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밤 9시 퍼트가 만든 첫 승…'조용한 장타자' 서교림, 상금 1위로 올라섰다
– 11개 대회 11번째 우승자 나온 춘추전국시대, 첫 우승 한 방으로 상금 랭킹 선두
– 55일 중동 전지훈련…드라이버 자신감과 쇼트게임 보완
– 삼천리 직원 20여 명 현장 응원…마지막 퍼트 뒤 눈물 참다 코피까지

지난해 서교림(19·삼천리)은 우승 없이 신인왕이 됐습니다. 두 차례 준우승과 꾸준한 상위권 성적은 분명 인상적이었지만, 우승컵 없는 신인왕이라는 꼬리표도 함께 따라붙었습니다. 가능성은 증명했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남겨둔 선수. 2026년 서교림은 그 한 걸음을 2억7000만 원짜리 우승 퍼트로 마무리했습니다.
서교림은 7일 강원 원주시 성문안CC에서 끝난 KLPGA투어 2026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2025년 신인왕 출신 서교림의 KLPGA투어 생애 첫 우승입니다.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는 총상금 15억 원, 우승 상금 2억7000만 원이 걸린 특급 대회였습니다. 서교림은 이 우승으로 시즌 상금 2억6574만5714원에서 5억3574만5714원으로 올라 단숨에 상금 순위 1위가 됐습니다. 대상 포인트도 97점에서 187점으로 뛰어 1위에 올랐습니다.
이번 우승의 의미는 단순한 '첫 승'에 그치지 않습니다. 올 시즌 KLPGA투어는 아직 다승자가 나오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입니다.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까지 11개 대회에서 11명의 우승자가 나왔습니다. 2011년에는 시즌 16번째 대회에서야 첫 다승자가 나왔고, 2023년에는 14번째 대회, 2010년에는 11번째 대회에서 다승자가 탄생했습니다. 올해 역시 초반 판도는 절대 강자 없는 혼전입니다. 그 혼전의 한복판에서 서교림은 첫 승 한 번으로 상금과 대상 포인트 판도를 흔들었습니다.

서교림이 다니는 한국체대 골프부 박영민 교수는 그의 장점을 성품과 기본기에서 찾았습니다. 박 교수는 "교림이는 조용한 성품으로 매우 성실한 선수입니다. 스윙이 좋고 큰 키(174cm)에서 나오는 파워로 장타를 치며 비거리가 많이 나오는 선수입니다. 앞으로 주목해 볼 만한 선수입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화려한 말보다 꾸준한 훈련으로 자신을 증명해 온 선수라는 뜻입니다.
첫 우승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출발점은 1월 7일 아랍에미리트행 비행기였습니다. 서교림은 5년째 지도받고 있는 권기택 프로와 55일 일정의 전지훈련을 떠났습니다. 훈련지는 두바이보다 북쪽에 있는 라스알카이마 지역의 알함라 골프장이었습니다. 출국 전 그는 "대회 때와 아닐 때 드라이버 스윙이 다릅니다. 스윙 스피드를 내면 비거리가 나는데 대회 때는 아무래도 그렇게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는 스윙을 할 수 있도록 가다듬고 오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장타자의 고민은 역설적이었습니다. 큰 키에서 나오는 파워와 좋은 스윙을 하고도, 정작 대회에서는 마음껏 스피드를 내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비거리를 더 늘리는 훈련만이 아니라, 가진 비거리를 실전에서 꺼내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전지훈련은 스윙을 다시 믿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서교림은 지난해 부족하다고 느낀 쇼트게임에도 매달렸습니다. 그는 "작년에 쇼트게임이 관건이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전지훈련에서 퍼트와 어프로치를 정말 많이 연습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도 화려한 드라이버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골프장에서 연습 그린에 라이트를 켜줘 오후 9시까지 퍼트 연습을 했던 일입니다. "너무 힘들었는데도 하게 되더라"는 말 속에는 첫 승을 기다린 선수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매니지먼트 업체의 선두 주자 크라우닝의 관리를 받는 서교림의 첫 승은 삼천리 골프단에도 각별했습니다. 삼천리는 KLPGA 무대에서 꾸준히 선수들을 후원해 온 기업 골프단입니다. 올해도 고지우, 고지원, 김민주, 마다솜, 박보겸, 서교림, 이세희, 이재윤, 전예성, 최가빈, 홍진영, 송지아, 정지현 등이 삼천리 로고를 달고 투어를 누비고 있습니다. 중견 선수의 재도약, 실력파 선수의 기회, 신예 선수의 성장을 함께 지원하는 것이 삼천리 골프단의 색깔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대회 현장에서도 드러납니다. 삼천리 관계자들은 소속 선수들이 우승권에 있을 때 가능한 한 현장을 찾아 응원하며 힘을 보탠다고 합니다. 이번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도 삼천리 직원 20여 명이 현장을 찾았습니다. 안동철 삼천리 이사는 "직원 20여 명이 응원하러 갔다"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우승 없이 신인왕에 올랐던 서교림이 마침내 첫 우승 퍼트를 넣는 순간을 소속사 식구들도 함께 지켜본 셈입니다.

