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다시 우리 손에”…튀르키예 장관 발언에 이스라엘 분노

이규화 2026. 6. 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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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연설 중인 무스타파 치프트치 튀르키예 내무장관. 엑스 @mustafaciftcitr 캡처. 연합뉴스


튀르키예 정부 고위 인사가 예루살렘을 다시 튀르키예의 통치 아래 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이스라엘과 외교적 설전이 격화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의 무스타파 치프트치 내무장관은 자신의 엑스(X)를 통해 지난 6일 집권 정의개발당(AKP) 행사에서 한 연설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과거 “단 하루만이라도 예루살렘 주지사 자리를 맡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치프트치 장관은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카라바흐의 해방을 목격했듯 언젠가는 예루살렘의 해방도 보게 될 것”이라며 “과거처럼 그곳들은 다시 우리의 것이 될 것이고, 다시 우리의 통치와 통제 아래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기대의 배경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세계적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며, 그의 지도력이 해당 비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장에 참석한 AKP 당원들은 박수로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치프트치 장관의 발언은 오스만 제국이 과거 예루살렘을 비롯해 시리아 지역과 캅카스 일대를 통치했던 역사적 경험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튀르키예는 주변 지역 정세에 적극 개입해 왔다. 시리아에서는 2024년 말 친튀르키예 세력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무장조직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는 2023년 아제르바이잔이 튀르키예의 전폭적 지지 속에 아르메니아의 영향권으로부터 해당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러한 튀르키예의 행보를 두고 20세기 초까지 누려왔던 중동의 맹주 지위에 대한 향수가 작동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특히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에르도안 정부는 이스라엘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예루살렘 문제는 중동에서 가장 민감한 정치·종교적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자국 수도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 다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역시 동예루살렘을 미래 독립국가의 수도로 주장하고 있다.

튀르키예 치프트치 장관의 발언에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깨어나서 커피 향을 맡으라”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비꼬았다. 이어 “부패한 오스만 제국은 영원히 사라졌다”며 “예루살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외교부는 예루살렘을 ‘예루살렘DC’(Jerusalem DC)라고 표현했다. 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관계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도 히브리어와 튀르키예어 성명을 동시에 발표하며 공세에 가세했다.

그는 “예루살렘은 콘스탄티노플이 아니며, 이스라엘은 몰락하는 십자군 국가가 아니다”라며 “이스라엘은 모든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라고 밝혔다.

또 “예루살렘은 3000년 동안 유대 민족의 수도였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츠 장관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치프트치 장관을 겨냥해 “당신들이 꿈꾸는 오스만 제국은 이미 무너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튀르키예를 근대 국가로 만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유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아타튀르크가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토대를 구축한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집권 이후 이슬람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며 정치적 기반을 넓혀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충돌은 외교적 말싸움을 넘어 중동 질서를 둘러싼 역사 인식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튀르키예 내부에서 확산되는 ‘오스만 유산’ 담론과 이스라엘의 강경한 국가 정체성 주장이 정면으로 맞부딪히고 있다.

중동에서 영토를 놓고 벌이는 세력 경쟁에는 이스라엘도 빠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중동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한 뼘이라도 더 영토를 확보하려는 경쟁에 있다.

이스라엘도 공공연히 ‘나일강에서 바그다드까지’라는 구호를 숨기지 않으며 ‘대이스라엘’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 이 영역은 유대교에서 신이 이스라엘 민족에 약속한 땅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은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가자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튀르키예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상황에서, 예루살렘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둘러싼 설전은 향후 지정학적 긴장을 증폭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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