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필리핀, 안보리 진출 좌절…'친미·친이스라엘' 탓?

이유 에디터 2026. 6. 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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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충격적인 패배'
오스트리아·포르투갈·키르기스스탄에 고배
독일 104표, 6년 전 184표에서 거의 반토막
유로뉴스 "독일은 명백히 신뢰를 잃어" 논평
필리핀, 키르기스에 완패…"미국의 부보안관"
과도한 친미 행보 탓에 '중립성 퇴색' 비판도

독일과 필리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이 좌절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통하는 독일과 필리핀은 지난 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임기 2년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거에 각각 서유럽·기타 지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후보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석이 배정된 서유럽·기타에선 오스트리아와 포르투갈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유럽의 맹주인 독일을 꺾었고, 1석이 배정된 아시아·태평양에선 중앙아시아의 소국 키르기스스탄이 필리핀을 제쳤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승리를 낙관했던 독일과 필리핀엔 매우 충격적인 결과였음은 물론이다.

이날 선거에서 ▲ 오스트리아, 포르투갈(서유럽·기타) ▲ 키르기스스탄(아시아·태평양) ▲ 아프리카(짐바브웨) ▲ 중남미·카리브(트리니다드토바고) 5개국이 새로 뽑혔고, 2027년부터 2년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한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대표단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86차 본회의 중에 2027~2028년 임기의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2026. 06. 03 [출처. 유엔 공보국] 시민언론 민들레.

독일·필리핀, 유엔 안보리 진출 '좌절' 충격
'친미·친이스라엘' 행보에 반작용 분석도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되려면 유엔 전체 193개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 최소 129개국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유엔 공보국에 따르면, 서유럽·기타에선 투표 1라운드에서 오스트리아와 포르투갈이 각각 134표와 131표를 얻어 129표를 넘겼다. 독일은 104표로 3위에 그쳤다.

2018년 독일이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할 때는 184표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지난 6년간 유엔 회원국들 사이에서 독일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영국 가디언과 이스라엘 하레츠 등에 따르면, 이번 결과에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도 기자들과 만나 "쓰라린 패배"라고 인정했다. 그리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과정에서 독일이 견지했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가 그 요인이었으며, 특히 러시아가 독일 반대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약 80개국의 장관과 대사들에게도 별도로 자신의 이런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바데풀은 또한 "독일이 중동 분쟁에서 언제나 이스라엘에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 역시 표를 잃게 했을 수 있다"면서 독일이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의 행동, 서안지구 정착촌 정책, 레바논에 대한 군사 공격 등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독일은 이스라엘 곁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유로뉴스는 "독일은 명백히 신뢰를 잃었다. 정치적으로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쇠퇴하는 국가로 여겨진다"며 "독일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논평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7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영국 총리 관저에서 키어 스타머 총리와의 회담을 위해 이동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2026. 06. 07 [AP=연합뉴스]

독일, 6년 전 184표, 이번에 반토막 수준
유로뉴스 "독일은 명백히 신뢰를 잃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키르기스의 승리, 필리핀의 패배는 그야말로 극적이다. 양국의 인구와 경제 규모,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2025년 기준으로, 필리핀은 키르기스 인구 약 740만 명의 16배, GDP(국내총생산) 약 170~200억 달러의 25~30배에 달한다. 더구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올해 의장국이다. 키르기스 대 필리핀의 득표수가 1라운드 투표에선 105표 대 85표였지만, 점차 그 격차가 확대돼 4라운드에서 142대 49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에 유엔은 발표문을 통해 "이번 선거는 키르기스가 1992년 유엔 가입 이후 최초로 안보리에서 일하게 된 역사적 이정표가 됐다"고 평가했다.

5일 호주 매체 더인터프리터에 따르면, 필리핀으로선 안보리 이사국 진출에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란 점에서 충격이 컸다. 더구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정학적 중립성'과 '원칙 있는 평화'의 목소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홍보전에 열을 올렸고, 떠오르는 중견국으로서의 "강점"과 "긴 세월 쌓아온 매우 강력한 유엔과의 협력 기록"을 강조하며 승리를 낙관했기 때문이다.

더인터프리터는 필리핀을 "미국의 부보안관"으로 칭하며 그 패배 원인 중 하나를 미국과의 지나친 밀착을 꼽았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이란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며, 러시아와 최근 러시아와의 대규모 에너지 거래를 재개하는 등 '중립적' 행보를 보이려 애썼지만, 과도한 '친미 행보'로 스스로 내세운 '중립성'이 퇴색했다는 것이다.
 22일, 필리핀 마닐라 소재 미국 대사관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열린 집회 도중, 시위대들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풍자 이미지를 들고 있다.. 2026. 04. 22 [EPA=연합뉴스]

'미국 부보안관' 필리핀, 소국 키르기스에 완패
과도한 친미 행보로 인한 '중립성 퇴색' 지적도

특히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과 척진 대목을 짚었다. 매체는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베이징에 반대해 강경하고 목소리 높인 스탠스가 중국과 러시아와 매우 돈독한 관계를 맺은 키르기스에 패배하는 데 역할을 한 건 분명하다"면서 "흥미롭게도 필리핀의 득표수는, 2016년 해상 분쟁에서 중국을 상대로 거둔 필리핀의 중재 재판 승리를 지지했던 국가들의 수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더인터프리터는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마닐라 역시 요즘 유엔에서 극도로 반발을 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광범위한 방위 협력으로 인해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도국과 저소득국) 국가들 사이에서 입지를 잃었다"며 "지난달 마닐라는 서방 동맹국들과 역대 최대 규모의 합동 군사훈련을 감행했고,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중국이 이웃 대만을 침공할 경우 자국은 중립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핵심 광물과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을 위한 미국 주도의 '팍스 실리카' 구상에 동참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매체는 "그래서 필리핀이 더 중립적이거나 베이징과 친밀한 지역 국가들로부터 조롱 섞인 '동남아 내 미국의 부보안관'이라고 치부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브런슨 사령관의 주문대로 제1 도련선과 제2 도련선을 안내하는 지도를 90도 돌리면 한국은 아시아의 심장 중국에 단검(비수)를 꽂는 모양이 된다. 한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연결돼 중국과 대만에 맞서게 된다.  

물론 필리핀의 또 다른 패배 요인으로 키르기스의 비동맹 외교정책과 중앙아시아 대변자라는 국가 브랜딩, 그리고 중동과 우크라이나 분쟁 속에서 더 확장된 유라시아 지역의 중요성 등도 거론됐다. 이에 베테랑 필리핀 외교관 호세 데 베가는 "필리핀이 실제로는 서방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 모두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으며, 결정적으론 유엔에서 다자 동맹의 역사를 지닌 '중추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과는 특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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