'대박 상금'보다 더 눈길을 끈 장면은 18번 홀 그린 위였습니다. 마지막 퍼트를 넣은 뒤 서교림은 눈물을 참으려 코를 막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피가 났습니다. 극심한 피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원래 코피가 자주 나는 편입니다. 마지막 퍼트를 넣고 눈물이 너무 나는데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코를 막았는데 갑자기 코피가 났습니다. 피곤하거나 힘들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동철 이사는 이 장면을 두고 "긴장하고 집중했던 것이 풀리면서 그런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첫 우승을 앞둔 마지막 퍼트, 끝까지 알 수 없었던 1타 차 승부, 그리고 그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순간을 떠올리면 그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물과 코피가 함께 나온 18번 홀은 서교림의 첫 승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마지막 날 우승 경쟁은 절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2번 홀에서는 바람 계산이 흔들렸습니다. 전날까지 맞바람이던 홀이 뒤바람으로 바뀌면서 7번 아이언과 8번 아이언 사이에서 고민했고, 캐디의 조언에 따라 7번 컨트롤 샷을 선택했지만 약간 뒤땅이 나면서 볼이 해저드에 빠졌습니다. 18번 홀에서도 세 번째 샷이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김민선7이 가까이 붙이자 "진짜 끝까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손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첫 승을 앞둔 선수에게 마지막 한 홀은 기술보다 심장의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서교림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올겨울 아카데미에서 자체 대회와 실전 경쟁을 많이 치르며 멘탈이 단단해졌다고 했습니다. 다른 선수들과 부딪치고, 선배들이 위기를 넘기는 방식을 보며 배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신인왕이 '성적의 안정감'으로 얻은 타이틀이었다면, 이번 첫 승은 '버티는 힘'으로 얻은 타이틀에 가깝습니다.

서교림은 이미 다음 목표를 더 높게 잡았습니다. 올해 첫 목표였던 첫 우승을 이뤘으니, 이제는 다승을 바라보겠다고 했습니다. "최소 3승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는 말도 꺼냈습니다. 상금왕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다승을 노리고 계속 도전하다 보면 상금왕, 대상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장은 KLPGA 무대에서 더 잘하고 싶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미국 LPGA 진출이라는 꿈은 있지만, 한국에서 2~3년 정도 더 뛰며 제대로 준비한 뒤 넘어가고 싶다는 구상입니다.
지난해 서교림은 우승하지 못한 신인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승할 수 있는 선수인가. 마지막 날 버틸 수 있는 선수인가. 큰 상금과 큰 무대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는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됐습니다.
서교림의 시선은 이제 곧바로 다음 무대로 옮겨갑니다. 11일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CC에서 개막하는 제40회 한국여자오픈입니다. 총상금 15억 원, 우승 상금 4억 원이 걸린 국내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내셔널 타이틀이자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입니다.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우승 상금 2억7000만 원으로 상금 랭킹 1위에 오른 서교림에게 한국여자오픈은 또 한 번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무대입니다. 마침 한국여자오픈은 소속사 크라우닝이 운영을 맡는 대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교림은 들뜨지 않겠다는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는 "다음 주는 이번 주 감이 너무 좋았어서 조금은 감을 유지하는 데 신경 쓸 것 같습니다. 메이저 대회라고 욕심 부리지 않고 똑같이 제 플레이를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첫 승의 감격을 안고 가지만, 더 큰 무대 앞에서 오히려 평소의 리듬을 지키겠다는 다짐입니다.
밤 9시까지 켜져 있던 연습 그린의 라이트, 18번 홀에서 참으려다 터진 눈물, 그리고 예상 밖의 코피. 서교림의 첫 승은 한 장면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승 없는 신인왕이 상금 1위로 올라선 날, KLPGA 춘추전국시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첫 승의 감격이 다승 경쟁의 출발점이 될지, 그의 다음 대회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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