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오면 향수부터 바꿔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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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습하고 끈적한 공기 속에서도 은은하게 향기로운 사람이 있다. 비결은 비싼 향수가 아니라, 계절에 맞는 향을 고르는 눈과 뿌리는 방식의 차이. 장마철은 향수를 포기할 계절이 아니라, 제대로 즐기는 법을 다시 배우는 계절이다.

향수의 문법이 바뀌는 장마 시즌. 꿉꿉함 없는 향기를 유지하고 싶다면 향도 다시 골라야 한다. 습기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오히려 이 계절의 공기와 더 잘 어우러질 향기로.
습도가 높으면 향이 어떻게 달라질까
향수는 피부 온도와 공기 중 수분에 반응한다. 건조한 날 은은하게 퍼지던 향이 습한 날엔 과하게 튀거나, 반대로 금세 사라지는 경험이 있을 텐데, 범인은 바로 습도. 습한 공기는 피부 위 수분막을 두껍게 만들고, 그 위에서 향 분자의 움직임을 바꿔놓는다.
이에 따라 탑 노트부터 베이스 노트까지 순서대로 열려야 할 향이 습기 때문에 한꺼번에 터지거나 뒤섞이는 것이 원인인 것. 공기 중 수분이 많을수록 향 분자가 코에 더 빠르고 강하게 닿는 것도 같은 이유. 늘 쓰던 향수, 똑같은 양인데 갑자기 향이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건 착각이 아닌 과학이다.
장마철 향수 트러블의 잡기 위한 핵심은 '증폭'. 습도가 올라가면 공기 중 수분 입자가 향 분자의 이동 속도를 늦추고 피부 위에 더 오래 붙잡아 두는데, 평소보다 향이 짙고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제는 이 증폭이 모든 향에 균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 화이트 플로럴이나 오리엔탈처럼 분자 구조가 무거운 계열은 여름 습도 환경에서 강도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 겨울엔 완벽했던 머스크-앰버 조합이 장마철 지하철 안에서 흉기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열기와 습기가 동시에 작용하면 달콤한 노트는 의도보다 훨씬 무겁게 뭉개지고, 겨울엔 관능적이었던 헤비 베이스가 한여름엔 주변 모두의 코를 괴롭히는 존재가 되는 이유다.

반대 케이스도 있는데, 뿌린 지 10분도 안 됐는데 향이 사라지는 이유는 피부 표면의 하이드로리피딕 필름, 즉 피지와 수분으로 이루어진 얇은 보호막이 그 원인이다. 이 막이 향 분자를 잡아두는 역할을 하는데, 열기가 강해질수록 막이 얇아져 결합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더운데 습하기까지 한 장마철엔 피부가 향을 붙드는 힘 자체가 평소와는 달라진다는 뜻.
결국 장마철 피부는 향수에겐 마냥 낯선 환경이다. 같은 향수가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띄는 원리를 알고 나면 장마 시즌, 집을 나서기 전 선택하는 향수의 기준도 자연히 달라지게 된다.
장마철 향 선택의 기준

노트의 구조를 알면 비교적 선택이 쉬워진다. 탑 노트(시트러스, 프레시 알데하이드, 가벼운 허브류)는 원래 10-30분 안에 사라지도록 설계됐는데, 여름 열기에선 5-10분으로 단축된다. 베이스 노트(우드, 레진, 머스크, 앰버)는 분자가 무겁고 증기압이 낮아 발향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더위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장마철에 권장되는 향의 방향성은 정리하면, 라이트하고 에어리한 무드의 시트러스, 플로럴, 아쿠아틱 계열의 경우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가장 균형 있게 작동한다. 반대로 바닐라, 오리엔탈, 헤비 머스크 계열은 가을·겨울에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뿌리는 것도 기술
고르는 것만큼 향을 뿌리는 테크닉도 바꿔보자. 고온 다습한 날씨에는 피부에 직접 뿌리기보다 옷에 뿌리는 것이 지속력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 뿌린 직후 손목을 비비는 습관은 마찰열이 향 분자를 변형시키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향수를 뿌린 후 그대로 둬 향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향수의 양보다 위치. 목 뒤, 귀 뒤 헤어라인, 팔꿈치 안쪽처럼 맥박이 뛰는 포인트에 가볍게 한 번씩 분사하자. 장마철에는 두 번 뿌릴 것을 한 번으로, 여러 부위에 뿌릴 것을 한두 곳으로 줄이는 것이 과하지 않게 향을 즐기는 요령이다.
장마 시즌엔 이 계열을 선택하세요!
1.시트러스 레몬, 베르가모트, 자몽, 라임은 분자 자체가 휘발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습도가 높은 공기 속에서는 이 속도가 오히려 완만해져 청량하고 선명한 무드를 선사한다. 단, 순수 시트러스 향수는 여전히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은 감안할 것. 한여름엔 가방 안에 미니 사이즈로 하나 챙겨, 낮 동안 1-2회 추가 사용할 것을 권한다.

