면 답이 간략해선 안 됩니다. 그 답엔 선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선수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성이 담겨있어야 해요. 이게 말은 쉽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지도자의 답은 선수의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큰 책임감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Q. 조금 민감할 수도 있지만 물어볼게요. 한국 축구계에선 여전히 선수 시절 명성만으로 지도자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수 때 ‘축구를 잘했다’는 이유 하나로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된다거나 프로팀 감독이 되는 일이 흔해요. 한국 축구계에 계속 있으면서 좌절감을 느낄 땐 없었습니까.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웃음). 분명한 건 한국 축구계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또 하나가 있어요. 계속해서 노력하고 준비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겁니다. 그 기회가 조금 늦게 찾아올 순 있죠. 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겐 반드시 기회가 와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기회를 받아 한국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잖습니까.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는 말을 하잖아요. 저는 이를 좀 다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했어요.

Q.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3루에서 태어난 사람도 점수를 얻으려면 홈으로 들어와야 하잖아요. 출발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안타를 쳐서 1루로 나아가야 하고, 홈까지 들어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어요. 하지만, 묵묵하게 내가 해야 할 것을 하면서 목표를 향해 정진하면 3루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더 많은 점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영민 부천 FC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요즘 축구계를 취재하다 보면 “젊은 지도자가 점점 줄어든다”는 얘길 꽤 듣는 것 같아요. 보수,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특히 이영민 감독처럼 단계를 거치며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걸 쏟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저도 은퇴를 앞둔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보수 문제는 크지 않다고 봐요. 제일 큰 고민은 이겁니다.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 1년 중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게 쉽지 않아요. 1년 365일을 팀에 쏟아야 합니다. 그게 지도자의 길로 나아가는 걸 고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봐요. 은퇴 후 축구 클럽을 운영하거나 방송 활동 등을 하는 것도 힘들겠죠. 다만, 지도자의 길을 걸을 때보단 여유 시간이 있을 겁니다. 우리 팀 코치들만 봐도 여유가 없어요. 선수들은 경기 후 하루이틀 쉴 수 있지만, 코칭스태프는 다르거든요. 곧바로 다음 경기 준비에 몰두해야 합니다. 시즌을 마치면 선수단 구성부터 해서 새 시즌 준비에 열중해야 하고요. 제가 코치를 뽑을 때 면접을 보면 공통된 질문을 받아요.

Q. 어떤 질문이요?

지도자의 꿈은 있는데 자기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게 고민이라는 겁니다. 1년 내내 팀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걸 어렵고 힘들다고 보는 것 같아요. 은퇴한 선수들이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걷는 사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긴 이겁니다.

Q. 이야기해 주십시오.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말라는 겁니다. 감독을 맡을 기회가 예상보다 빨리 온다면, 저는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게 아니라면, 배움의 기회도 좋은 기회로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얼마 전 제주 SK 정조국 수석코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정조국 코치는 지난 시즌 전북 현대에서 거스 포옛 감독을 보좌하다가 올 시즌엔 제주에서 세르지우 코스타 감독을 보좌하고 있잖아요. 정조국 코치는 스타 선수 출신이고, 유럽 리그도 경험했어요. 그런 정조국 코치가 계속해서 배움을 갈망하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지도자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찾아나가는 거잖아요. 정조국 코치에게 “선수 때도 많은 걸 배우고 느꼈겠지만 지금의 경험도 정말 큰 자산이 될 것”이란 얘길 했어요. 선수가 감독에게 배우는 것과 코치가 감독에게 배우고 느끼는 건 또 다르거든요.

