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1명당 사례비 30만원”…불법 판치는 혈액투석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6. 6. 8. 07: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보재정 2.8조 쏟고도 부실운영
심평원 평가 5년연속 최하위에도
제재·관리 안 받는 병원 수두룩
요양급여비 올리려 사례금 주고
차량·식사 제공해 불법환자 유치
환자 급증에 투석 재정부담 커져
클립아트코리아

연간 2조 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혈액투석 시장에서 불법 환자 유치와 부실 운영이 판치고 있다. 치료비를 받기는커녕 용돈을 얹어주며 환자를 끌어모으는 인공신장실이 버젓이 영업 중인데다 정부 평가에서 5년 연속 최하위를 받고도 제재를 받지 않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 환자 증가율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법적 관리 체계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두 차례 실시된 혈액투석 적정성 평가에 서 28개 의료기관이 연속으로 최하위인 5등급을 받았다. 의원급이 15곳으로 가장 많았고 병원 7곳, 요양병원 4곳, 종합병원 2곳 등 다양한 의료기관이 포함됐다.

정부 평가에서 2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면 환자 안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강력한 시정조치를 부과하거나 퇴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심평원이 2009년부터 전국 인공신장실을 대상으로 적정성 평가를 시행하고 1~5등급을 매겨 공표하고 있지만, 평가 결과만으로 지정 자체를 취소하는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건강보험 수가를 더 주거나 깎는 수준이어서 진료의 질 개선을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따라 혈액 투석 후 치료비를 받기는커녕 용돈(지원금)을 주거나 병원 차량에 식사까지 제공하며 환자를 유치하는 불법 영업도 끊이질 않고 있다. 투석 환자를 알선하면 1명당 20만~30만 원의 사례비를 주는 불법 환자 알선 행위도 벌어진다. 투석을 받느라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환자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런 병원을 찾아 2~3년씩 옮겨 다니며 이른바 ‘투석 낭인’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성 콩팥병으로 진단돼 10년 가까이 하루 4~5시간씩 이틀에 한 번꼴로 인공신장실을 찾아 투석을 받으면서도 노폐물이 혈액에 쌓여 전신에 독성을 나타내는 상태인 요독증 등 합병증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황원민 대한신장학회 홍보이사(건양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법적 관리체계가 없다 보니 의료 질 관리가 되지 않는 인공신장실이 난립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건강보험 환자 혈액 투석비가 1회당 14만 원대인 가운데 만성 콩팥병 환자는 건보 부담이 90%에 달하는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생존 경쟁에 내몰린 병원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요양급여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례금까지 줘가며 투석 환자 모시기에 혈안이 된 것이다. 환자 유치에 비용을 쓰다 보니 정작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환자의 건강이 위협받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의사 면허 없이 명의만 빌려 투석 관련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면서 건보 재정을 축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투석 관련 사무장병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2025년 투석 관련 의료기관 9곳이 사무장병원 개설 및 운영 혐의로 수사, 재판 중이거나 처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환수대상액은 약 1623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대한신장학회가 자체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을 뿐, 투석 병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인공신장실의 인력, 시설, 운영에 관한 법률 및 설치기준을 마련하고 인증의 형태로 인공신장실의 질 관리를 제도화한 것과 대비된다.

한국은 당뇨병성 만성 콩팥병으로 인한 말기콩팥병 환자 발생 증가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을 감안하면 시급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24년 실시된 ‘말기콩팥병 환자 중심 치료를 위한 정책 연구’ 결과 혈액투석 환자 1인당 연간 총진료비는 2736만 원에 달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부담은 상당하다.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대한신장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만성콩팥병 진료비는 약 2조 8300억 원에 육박했다. 학회는 10년 내 투석 관련 총진료비가 6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채워지는 건보 재정을 2조 원 넘게 쏟아붓고도 부실 병원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2월 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만성 콩팥병 관리법안은 국가 종합계획 수립, 치료비 지원 등 만성콩팥병을 체계적으로 예방·관리할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황 이사는 “고령화와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 증가로 국내 만성 콩팥병 환자가 36만 명을 넘어선 만큼, 국가 차원에서 통합 관리할 법적 기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