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계절도, 장마도 바꾼 기후변화
역대 가장 더운 5월을 보내며 다가올 여름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의 평균기온은 18.6℃. 평년보다 1.3℃ 높고, 지난해와 비교하더라도 무려 1.8℃ 높았습니다. 평균최저기온도 12.7℃로 역대 가장 높았습니다. 평균최고기온은 24.9℃로 수십년의 세월 중 손꼽히게 높았고요.
5월의 기록만 보더라도 기후변화가 바꾼 현실이 드러납니다. 5월 평균기온이 처음으로 18℃ 선을 넘은 것은 2009년에서였습니다. 이후 18℃는 '뉴 노멀'이 됐죠. 2012년에도 2009년과 마찬가지로 18.1℃의 월 평균기온을 기록하더니 2014년엔 18.2℃로 역대 기록이 깨졌고, 이듬해엔 2015~2016년 2년 연속 18.4℃로 또 다시 기록은 경신됐습니다. 그리고 2017년엔 18.5℃로 5월 평균기온은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2018년엔 17.7℃로 소폭 떨어졌지만, 이 역시 평년을 상회하는 수준이었고, 2019년 다시 18.4℃로 '역대급 수준'으로 더운 달을 보내게 됐죠. 그리고 2022년 또 다시 18℃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8.6℃라는 신기록을 또 쓰게 된 겁니다.
평균최고기온의 경우에도, 1978년 이례적으로 25.3℃의 기록적 기온이 기록된 이후 단 한 차례도 25℃를 넘어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이 되어서야 25℃가 기록됐는데, 이후엔 마치 25℃가 '뉴 노멀'인양, 이를 오르내리는 평균최고기온이 이어졌죠. 평균최저기온 역시, 1982년 12.1℃라는 이례적 기온이 기록된 이후 2001년 12.6℃로 기록이 깨졌고, 올해 이 기록은 12.7℃로 다시 깨졌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엔 하순(23, 24, 26, 27, 28, 29일)에 집중적으로 전국 62개 관측지점 중 절반 이상에서 이상고온이 발생했고, 4월 19일 서울의 일최고기온이 29.4℃에 달하며 4월 중순 일최고기온 역대 최고값을 경신했죠. 5월 17일엔 35.1℃까지 치솟은 밀양과 33.8℃까지 오른 합천에서, 18일엔 대구(34.7℃), 안동(33℃), 광주(32.7℃), 충주(32℃), 원주(31.5℃)에서 '5월 중순 일최고기온 극값'이 깨졌습니다.

5월엔 '일최고기온 극값' 경신을 넘어 구미(5월 16일), 거창(5월 17일), 문경과 안동, 영천(5월 18일)에서 역대 가장 이른 폭염이 발생했는데, 그로 인해 5월 전국 폭염일수는 0.5일로 '역대 2위'를 기록했습니다. 북극 바렌츠해에 블로킹 형태로 강한 기압능이 발달하면서 대기 파동으로 러시아 한복판엔 반대로 저기압과 기압골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파동을 따라 한반도 대기 상층엔 고기압성 순환이 강화했는데, 고기압으로 맑은 하늘 아래 햇볕으로 더워진 것에 더래 이 고기압의 하강기류가 공기를 압축하면서 온도가 높아지는 단열승온까지 나타났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입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10년 평균을 따져보면, 여름의 길이는 130일로 과거 30년에 비해 무려 32일이 늘었고, 겨울은 86일로 23일이 줄었죠. '뚜렷한 사계절'은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인 겁니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경우를 상정한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 공통사회경제경로)5-8.5 시나리오에 따른 예측 결과, 금세기 후반 여름은 5월 1일 시작해 장장 169일간 이어지고, 겨울은 1월 1일부터 불과 40일만에 끝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전국 평균'으로, 남부지방의 경우엔 사실상 겨울이 사라지게 될 전망이죠.



최근 10년의 통계를 살펴보면, 앞선 월별, 계절별 강수일수에서 나타난 것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중부지방 기준으론 2020년엔 장마가 무려 54일간 이어지며 평년보다 20여일이나 길었던 때도 있었지만, 2018년엔 반대로 16일만에 끝나 평년의 절반 수준에 그칠 때도 있었던 겁니다.

이는 기상학계의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6~7월 무렵 장기간에 걸쳐 비가 내리는 것을 장마라고, 그때 내리는 비를 장맛비라고 부르지만, 기존 기상학적 의미에서의 장맛비는 '여름철 한반도를 오르내리는 정체전선에 의해 내리는 비'를 의미했습니다. 여름철 3~4일 비가 잇따라 내리더라도 정체전선이 없다면 '그냥 비'일 뿐, '장맛비'라고 불리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 '장마'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재해 대비'의 기준이 되기도, 시민들이 안전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알람'이 되기도 합니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장맛비가 아닌 비에 시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큰 피해를 입는 일이 빈번해지는 기후위기 속 오늘, 기존 정의를 고수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에,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 2022년 장마는 짧은 강수일수로 '마른 장마'로 불리기도 했지만, 장마기간 한번 내리기만 하면 폭우가 쏟아지는 '도깨비 장마'라고도 불렸습니다. 또, 여름철이긴 했지만 장마기간은 아니었던 8월엔 갑작스런 극한호우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기도 했죠.

장마: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장마철: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며 북상하는 시기에 남쪽의 온난습윤한 기단과 북쪽의 한랭한 기단 사이에서 다양한 기작에 의해 다량의 강수가 한반도에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되는 기간
장맛비: 이러한 장마철에 내리는 비
장마와 장맛비는 더 이상 '정체전선'에 얽매이지 않게 됐습니다. 학회는 “장마철에 발생하는 강수는 정체전선성 강수, 중위도 저기압성 강수, 대류성 강수 등 다양한 원인과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다만 태풍에 의한 강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초 '정체전선이 만들어지는 요인'으로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오호츠크해 고기압에 대해서도 학회는 “존재 자체가 불분명해 배제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학회가 예시로 설명한 장마철 집중호우의 다양한 발생 원인을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학창시절 한반도를 중앙에 두고 시계방향으로 '시베리아 기단(겨울)-오호츠크해 기단(초여름)-북태평양 기단(여름)-양쯔강 기단(봄·가을)'이라고 외웠던 주요 기단 가운데 오호츠크해 기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년간의 논의 끝에 장마의 정의마저 바꿔놓은 기후변화는 행정적 계절구분 또한 바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석 달도 안 되는 겨울, 넉 달을 넘어서는 여름을 보내고 있고, 앞으론 거의 연중 절반을 차지하는 여름, 한 달이 채 안 되는 겨울을 마주하게 될 만큼, 기존의 '3개월 균등 구분' 방식으론 되려 사회적인 혼란을 부를 수도,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방학을 기준으로 '여름 휴가철', '겨울 휴가철'과 같은 표현으로 부르는 휴가철 풍경도 바꿀지 모릅니다. 마치, 해외에서 여름철 오랜 기간 '바캉스'라고 부르며 몰아서 쉬는 것처럼 말이죠.
올 여름, 6~7월 평년보다 많은 비가 예상되는 가운데 예측 어려운 갑작스런 집중호우, 극한호우도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기도, 지표면도, 해수면도 한껏 달궈진 만큼 '그저 고기압에 뒤덮여 푹푹 찌는 날'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대기를 한껏 채운 수증기가 한 데 모여 쏟아지는 날' 또한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공식적으로 장마의 정의까지 달라진 만큼, 다양한 요인들로 인한 호우에 유연히 대처하기 위한 후속 조치들도 신속히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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