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매력 에스파 신곡 ‘레모네이드’

이 모순성이 핵심이다.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재난들은 거대하고 위압적이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레몬처럼 만만한 것으로 치부한다. 자신이 더욱 어마어마한 존재라서, 혹은 그만큼 큰 자신감을 갖고 있어서. 그래서 이 무시무시한 노래는 '신나는 여름 댄스곡'으로 소비해도 될 만한 것이 된다.
앨범에 만만한 트랙은 없다. 'SHAKIN''이나 'Bite'는 파멸적인 정원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전기톱을 휘두르는 듯한 곡들이다. 'Can't Help Myself'는 록 에너지를 디지털로 일그러뜨려 한층 더 공격적으로 만드는가 하면, 그 마초적 성질을 어떤 유쾌함의 근원처럼 다룬다. 'Switchblade(feat. Ty Dolla $ign)'는 섬뜩한 공격성을 충분히 길고 잔혹하게 밀어붙이고 템포를 뒤집어가며 청자를 빨아들이는 도파민-에이드 같은 트랙이다.
수록곡들은 '레모네이드'가 보여주는 모순적 화학식을 선명한 개성으로 표출한다. 콘셉추얼한 아이돌 서사의 세계와 캐치한 팝송 세계를 접붙이고는 이를 대형 공연장에 어울리는 강력한 선동성으로 이어낸다. 지금 K팝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매력을 가진 걸그룹 에스파의 오늘에 어울리도록.
팬덤과 함께 성장해온 '4세대 걸그룹'의 기수
‘레모네이드' 앨범을 두고 "에스파가 가장 잘하는 걸 했다"고 평가하는 이가 많지만, 더 중요한 건 "어쩌다 하필 이런 걸 잘하게 됐나"일 수 있다. 이른바 '4세대 걸그룹'은 과거 걸그룹처럼 한정적인 이미지 운용과 대중적 취향에 갇히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체로 당당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본질이라기보다 결과다. 이들이 뚜렷한 개성을 내세우고 자신 있게 사운드와 이미지를 개척하는 건 팬덤의 든든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팬덤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하고, 이들은 팬덤의 응원에 화답하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에스파는 4세대 걸그룹의 기수 같은 존재다. 도발적 이미지로 가득하던 데뷔도 그랬지만, 용감한 선택을 고집스레 지속하고 경신해온 과정도 그렇다. 그 5년 반의 실험과 성장이 한 아티스트를 어디까지 멀리 가게 할 수 있는지를 이번 앨범은 보여주고 있다. 조급증에 시달리는 K팝이 벌써부터 '6세대' 같은 말을 꺼내기 시작하지만, 4세대를 지금부터 더 주목하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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