Q. 한국에서 선수 시절 경력만으로 지도자 기회를 쉽게 얻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것이 빠른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축구란 게 뜻대로 되지 않거든요. 감독직을 빠르게 맡은 이도 기대 이상으로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축구에 절대적인 건 없으니까. 다만, 잘 나갈 땐 문제가 없겠지만, 팀이 어려울 때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를 극복하는 힘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를 헤쳐 나가는 힘의 원천은 경험인 거죠. 그런 경험을 쌓은 뒤 감독이 된다면,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좀 더 단단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Q. 이야기를 나눌수록 축구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다는 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축구가 재밌습니까.

새롭잖아요(웃음). 현대 축구의 흐름이 북중미 월드컵을 마치면 또 바뀔 겁니다. 올 시즌 K리그1 전반기엔 강원 FC가 대단히 흥미로운 축구를 보였죠. 후방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과정을 생략하더라도 좀 더 빠르고 직선적인 축구, 강한 전방 압박과 공격적인 축구로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성적까지 냈습니다. 그걸 보면서도 많은 걸 느끼고 배워요. 강원을 상대할 땐 어떤 전략으로 나서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도 재밌고요. 축구가 어렵지만 보람도 있고 재밌습니다.

Q. 북중미 월드컵 이후의 축구는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봅니까.

수비 전술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수비수의 개인 역량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럽 강호들은 수비를 보통 맨마킹으로 하거든요. 우리 수비수와 상대 공격수를 일대일로 붙이는 겁니다. 과거엔 수비 숫자를 하나 더 놓고, 수적 우위를 점하는 식으로 갔잖아요. 안정감을 중요시한 거죠. 앞으로는 공격수든 수비수든 일대일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유심히 보려고 합니다.

Q. 이영민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독일 축구 많이 보죠(웃음). 스리백이 분데스리가에서 흔하고, 잘 활용하거든요. 스리백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비적인 건 아닙니다. 수비 시엔 중앙 수비수 세 명에 양 측면 수비수까지 더해 다섯 명의 수비수를 두고, 공격 시엔 포백으로 전환해 공격 숫자를 늘리는 방식을 쓸 수 있거든요. 중앙 미드필더가 수비와 중원을 오가면서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할 수도 있고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2연패를 달성한 파리 생제르맹도 포백으로 경기를 시작하지만 상황에 따라 스리백으로 변화를 주면서 경기를 풀어가더라고요. 스리백에서 더 공격적이고, 더 강한 압박을 구사할 방법은 무엇인지 분데스리가를 보며 힌트를 얻는 것 같습니다.

Q. 현대 축구에서 스리백과 포백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과거의 스리백은 수비 시 5명의 수비수를 두는 형태였습니다. 수비적이었죠. 포지션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현대 축구에선 상대를 90분 내내 같은 형태로 상대할 수 없어요. 어느 시점에 수비 숫자를 늘리고, 공격 숫자를 늘려 득점을 노려야 할지 판단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압박을 가해야 할 시점에 확실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면, 흐름을 가져오고 득점까지 해낼 확률이 올라가겠죠. 코칭스태프가 경기 흐름을 읽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Q. 축구엔 변수가 많잖아요. 변수가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영민 감독만의 비법이 있습니까.

코치들과 힘을 합쳐서 상황에 맞는 수를 찾아내려고 해요. 우린 필드 코치가 둘이거든요. 마현욱 수석코치에겐 보통 ‘수비를 중점적으로 봐달라’고 합니다. 고경민 코치에겐 ‘공격을 중점적으로 봐달라’고 하죠. 저는 전체적인 흐름을 중점적으로 보려고 하고요. 전반전에 경기 흐름을 얼마만큼 파악하느냐가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바꿔야 할 것, 대응해야 할 것 등을 빠르게 파악해서 어떤 변화를 주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를 원활하게 하려면 코칭스태프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겠죠.

Q. 지도자가 전술 변화를 통해 승리를 쟁취했을 때의 감정은 어떻습니까.

좋죠(웃음). 짜릿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보단 반대의 상황이 더 오래갑니다. 패했을 때 자책을 많이 하거든요. 변화를 줬는데 그게 먹히질 않고 패하면, ‘이때 내가 이런 판단을 해야 했는데’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겁니다. 그 후회가 깊어지면, 준비 과정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하나둘 떠오르고요. 매 경기 승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참 쉽지 않습니다.

