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의 역사 94] 기림사의 신화 전설

신라시대에 중창 건립된 호국사찰 기림사는 동해를 마주한 경주 함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기림사는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며 법등을 이어 온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에는 역사와 전설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인도 천축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승려 광유선승의 창건 설화, 원효대사와 관련된 사찰 명칭의 유래, 그리고 영웅을 길러냈다는 신비의 샘 오종수 전설은 기림사를 단순한 사찰이 아닌 살아 있는 이야기의 공간으로 만든다.

◆신화전설 1 : 기원정사와 임정사
경주 함월산 자락에 자리한 기림사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고찰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림사의 시작은 지금의 이름이 아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잊혀진 두 개의 작은 사찰, 기원정사와 임정사가 기림사의 뿌리로 전해진다.
기림사 사적기와 전설에 따르면 신라 초기 인도 천축국에서 온 광유선승이 바닷길을 따라 동해안에 도착했다. 먼 이국에서 불법을 전하기 위해 온 그는 함월산 깊은 숲속에서 수행처를 찾았고, 그곳에 작은 사찰을 세웠다. 이것이 임정사다. 숲과 샘이 어우러진 곳에 자리한 임정사는 수행자들이 번잡한 세상을 떠나 마음을 닦던 고요한 도량으로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사찰 이름의 유래를 넘어선다.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문화와 신라의 토착 신앙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탄생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천축에서 건너온 불법이 함월산의 숲과 계곡, 샘물과 어우러지며 신라인들의 삶 속에 뿌리내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함월산에는 오래전부터 신성한 숲과 영험한 샘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왔다. 사람들은 산을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여겼고 수행자들은 이곳에서 깨달음을 구했다. 기림사는 바로 이러한 전통 신앙과 불교가 만나는 경계에서 태어난 사찰이었다.
오늘날 기림사를 찾으면 오래된 나무와 계곡, 고즈넉한 전각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는 천축에서 바다를 건너온 광유선승의 발자취와 원효대사의 원력이 함께 스며 있다. 기림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신라가 세계와 만났던 기억의 공간이자, 서로 다른 문화가 융합된 상징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흔적 : 기림사의 보물들
기림사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호국사찰이자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역사문화의 보고다. 경내 곳곳에 남아 있는 전각과 불상, 불화와 복장유물은 단순한 종교 유산을 넘어 시대의 신앙과 염원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기림사의 중심 법당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이 건물은 조선시대 건축미를 간직한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내부의 비로자나불좌상과 후불탱화, 불상 복장유물 역시 중요한 국가유산으로 평가받아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기림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대적광전은 오랜 세월 기림사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해왔다.

응진전에는 나한신앙의 전통을 보여주는 오백나한상이 봉안돼 있다. 경주지역에서 채취한 불석으로 조성된 나한상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과 개성을 지니고 있어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한다. 응진전 역시 최근 보물 지정이 예고되면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나한상도 따로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명부전도 빼놓을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 무량수전을 이전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삼존과 열 명의 시왕상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시왕상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된 작품으로, 18세기 불교조각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전통적으로 성호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보급 문화유산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문화유산청의 빠른 움직임을 기대하고 있다.

진남루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 활동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경내 곳곳에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려 했던 선조들의 정신이 남아 있다. 진은 진압한다는 뜻, 남은 남쪽 일본을 가리킨다. 일본의 침략을 진압한다는 호국사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기지였다.
기림사의 건칠보살반가상은 조선시대 연산군 시대에 제작된 보물이다. 나무 골격에 삼베를 두르고 옻칠을 반복해 속을 비워내는 건칠기법으로 불상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법으로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 예술성이 뛰어나고, 불상의 무게가 가벼운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불상의 대좌에 홍치 14년(연산군 7년, 1501년)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례가 드문 건칠불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국보로 승격해야 한다는 여론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신화전설 2 : 오종수
함월산 깊은 곳 기림사에는 오래전부터 신비로운 샘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사람들은 이 샘을 오종수라 불렀다. 다섯 종류의 특별한 물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오종수는 동서남북과 중앙에 자리한 다섯 개의 샘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탁수와 화정수, 명안수와 감로수, 그리고 중앙의 장군수가 그것이다. 각각의 샘은 저마다 다른 효험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명안수다. 눈병을 낫게 하고 시력을 밝게 해 준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찾았다고 한다. 감로수는 차를 끓이는 최고의 물로 알려졌으며 수행자들은 감로수로 차를 달여 몸과 마음을 맑게 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한 장수가 장군수를 마신 뒤 큰 뜻을 품게 되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는 장군수를 마신 사람이 천하를 움직일 힘을 얻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결국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그 기운을 두려워해 우물을 막고 그 위에 탑을 옮겨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기림사 측에서는 응진전 앞의 소나무를 예로 든다. 50년 생 소나무이지만 2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장군수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라 해석한다.
오종수에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다섯 샘물로 길러낸 오색화 이야기다. 붉고 푸르고 노란 빛과 흰색 등의 다섯 가지 색을 띤 신비한 꽃은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병을 치유하고 죽음마저 극복하게 한다고 믿어졌다. 사람들은 오색화를 통해 건강과 장수, 풍요로운 삶을 기원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미신으로만 보기 어렵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희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질병, 가난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오종수에 자신의 소망을 담았다. 누군가는 건강을 빌었고, 누군가는 나라를 지킬 영웅의 탄생을 꿈꾸었다.
오늘날 오종수는 전설로 남아 있지만 함월산을 찾는 이들에게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맑은 샘물 소리에는 신라인의 꿈과 고려인의 기도, 조선 백성들의 희망이 함께 흐르고 있는 듯하다.
최근 기림사는 다섯 샘의 위치와 전승을 조사하며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라진 샘의 흔적을 되찾아 전설과 역사를 함께 전하는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기림사는 샘의 원천지에 오탁수와 화정수, 명안수와 감로수, 장군수라는 이름을 인쇄한 표지판을 설치하고 전설을 안내하고 있다.
기림사는 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지만, 그 속을 흐르는 진정한 힘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창건 설화와 호국의 기억, 그리고 오종수의 전설은 오늘날에도 함월산을 살아 숨 쉬는 신화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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