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인력기준 제도화 ④] 간호인력의 43% 간호조무사, 제도 밖으로 밀려나

보건의료 현장은 이 순간도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고통을 겪고 있다. 그 현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지역의료와 돌봄을 묵묵히 지탱해 온 이들이 바로 간호조무사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제도는 그간 너무 인색했다.
현행 간호법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를 보조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아래 간호 및 진료보조 업무를 수행한다. 동네의원부터 중소병원, 요양병원, 장기요양기관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없으면 의료·복지 현장의 일상적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장에서 활동 중인 간호조무사는 2025년 기준 22만6천여명이다. 전체 간호인력의 43%다. 13만8천여명이 일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전체 간호인력의 86%를, 요양병원에서는 51%를 차지한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19%가 간호조무사다. 숫자가 말해주듯 간호조무사는 대한민국 보건의료 체계의 실질적 한 축이다.
43%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현장에서 축적된, 누구도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보건의료 인프라다. 그런데 정부와 간호계는 간호정책을 설계할 때 이 인프라를 사실상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현장이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국가가 스스로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간호조무사는 엄연히 간호인력이다. 법적으로도, 현장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간호정책은 오랫동안 이 사실을 외면해 왔다. 정부의 간호인력 수급 계획은 사실상 간호사 중심으로 설계됐고, 국회의 입법 논의 역시 간호사 처우와 배치기준에 집중됐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보건의료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노조마저 간호정책 논의에서 간호조무사를 주변부로 밀어두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간호사 중심의 정책 틀 안에서 22만여명의 간호조무사는 간호인력으로 호명되지 못한 채 오늘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간호조무사를 호명하는 것은 특정 직종에 대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간호인력 정책의 문제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독립적인 법정 인력기준은 여전히 전무하다. 병원급 의료기관에는 간호조무사 배치기준이 사실상 없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만 일부 운영될 뿐이다.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사를 일정 범위 안에서 '대체'하는 임시방편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상급병원 구조전환과 간호등급제 강화 흐름 속에서 기존 간호조무사가 현장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간호사 위주의 배치기준이 강화될수록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온 간호조무사들은 인력 산정에서 배제되거나 고용 자체가 위협받는 이른바 '밀어내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제도가 간호인력의 질적 제고를 명분으로 삼는 동안 정작 현장 경험을 쌓아온 간호조무사들은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장 인력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물론 공공 분야에서도 간호업무를 실제로 담당하는 간호조무사들이 법정 정원 기준의 부재로 인해 제도적 '유령인력'으로 취급받는 모순이 수년째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필수인력으로 부려지면서도,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은 결국 현장의 인력 과부하와 환자 안전 위협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그동안 수가 가산과 인센티브 중심의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실질적인 인력 확충이나 노동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유인책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현장의 실제 인력구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제도로 뒷받침하는 법적 배치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 논의의 출발점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인력으로 온전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지역사회 통합돌봄 확대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보건의료인력의 적정 배치기준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간호조무사 인력기준 법제화는 의료현장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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