부천 FC의 역사는 이영민 감독 부임 전과 후로 나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2020년 11월부터 부천을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부천의 첫 K리그1 승격을 이끌고, 올 시즌엔 개막전부터 디펜딩 챔피언 전북을 잡아내는 등 경쟁력을 보이고 있죠. 처음 부천 지휘봉을 잡았을 때 구상했던 대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처음 팀을 맡았을 때부터 방향성은 명확했어요. 우린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점점 단단해지고자 합니다. 구단에서 방향성에 공감하고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아요. 우린 매해 좋은 선수를 여럿 육성했어요. 실제로 부천에 몸담았던 여러 재능이 더 큰 구단에서 자릴 잡았죠. 하지만, 팀은 아니었어요. K리그1으로 올라오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Q. 예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시도민구단들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프로의 세계에선 연봉이 중요하잖아요. 선수가 1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으면, 그 성과를 인정하고 연봉을 올려줘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조금 어려웠죠. 제가 구단에 “예산을 더 올려달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우리가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예년보다 많은 예산이 주어질 수도 있으니 제 역할에 충실히 하려고 하죠. 다만, 좋은 선수를 육성하면 이듬해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Q. 이영민 감독이 축구계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명확한 방향성과 철학을 가지고서 적은 예산으로도 K리그1 승격을 이뤄낸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선수들이 대단한 겁니다. 선수단 연봉이 매해 공개되잖아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선수들의 엄청난 노력이 K리그1 승격을 일군 거예요. 지난해엔 선수들이 흘린 땀에 더해 구단 직원들의 노력, 팬들의 염원이 조화를 이루면서 새 역사를 쓰지 않았나 싶어요. 많은 분이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목표를 물어보셨어요. 제 답은 항상 같습니다. K리그1 잔류예요.

Q. K리그1에서 보내는 첫 시즌이긴 하지만 저력이 있는 팀 아닙니까. 돌풍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K리그1은 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입니다. K리그1 기준으로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부천의 환경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 K리그1에 남아 있어야 해요. 우리가 K리그1에 어떻게든 살아 남아 있어야 발전 속도가 빨라질 겁니다. 올해보단 내년이 좋을 것이고, 내년보단 후년이 더 좋을 거예요. 우리가 K리그1에서 꾸준히 경쟁한다면, 5년 뒤엔 훨씬 더 멋진 팀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K리그1에 어떻게든 살아 남는 과정 속 K리그1 구단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Q. 시도민구단에선 보통 좋은 선수를 육성하면, 그 선수는 이듬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으로 떠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한 시즌을 마치면, 처음부터 팀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죠. 그런데도 단단한 팀을 만드는 가장 큰 비결은 무엇입니까.

부천엔 낙하산 선수가 없습니다.

Q. 낙하산 선수요?

2020년 11월부터 부천에 있으면서 여러 재능 있는 선수를 지도했습니다. 많은 선수를 떠나보냈고요. 다만, 다 떠난 건 아닙니다. 매 시즌 꾸준하게 제 역할을 해주는 선수들이 팀에 있어요. 우리가 올해는 선수단 인원이 35명인데 작년까진 33명이었거든요. 우리 팀의 다수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린 선수입니다. 우리 코칭스태프는 누가 빠져나가더라도 티가 나지 않는 팀을 만들려고 힘써요. 2024시즌이었을 겁니다. 베스트 11이 모두 부상으로 빠진 때가 있었어요.

