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선관위 폐지론… 법조계 “폐지는 개헌, 수술은 법 개정으로 가능”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폐지하거나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정치권에서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선관위 폐지와 제도 개선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선관위 자체를 없애거나 헌법상 지위를 바꾸려면 개헌이 필요하지만, 투표용지 부족 재발을 막기 위한 선거관리 절차 보완은 법률 개정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중앙선관위원장을 비상임직에서 상임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이른바 ‘선관위 개혁법’ 발의를 예고했다.
정치권에서는 선관위 해체 수준의 개혁, 국정조사, 특검, 사전투표제 개편, 선관위원장 상임직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들 요구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법적 절차는 각각 다르다. 선관위 폐지는 헌법 개정 사안인 반면, 선관위 운영 방식과 선거관리 절차 보완은 법률 개정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다.
◇선관위 폐지는 개헌 사안… 법률로는 불가능
현행 헌법은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정당에 관한 사무 처리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구성 방식도 헌법에 직접 명시돼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 국회가 선출하는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등 9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의 임기는 6년이다. 위원의 정치 관여 금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 선고가 아닌 경우 파면 제한, 규칙제정권도 헌법상 규정이다.
중앙선관위가 행정부 소속 일반 행정기관이 아니라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으로 설계돼 있는 만큼, 선관위 제도 자체를 법률로 폐지할 수는 없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헌법이 설치를 예정한 기관을 법률로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헌안은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 뒤 국민투표를 거쳐야 확정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이유로 선관위를 곧바로 없애는 것은 현행 헌법 체계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투표용지 관리·현장 대응은 법 개정으로 가능
반면 개헌 없이 가능한 조치도 적지 않다. 헌법은 각급 선관위의 조직과 직무 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법과 공직선거법을 고치면 선관위 운영 방식과 선거관리 절차는 상당 부분 손볼 수 있다.
예컨대 공직선거법에 투표소별 선거인 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예비 투표용지로 확보하도록 하고, 선거 전날 투표용지 수량·도착 여부를 구·시·군선관위와 투표관리관이 이중 확인하게 할 수 있다. 투표용지 부족이나 투표 중단이 발생하면 즉시 상급 선관위에 보고하고, 중단 시간·조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선거관리위원회법을 고쳐 중앙선관위원장의 근무 형태와 책임성을 강화하고, 사무총장의 실무 책임과 사고 발생 시 국회 보고 의무를 명확히 하는 것도 입법으로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중앙선관위원장의 상임직화가 중앙선관위 구성 방식이나 헌법상 독립기관성 자체를 바꾸는 수준으로 나아가면 법률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생긴다.
헌법을 전공한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앙선관위의 비상임·겸직 구조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중앙선관위에서 오랫동안 대법관과 고등법원장 등 현직 법관이 겸직해 온 관행이 있다”며 “법관들이 실질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사무총장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몫에 현직 법관을 관행적으로 앉히는 구조를 차단하고, 지방선관위의 법관 참여 구조도 새롭게 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만 위원 전원을 상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폈다. 그는 “9명을 모두 상임으로 하는 것은 예산 등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인원수를 줄이고 일부를 상임화하는 방안은 의미가 있지만, 중앙선관위 구성 자체를 바꾸는 문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부 통제 한계… 국회 견제도 구조적 딜레마
선관위에 대한 외부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에는 헌법상 제약이 따른다. 선관위가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정부나 감사원이 일반 행정기관처럼 포괄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를 직무감찰한 것은 헌법과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 결정에 대해 “독립기관이라고 견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며 “선관위도 감사원 감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는 헌재 결정과는 다른 견해지만, 선관위 책임성을 둘러싼 법조계 내부 논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관위의 책임성을 높일 현실적 주체로는 국회가 거론되지만, 이 역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만큼 선거 관리와 선거법 위반 판단 권한을 가진 선관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르면 각급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해 중지·경고·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필요하면 수사의뢰나 고발도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결국 국회가 국정조사를 하고 필요하면 선관위를 감시해야 한다”며 “국회의원들이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선관위를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책임 회피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선관위 판단을 의식하게 되는 구조는 선거법이 지나치게 엄격한 데서도 비롯된다”며 “선관위 조직뿐 아니라 선거법까지 종합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헌법소원은 위헌 여부 판단… 제도 개혁은 입법 과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서는 헌법소원도 제기됐다. 헌법소원은 선관위의 투표용지 준비와 현장 대응이 헌법상 선거권 보장 의무에 미달했는지를 확인받는 절차다. 인용되더라도 곧바로 재선거가 이뤄지거나 선관위가 자동으로 폐지·개편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헌재가 선관위의 투표용지 준비와 현장 대응이 헌법상 선거권 보장 의무에 미달했다고 판단하면 향후 선거관리 제도 개선의 기준선이 될 수 있다. 투표용지 인쇄량 산정, 예비 투표용지 관리, 부족분 공급, 대기자 안내, 현장 기록 보존 방식 등이 입법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해법은 단계별로 갈린다. 선관위 폐지나 헌법상 지위 변경은 개헌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면 투표용지 수요 산정, 예비분 관리, 부족분 공급, 현장 안내, 기록 보존, 책임 규정 강화는 법률 개정으로 가능한 영역이다. 법조계에서는 선관위 책임론을 폐지론으로만 몰아가면 정작 필요한 재발 방지책 논의가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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