(왼쪽부터) ①에르메스, 오 도랑쥬 베르트 오드코롱 오렌지 껍질과 잎, 그리고 레몬과 함께 은은한 우디향을 담은 신선한 향 100ml 19만5천원 ②푸에기아 1833, 험볼트 오드퍼퓸 신선한 시트러스와 과일의 상큼함, 톡쏘는 패션프루츠를 머금은 퍼퓸 100ml 57만2천원대 ③돌체앤가바나 뷰티, 라이트 블루 하이드레이팅 퍼퓸 젤 청량한 시트러스 향기와 촉촉한 사용감을 담은 새로운 타입의 퍼퓸 젤 제품. 30ml 9만1천원대 ④산타마리아노벨라, 아쿠아 델라 레지나 오드코롱 이탈리안 시트러스 프룻, 네롤리를 탑 노트로 둔 프레시 시트러스 부케향 코롱 50ml 14만5천원대
아쿠아틱 바다, 미네랄, 빗물 등 저마다 다른 '물의 결'을 자랑한다. 향 자체는 비교적 가볍지만 잔향에 깊이가 있어 휘발 후에도 피부 위에 은은하게 머무는 편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무거운 향이 부담스러울 때, 존재감은 유지하면서 불쾌하지 않게 공기 중에 녹아드는 것이 이 계열의 강점이다.

(왼쪽부터)①이세이미야케, 르 셀 디세이 오 드 뚜왈렛 솔트 어코드와 진저의 역동적인 마린 노트로 시작해 시더우드의 따스한 우디 잔향으로 마무리되는 에너제틱한 마린 우드 센트 100ml 13만9천원 ②이솝, 카르스트 오 드 퍼퓸 어시 노트에 깊고 그윽한 우드 계열이 어우러지는 스모키하고 미네랄한 무드의 센트. 50ml 18만5천원 ③산타마리아노벨라, 아쿠아 오 드 퍼퓸 피렌체 메디치 정원의 분수에서 영감 받은 아쿠아틱 플로럴 향수 100ml 36만5천원 ④라부르켓, 브릭스트 오 드 퍼퓸 비 온 뒤 느껴지는 대기의 상쾌함과 포근한 온기가 공존하는 향수 50ml 18만9천원
그린·아로마틱 빗 냄새, 흙 냄새가 공기에 깔리는 계절에 그린 계열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특히 베티버는 습도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지는 원료. 건식 더위에서는 스모키하고 어스씨한 인상이 강하지만, 습기가 있을 때는 초록빛의 신선한 면이 부각된다. 장마철 공기와 싸우지 않고 함께 흘러가는 향.

(왼쪽부터)①반클리프 아펠, 꼴렉시옹 엑스트라오디네르 떼 아마라 베르가못·페퍼민트의 생동감 있는 향으로 시작해 로즈·스윗 피의 섬세한 플로럴 부케를 담은 맑고 우아한 플로럴 향수 75ml 31만8천원 ②나르시소 로드리게즈, 포 힘 베티버 머스크 오 드 뚜왈렛 풍부한 상록수 숲에서 영감 받은 우디 아로마틱 향수 100ml 12만9천원 ③본투스탠드아웃, 메리 제인 오 드 퍼퓸 대마초, 아이스 민트, 소나무 리큐르의 중독적이고 상쾌한 블랜드에 캐시미어 우드의 달콤한 잔향으로 마무리되는 반항적이고 관능적인 그린 향 50ml 27만원 ④마티에 프리미에르, 메탈 라벤더 오 드 퍼퓸 차갑고 선명한 메탈릭 무드의 라벤더에 머스크와 캐시메란을 더한 새벽 공기처럼 가볍지만 존재감 있는 모던 라벤더 향 100ml 38만5천원
클린 플로럴 무겁고 크리미한 꽃향 대신 수분감이 느껴지는 맑은 화이트 플로럴 계열을 선택하자. 피오니나 목현, 물기를 머금은 장미향은 '샤워 직후'처럼 산뜻한 마무리를 도와주기도. 퀴퀴한 여름 공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리셋시켜주는 선택이다.

(왼쪽부터)
①엑스니힐로, 러스트 인 파라다이스 오 드 퍼퓸 핑크 페퍼의 스파이시한 시작에 화이트 피오니·리치의 프루티 플로럴이 피어올라 햇볕에 달궈진 피부처럼 따뜻하게 남는 향 100ml 49만원 ②푸에기아 1833, 다마 데 노체 오 드 퍼퓸 '밤의 여인'이라는 이름처럼 밤에 꽃을 피우는 자스민을 메인 노트로, 시더우드·파촐리의 관능적인 우디함과 레몬그라스·진저의 싱그러운 생기가 어우러지는 플로랄 향수 100ml 72만2천원 ③반클리프 아펠, 꼴렉시옹 엑스트라오디네르 가드니아 페탈 싱그러운 시트러스·그린 노트로 꽃망울이 맺히고, 자스민·은방울꽃의 화이트 플로럴이 만개한 꽃의 생명력 담은 향수 75ml 31만8천원 ④불리 1803, 오 트리쁠 미르 데리트레 지중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자스민·튜베로즈·로즈의 생동감 넘치는 화이트 플로럴 부케에 미르의 신비로운 발사믹 향이 어우러지는 프레시 플로럴 향수 75ml 28만9천원
이설희 기자 seherhe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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