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왜 거기서 나와?…‘AI 대부’ 젠슨 황의 잠실 시구가 남긴 것 [권준영의 머니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KBO 시구 나선 배경
KBO·OTT·로봇이 충돌한 ‘플랫폼 전쟁’의 현장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마운드에는 젠슨 황 CEO가 올랐다.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등번호 93번을 단 그는 미소를 보인 뒤 시구를 던졌고, 공은 정확히 포수 미트에 꽂혔다. 타석에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섰다. 등번호 96번. 130년 기업과 AI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 한 공간에 놓인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시구와 시타를 마친 뒤 웃으며 포옹했고, 현장은 열기로 가득 찼다.
시구를 마친 젠슨 황은 엔비디아 임직원들이 자리한 테이블석을 찾아 팬들의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에 응했다. 경기 중 전광판 카메라에 포착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약 1시간 30분가량 경기를 관람한 뒤 구장을 떠났다.
잠시 뒤 2층 단체석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BBQ 잠실야구장점에서 준비한 치킨 113마리가 현장 인력의 지원 속에 올라왔고, 엔비디아 임직원과 가족들이 이를 나눠 먹으며 경기를 관람했다. 야구장은 스포츠 공간을 넘어 기업 이벤트 무대로 확장되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이날 만남은 단순한 시구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구 전 젠슨 황과 박 회장은 두산 베어스와 구단 역사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젠슨 황은 경기 후 “두산의 우승 시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서 “두산이 왜 야구를 잘하는지, 어떻게 여러 차례 우승했는지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AI와 로보틱스 분야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젠슨 황은 “한국은 놀라운 소프트웨어와 AI,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이들이 결합하면 로보틱스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의 로봇 산업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소프트웨어와 AI, 제조업의 융합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옴니버스’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로보틱스·제조·물류 등 실제 산업 영역까지 AI 적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핵심 개념으로 ‘피지컬 AI(Physical AI)’가 거론된다. 이는 AI가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영역을 넘어 로봇·기계·산업 설비 등 물리적 세계와 직접 연결되는 흐름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는 ‘두뇌’, 로봇과 기계는 ‘신체’ 역할을 맡으며 통합 산업 시스템이 형성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생태계 장악은 이러한 구조 전환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디지털 공간에서 학습한 AI가 현실의 생산 공정, 이동, 조작, 판단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단계로 전환되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는 오늘날 기업 가치의 중심이 단순한 제조 능력에서 플랫폼과 콘텐츠, 네트워크 효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스포츠 산업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제 경기를 운영하는 조직을 넘어 대규모 콘텐츠를 생산·유통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관중 역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콘텐츠 확산의 주체가 됐다. 경기장에서 나온 장면들은 숏폼 영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재생산되며 또 다른 콘텐츠로 소비된다.
이 같은 네트워크 효과는 새로운 팬층 유입으로 이어졌다. KBO 관중 수는 2022년 607만명에서 2023년 810만명, 2024년 1088만명으로 증가했다. 2025시즌에는 사상 처음 1200만명을 돌파했고, 경기당 평균 관중도 1만5000명을 넘어섰다. 2026시즌 역시 흥행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KBO는 지난달 역대 최소인 166경기 만에 300만 관중을 기록한 데 이어, 이달에도 역대 최소 경기인 275경기 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도 1만8000명대를 유지하며 지난해 기록을 웃돌고 있다.
자본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CJ ENM 계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은 KBO 유무선 중계권 확보에 2024~2026년 3년간 약 1350억원을 투자했다(연평균 약 450억원, CJ ENM 공시 및 업계 추정). 스포츠 중계는 구독 기반 플랫폼 자산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티빙은 중계 이후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700만~800만명대를 기록하며 국내 주요 OTT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이 주목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무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골프장과 회원제 클럽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수만 명의 관중이 모이고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스포츠 경기장이 새로운 접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CEO의 등장과 OTT·SNS를 통한 확산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사람과 데이터가 모이는 공간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
93번과 96번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1993년 창업한 엔비디아와 1896년 출범한 두산의 시간이 교차한 자리였다. 이날 잠실에서는 스포츠와 AI, 콘텐츠 산업이 한 공간에서 만났다. 젠슨 황의 시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변화하는 산업 지형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권준영 기자 kjykj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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