Q. 후보 선수들로 팀을 운영해야 했던 겁니까.

한 번에 빠진 건 아니었습니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주전 선수가 하나둘 다치는 거예요. 그러다가 11명이 모두 빠져버리는 상황까지 왔던 거죠. 참 안 풀리더라고요. 그런데 주전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며 준비했던 이들이 부상자들의 공백을 기대 이상으로 메웠습니다. 최종 성적은 8위로 만족하긴 어려웠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고 중위권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팀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했고요.

Q. 작년엔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도 코리아컵 준결승까지 오르지 않았습니까.

우선순위가 명확했습니다. 리그가 먼저였어요. 결승 진출을 노려볼 수도 있었지만, 우린 원칙대로 했습니다. 우리가 우승컵을 들거나 결승에 오른 건 아니지만, K리그1 승격을 이루고, 코리아컵 준결승까지 오른 선수들을 칭찬해 주고 싶어요. 함께 땀 흘린 우리 선수들의 능력과 힘이 증명된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프로의 세계이다 보니 떠나는 선수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누가 떠나더라도 그 자릴 빠르게 메울 힘이 있다는 게 우리 부천의 강점이 아닌가 싶어요.

Q. 그 단단함의 원천이 ‘낙하산 없는 시스템’에서 나오는 거군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던 부분인데요. 우린 ‘누구 좀 받아달라’거나 ‘테스트 한 번 보게 해달라’는 제안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불합리한 일은 ‘전혀 없다’고 자부해요. 선수를 영입할 땐 코칭스태프와 오랜 토론을 거칩니다. 대표님과 단장님의 승인도 받고요. 우린 이적료 수익이 생기면, 재투자해서 재능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도 합니다. 다른 구단과 비교해 적은 예산이라도 그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철학과 시스템이 우릴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지 않나 싶어요.

수분을 보충하고 있는 부천 FC 선수들. 사진=이근승 기자
Q. 이영민 감독이 선수를 평가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무엇입니까.

포지션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포지션마다 봐야 하는 게 다르다는 거예요. 선수마다 장단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팀에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개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팀의 철학과 맞지 않으면 능력을 100% 발휘하기 어렵거든요. 어떤 포지션이든 우리 팀에 잘 녹아들고 빛을 낼 수 있는 선수를 품으려고 합니다.

Q. 많은 지도자가 공통으로 얘기하는 게 있습니다. 골 결정력은 재능의 영역이란 건데요. 골 결정력은 지도자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재능의 영역이라고 봅니까.

저도 골 결정력은 재능의 영역이라고 봐요. 다른 지도자들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수비 조직력이나 볼 점유율 등은 만들어갈 수 있어요. 공격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준비하면, 후방에서부터 득점 기회까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득점은 조금 달라요. 전북의 모따 있잖아요. 모따는 엄청나게 빠르거나 화려한 드리블 능력을 갖춘 선수가 아닙니다. 페널티박스 안쪽에선 다릅니다. 크로스 타이밍에 맞춰서 위치를 선점하고 득점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해요. 모따 같은 선수를 유심히 보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해 유효 슈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남다릅니다. 슈팅이 웬만하면 골문을 향하는 거예요.

Q. 타고난 골잡이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있죠. 퍼스트 터치를 눈여겨보세요. 골 감각이 남다른 선수들은 볼을 슈팅할 수 있는 위치로 잡아놔요. ‘잡자마자 슈팅으로 연결하겠다’는 생각과 감각이 있는 겁니다. 리그의 수준이 높을수록 생각할 틈이 줄어듭니다. K리그1에선 볼을 잡은 뒤 슈팅하려고 하면 막혀요. 슈팅 시도조차 못 합니다. 잡자마자 슈팅할 생각으로 볼을 잡아놔야 득점을 노릴 수 있습니다. 은퇴한 선수이긴 하지만 안병준이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K리그2 최고의 골잡이였던 안병준.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안병준.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에드가.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K리그2에서 2년 연속(2020~2021) MVP와 득점왕을 석권했던 골잡이 아닙니까.

