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허술하고, 의지도 부족하다 … 여성 기초단체장 3.9%뿐 [플랫]
“추 당선인, 경기도정 나아가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 확대 위한 역할해야”
6·3 지방선거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했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376만80표(득표율 55.04%)를 받으며 같은 여성인 양향자 국민의힘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이래 여성 정치인이 광역단체장으로 선출된 것은 처음이다. 남성 중심의 한국 정치 풍토 속에서 여성 정치인이 유리천장을 깬 의미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 정치인에 대한 벽은 매우 높았다. 광역단체장 전체 16명 중 여성은 추 당선인 1명(6.2%)밖에 없다. 기초단체장은 227명 중 여성이 9명(3.9%)뿐이다. 9명 중 6명은 민주당, 3명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여성 기초단체장이 30명은 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거대 양당의 무관심 속에서 여성 기초단체장 당선인 비율은 2022년 지방선거 때(3.0%)보다 단 0.9%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지방정치에서 여성이 충분히 대표되기 위한 최소기준인 ‘30%’ 선에 근접하지도 못한 처참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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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무관심 속 공천부터 여성 실종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초 타이틀을 단 여성 당선인은 추 당선인 외에도 있다. 서울에선 김미경 은평구청장 당선인(민주당)이 3선에 성공했다. 서울 최초의 여성 3선 구청장이다. 경기에선 첫 3선 여성 시장 2명이 동시에 나왔다. 김보라 안성시장 당선인(민주당)과 신계용 과천시장 당선인(국민의힘)이다. 김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학연과 지연, 성별이라는 단단한 유리천장을 오직 실력과 정책으로 깨부순 안성시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광주 북구에선 신수정 당선인(민주당)이 광주 최초의 여성 구청장, 부산 기장군에선 우성빈 당선인(민주당)이 최초의 여성 군수가 됐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 당선인 수는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민주당·국민의힘을 합쳐 기초단체장 여성 후보를 25명 공천했는데 9명만이 당선 문턱을 넘었다. 구체적으로 기초단체장 당선인 중 여성 비율이 서울 8.0%(25명 중 2명), 부산 12.5%(16명 중 2명), 인천 9.0%(11명 중 1명), 경기 6.4%(31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공천에서부터 거대 양당 여성 후보가 ‘0명’이었던 대구와 대전의 기초단체장은 모두 남성으로 채워지게 됐다. 경북에선 40대 여성인 김기현 후보(민주당)가 경산시장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경기 안산시에서 최초의 여성 시장에 도전한 천영미 후보(민주당)는 49.55%를 득표했지만 남성인 이민근 국민의힘 후보(50.44%)에게 석패했다.
애초 공천에서부터 여성 후보 수가 현저히 부족했다. 여성 공천 비율이 광역단체장 9.3%, 기초단체장 7.2%, 광역의원 23.7%, 기초의원 26.3%이었다. 정의당, 노동당, 진보당 등을 제외하고 거대 양당만 따지면 여성 공천 비율은 더 떨어진다. 공직선거법 제47조는 정당이 지방의원 후보자를 추천할 때 전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고, 광역의원 또는 기초의원 선거 중 하나에서 선거구마다 1명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후보자 추천 때 여성을 30% 이상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의무가 아닌 권고라 정당이 특별히 여성 공천 의지가 없으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은 여성 할당 대상도 아니다.
제도는 허술하고 정당은 의지가 부족하다 보니 일부 선거구에선 여성 지방의원 후보가 의무공천 기준을 채운 뒤 사퇴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서울 강동구에서 민주당,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서 국민의힘 여성 후보가 후보 등록 후 사퇴했다며 “여성 정치인을 실제 대표자가 아닌 요건 충족용 인물로 취급한 것이고, 여성 정치 참여 확대라는 제도 취지를 정면으로 무력화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2030 남성 표 의식해 성평등 외면했나
이번 선거에서는 성평등 의제도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분석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의 성평등 관련 공약은 돌봄 지원과 난임, 출산 지원에 집중됐다.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과 성역할에 국한된 정책을 주로 내세운 것이다. 광역단체장 후보 53명 중 28명의 공약에 돌봄 지원이 포함됐고, 10명의 공약에 경력단절 예방, 임신 출산, 난임 지원 등 건강 관련 의제가 포함됐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방안이나 성주류화, 성평등 정책 강화를 공약으로 낸 후보는 극히 드물었다.

이은경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공동대표(고려대 정책대학원 감사행정학과 교수)는 “미투운동 이후 있었던 지선·총선 때는 정치·경제 영역 관련 공약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번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 대표성이 굉장히 낮은데 이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공약이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공약이) 돌봄과 재생산 대상 지원에 편중됐다는 것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성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정치, 경제, 문화, 법 등 다른 영역에서도 골고루 성평등을 위한 구조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정치인과 성평등 의제가 사라진 배경엔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 정치권이 만든 ‘이대남’ 프레임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국민의힘과 비교했을 때) 민주당이 그나마 여성과 성평등 관련된 의제를 내지만 (여성 유권자를) ‘집토끼’라고 생각하고 이대남 표를 잡기 위해 이대남 정서에 부응하는 선거전략을 추진해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 경향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여성을 강조하면 20대 청년 남성의 표가 오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당내에 있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여성 의원들의 활동이나 성평등 의제를 말하는 게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30 여성들이 12·3 비상계엄 후 탄핵광장에 적극 참여하며 사회 대개혁을 요구했지만, 현실 정치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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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기존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이번 선거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은 정원오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보다 높게 나왔지만, 30대 여성은 오 후보가 정 후보보다 높게 나왔다. 물론 2030 남성과 비교하면 2030 여성의 민주당 지지세가 더 높지만 30대 여성이 오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것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20대 남성의 75.3%, 30대 남성의 61.8%는 오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왔다. 2025년 21대 대선 때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의 약 74%, 30대 남성의 약 60%가 보수진영 후보를 뽑았다고 나온 것과 비슷하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성평등 의제와 청년세대 어려움을 세밀하게 정책으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표심 이탈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미애 당선인이 ‘여성 1호 광역단체장’이 된 만큼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 공천 30% 할당을 권고가 아닌 의무화하고,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여성 공천 의무화를 도입하는 등 제도개선 방안이 제시돼왔다. 김은주 소장은 “여성 광역단체장이 나온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지만 1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추 당선인은) 경기도정을 열심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 후배 정치인들이 정치인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성이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줄 책임이 있다”고 했다.
▼ 이혜리 기자 lhr@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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