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어 ‘전국노래자랑’ 사회 맡아… 34년 진행 ‘세계 최고령 MC’ 송해
2022년 6월 8일 95세

방송인 송해(1927~2022)는 환갑 지난 1988년 5월 8일 KBS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았다. 대학생 아들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비극을 겪은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송해는 이후 별세 3주 전인 2022년 5월 15일까지 34년간 MC를 맡았다. 타계 2주 전인 5월 23일 ‘최고령 TV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다.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데뷔해 1960년대 후반부터 희극인으로 활동했다. 한 살 위인 구봉서·배삼룡, 한 살 아래인 서영춘 같은 동년배 스타에 비하면 지명도는 떨어졌다. 코미디언보다 방송 MC로 꾸준히 활동했다. 1972년부터 아침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했다.
‘롱런’ 비결은 뭘까. 2013년 ‘전국노래자랑’ 25년째 사회를 맡고 있을 때 조선일보 기자가 주위 여러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롱런의 비결’을 밝혔다. 주변을 취재해 중심을 드러내는 방식. 동양화에서 대상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을 칠해 대상을 도드라지게 하는 ‘홍운탁월(烘雲托月)’ 기법이다.

프로그램 제작을 맡은 안인기 PD는 “상대방이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 들 때 좋아하는 사람 봤어요? 자기보다 어수룩한 사람이 자기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때 좋아하지요”라고 했다. 후배 코미디언 임하룡은 “송해 선생은 남녀노소를 폭 넓게 포괄해요”라고 했고, 엄용수는 “여유와 배려야말로 다른 방송인이 흉내 못 내는 송해 선생만의 장기”라고 했다.
“무대에서 특산물을 맛볼 때도 송해는 남다르다. “어디 한번 맛 좀 볼까?” 하고 웃고, “아이코, 이거 힘이 불끈 솟네” 하고 눙친다. 한 박자씩 쉬어가며 여유를 준다. 출연자 눈높이에 맞추니 시청자가 편해진다. 젊은 여성이 올라오면 총각이 된다. 어린애가 나오면 할아버지가 된다. 소방관이 나오면 소방서장이 된다. 송해는 얼굴과 목소리가 천 개다. 출연자가 “사업하다 망했다”고 하면 송해가 “저런, 어쩌다 망했는데?” 하고 말을 이어간다. 그런 공감에 위로받은 출연자가 세상 시름 잊고 흥겹게 논다.”(2013년 8월 7일 자 A27면)

기사는 ‘송해에게 배우는 롱런 비결’을 7가지로 정리했다. “가르치려 들지 마라. 기본기가 튼튼하면 기회가 온다. 상대의 리듬에 맞춰라. 공감이 위로다. 가슴에 ‘기억’ 말고 ‘추억’을 심어라. 혼자서는 롱런 못 한다. 말술[斗酒]의 힘.”(2013년 8월 7일 자 A27면)
송해는 2017년 구순(九旬)을 미리 기념하는 ‘영원한 유랑청춘’ 콘서트에서 옛 동료를 떠올리며 익살을 부렸다.
“옛 친구들 생각이 나네요. 고(故) 서영춘·배삼룡·이기동…. 그분들 아마 ‘송해 너 참 오래 해먹는다’ 할 거예요. 근데 내가 오래 해먹는 거유? 댁들이 먼저 간 거지.”(2015년 2월 22일 자 A16면)

고향은 황해도 재령이다.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전쟁이 터졌다. 인민군 징집 피해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조심하라”고 했다. 그 짧은 당부가 마지막 인사가 됐다. 피란 온 부산에서 군에 입대했다. 통신병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사실을 전 육군에 타전했다. 6·25전쟁 60주년인 2010년 조선일보 특집 ‘나와 6·25’에서 당시를 회고하고 통일을 염원했다.
“이제 내 나이 여든이 넘었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부모님 생각이 더 절실하다. 생사 여부를 몰라 그동안 제사도 못 지냈는데 5년 전부터는 추석 때 부모님 제사를 지낸다. 대학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놈도 한쪽에 같이 올린다. 통일되면 고향인 북한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 꿈이다. 그날이 죽기 전에 오기는 할까.”(2010년 5월 20일 자 A8면)

북한은 두 번 방문했다. 1998년 금강산 장전항, 2003년 평양 모란봉공원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열었다. 오히려 벽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북한에 두 번 다녀오면서 깨달았다. 우리 생에서 편안한 남북 시대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고 간 그곳에서 절벽과 낭떠러지를 봤다. 그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게 제약이었다. 이 모든 비극이 6·25전쟁이 남긴 것이다. 몇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 계획으로 ‘이것이 6·25다’라는 극을 준비했었는데 정부에서 못하게 했다. 남북 해빙 무드인데 분위기를 흐리는 일이라며 못하게 했다.”(2010년 5월 20일 자 A8면)

부음은 갑자기 들려왔다. 2022년 6월 8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2016년 지정된 서울 낙원동 ‘송해길’에 있는 송해의 단골 식당 직원은 “엊그제도 식사 뒤에 사장님이 사온 수박을 같이 나눠 드셨어요. 된장찌개, 더덕구이를 제일 좋아하셨는데…”(2022년 6월 9일 자 A2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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