안병준을 보면서 ‘골잡이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걸 또 한 번 느꼈어요. 안병준은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누구보다 빨랐습니다. 패스가 들어오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거나 볼을 딱 한 번 잡아낸 뒤 빠르게 슈팅으로 연결했어요. 연습도 많이 했겠지만, 감각적인 부분이 남다르지 않나 싶었죠. 대구 FC에서 오랜 기간 활약 중인 에드가도 보세요.

Q. 39살의 나이에도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선수죠.

에드가가 활동량이 어마어마하거나 빠른 선수는 아닙니다. 그런데 페널티박스 안쪽에선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위협적이에요. 누구나 에드가의 장점을 알잖아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알면서도 못 막습니다. 에드가의 그런 감각이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서 생긴 걸까요. 키 크고 힘 좋은 공격수에게 에드가 영상을 보여주고, 훈련을 시킨다고 한들 에드가만큼의 결정력과 영향력을 보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스트라이커의 골 결정력은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타고난 감각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부천 FC 이영민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조금 민감한 얘길 해보겠습니다. 자격증 문제로 근심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인정하는 P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대한체육회 경기인 등록 규정에 따른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체육지도자 자격증 혹은 교육부 발행 정교사 자격증이 없으면 부천 지휘봉을 내려놔야 할 수도 있잖아요. 올해 초 크게 이슈가 됐었는데 이후 달라진 게 있습니까.

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부천 지휘봉을 잡은 상태에서 또 다른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올 시즌 부천을 잘 이끄는 것입니다.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Q. 여전히 조심스러운 듯합니다. 현장에서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같은 답을 합니다. ‘황당하다’는 거예요. 축구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일찍이 FIFA와 AFC의 까다로운 지도자 자격 체계를 따르고 있었잖아요. 이영민 감독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 등급인 P급을 취득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수고요. 여기에 지도자 경험까지 더해져야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 P급이잖아요. 축구 지도자들이 다른 종목처럼 ‘유명 선수였다’는 이유 하나로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체계’였으면 모르겠으나 유명 선수 출신도 FIFA와 AFC가 인정하는 자격증이 있어야만 프로에서 지도자를 할 수 있는데 축구계까지 이 자격증을 요구한다는 게 쉽사리 이해되진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솔직한 마음을 조금 더 이야기해 줄 순 없겠습니까.

솔직히 아쉽죠. 아쉽습니다. 저는 FIFA와 AFC가 인정하는 최고 등급의 자격증을 따서 지도자 생활을 20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P급을 2015년에 땄어요. 코치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고, 연수도 다녀오며 취득한 겁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서 딴 거예요. 이후 지도자 경력을 더해가면서 더 많은 경험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문체부가 요구하는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한다면, 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에선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없어요.

Q. 더 황당한 건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 출신에겐 구술과 연수만 거치면 되는 ‘혜택’을 준다는 겁니다.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 출신이 아닌 지도자는 5과목의 필기시험을 포함해 실기, 구술, 연수 등 4단계를 거치도록 만들어 놓은 거예요. 축구는 또 글로벌 스포츠잖아요. 외국인 감독이 흔한 종목인데 외국인 감독은 한국에서 활동하더라도 그 자격증이 필요 없고요.

저는 프로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없습니다. 만약 그 자격증이 있어야만 한다면, 필기시험과 실기, 구술, 연수 등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해요. 아쉽습니다. 그래도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등이 축구계 입장을 잘 설명하는 등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해요.

Q. 축구계 지도자 자격 체계를 검색만 해봤어도 이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2015년 P급을 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축구인들은 다 아시겠지만 P급은 최고 등급의 자격증이잖아요. 제가 C급을 2006년에 땄습니다. 지도자로 나아가겠다고 마음먹은 뒤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준비했어요. 그 결과 1년 만에 수석으로 B급 자격증을 땄죠. A급을 따는 데는 2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공부도 더 해야 했고, 지도자 경험도 쌓아야 했으니까. P급은 더 어려웠어요. 제가 P급 시험을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세 번째 도전 끝 붙은 거예요. P급까지 따는 데 무려 10년이 걸린 겁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P급을 따려면 해외 연수도 가야 하고, 논문도 제출해서 통과 받아야 합니다. 또 있어요.

Q. 편하게 다 말씀해 주십시오.

P급 자격증을 한 번 받았다고 해서 이게 평생 가는 게 아니에요. 보수교육이 필요합니다. 점수가 있어서 그 점수를 채워놔야 P급 자격이 유지돼요. FIFA와 AFC가 인정하는 P급 자격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올해 연말에도 보수교육이 있을 겁니다. 아마 북중미 월드컵에서 나올 여러 이슈, 전술 등이 토대가 될 듯한데요. 그런 자격을 유지하면서 프로에서 20년째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특정 자격증이 없으면 팀을 맡을 수 없다니 조금 아쉽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얘기도 하고 싶습니다.

훈련 중인 부천 FC 선수들. 사진=이근승 기자
Q. 말씀하십시오.

축구계에서 저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축구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직군이 피지컬 코치들이에요.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국가대표가 되고 프로 선수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중학교 때까진 축구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진로를 바꾸기도 합니다. 축구가 아주 좋아서 선수는 아니지만 지도자나 심판, 에이전트 등의 길을 가곤 하죠. 피지컬 코치도 많이 선택하는 직업 중 하나고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FIFA와 AFC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따고 프로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이들이 깊은 고민에 빠진 겁니다. 특히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이들은 당장 먹고사는 일을 그만두고 시험만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예요.

Q. 지금 K리그에 그런 고민에 빠진 이들이 많은 겁니까.

꽤 있습니다. 현재 K리그1과 K리그2에서 활동 중인 이들이 생계는 유지해야 하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종목을 보면, 은퇴하고 선수 시절의 명성만으로 지도자를 맡는 경우가 흔하잖아요. 축구는 일찍이 FIFA와 AFC에서 공인한 자격증 시스템을 구축해 왔는데 아쉬운 것 같습니다.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P급은 보통 10년을 준비하거든요. 요즘 선수들이 은퇴하기 전부터 지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자격증을 따는 이유가 이거잖아요. 지도자를 하려면 오랜 준비가 필요하니 선수 때부터 준비하는 것. 저는 중국 여자 연령별 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선 대표팀을 맡을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Q. FIFA는 세계 축구계 최상위 기관이잖아요. 세계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니 타국 대표팀도 지도했던 것인데. 축구계에서 현재 이 사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도자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면서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 경력에 혜택을 준다는 것도 황당하고요. 외국인 감독은 자격증 없이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죠.

저는 P급이 있기 때문에 당장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해당 규정이 내년부터 적용되면, 한국에서만 지도자를 못하는 겁니다.

이영민 부천 FC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Q. 한국 축구계에서 국가대표는 물론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지도자가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데요. 기회를 받는 것조차 어려운 환경 속 엄청난 노력과 반복되는 증명 없인 불가능한 일인 까닭입니다. 이영민 감독은 그런 일을 해내고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어요. 그런 이영민 감독이 부천의 역사를 써가는 중 예상하지 못한 큰 난관에 부딪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이영민 감독의 꿈은 무엇입니까.

제 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축구가 좋아요. 축구 현장에 오래 남아 있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계속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가장 큰 이유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부천에서 ‘팀을 발전시켰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겁니다.

Q. ‘팀을 발전시켰던 사람’이요?

제가 평생 부천과 동행할 순 없는 거잖아요.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 이별도 있는 게 우리의 삶이지 않습니까. 저도 언젠가 부천과 이별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이 왔을 때 부천에서 ‘우리 팀 역사에서 꼭 필요했던 사람’이라고 기억된다면 영광일 것 같아요.

[부천=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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