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재 '중국 공대' 갈 때, 중국인은 '한국 도피 유학' 온다

이유진 2026. 6. 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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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인재 모이는 중국... 한국 이과 우등생도 간다
"AI·로봇 등 제대로 배우고파" 자발적 출국
중국, 세계 공대 순위 점령… 10위권 내 9곳
중국→한국은 도피 유학 '엇갈린 인재의 질'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4월 29일 대전 유성구 대전외국인학교 내 중국어 교실에서 중국 칭화대 스마트제조및장비공학과에 진학 예정인 김승현군이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대전=최주연 기자

하반신이 마비된 연구원이 휠체어에서 서서히 일어선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연구진이 만든 '웨어러블 로봇', 이른바 '입는 로봇'으로 착용자의 근력을 끌어올려 하지마비 장애인도 걷게 한다. 열일곱 김승현의 시선이 고정됐다. 그리고 승현은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렸다. 건담이 좋아 꿈꿨던 로봇 공학자. 매일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며 놀았던 그땐 막연했던 꿈이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내 바뀌었다.

각종 경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승현은 지난해 여름엔 카이스트 연구실 인턴으로 불리며 연구실을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 유학을 1순위로 고민하는 한편, 서울대 등 국내 명문대 진학까지 염두에 뒀던 승현에게, 지도를 맡은 기계공학과 A교수는 조언했다.

"중국 공대, 승현이에게 좋은 선택일 것 같아."

교수는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는 따라갈 나라가 없을 정도고, 나중엔 더욱 발전할 거야. 네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적응하기도 어렵지 않을 테고." 승현은 불현듯 중국 축제에서 촬영된 '무술 로봇' 영상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하니 그때 봤던 로봇 관절이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공부할 거라면, 로봇 1번지에서 시작하고 싶다." 승현은 마음이 잡혔다. 실제로 중국의 로봇 스타트업 애지봇(AgiBot) 한 곳이 올해 들어 4개월간 1만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하는 동안, 대한민국 전역에서 지난 한 해 만들어진 이족보행 로봇은 30대도 안 된다.

4월 20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푸톈구 한 백화점에서 '엔진AI'의 로봇이 무술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선전=나광현 기자

승현은 5월에 칭화대(2026년 QS 세계 공과 대학 순위 7위) 스마트제조및장비공학과부터 상하이교통대(15위) 기계공학과, 저장대(31위) 기계공학과, 푸단대(88위) 전기정보과까지 중국 명문 공대 4곳의 합격증을 따냈다. 지원 자격이 충분했던 서울대, 꿈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카이스트엔 지원하지 않았다.

과거 '도피 유학의 성지'로 통하던 중국은 이제 없다. 한국의 기술과 우수 인재를 '훔쳐가는' 중국도 옛말이 됐다. 이젠 승현처럼 한국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우등생들이 자발적으로 중국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에 대한 폄하가 한국 기저에 깔린 가운데 일부 미래 세대는 "과학자의 길을 제대로 걷고 싶다"며 중국어로 수학과 물리를 공부하며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중국, 인재 '훔치기'는 옛말...제 발로 찾아간다

4월 14일 서울 강남구 에스제이글로벌유학센터에서 중국 공대 진학을 준비 중인 윤증진군이 칠판에 중국어로 수학 서술형 문제 풀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최주연 기자

"요즘 중국 유학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생겼어요. 우선 문과대학 중심에서 이공계 대학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고요, 그리고 상위권 이과 학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중국 유학원 운영만 20년째인 김훈희(53) 원장은 업계를 훤히 꿰고 있다는 자부심이 최근 크게 흔들렸다. 과거엔 중위권 실력에 국제통상학 등 기초 중국어만 구사하면 현지 명문대 합격이 수월한 문과 계열 진학 상담이 중심이었는데, 이런 흐름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천 명을 컨설팅한 베테랑이지만, 과학고 재학생이 유학원 문을 두드렸을 땐 그도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갈 수 있을 텐데, 왜 중국 가려고 해요?" 묻자, 저장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 저명한 기초과학 학술지인 네이처가 발표한 연구기관별 성과 순위 대학 부문에서 미국 하버드대 다음(3위)을 기록한 곳이다.

'도피 유학' 목적으로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베이징대, 칭화대처럼 명문대 위주로 문의하던 예전과 달리, 이젠 저장대처럼 공대에 특화된 학교 상담이 들어온다. "더 높은 수준의 대학과 교육 환경을 경험해보려는 성격이 커요. 특히 중국 이공계는 투자 규모나 인프라가 어마어마하잖아요. 상위권 아이들도 가고 싶은 대학이 된 거죠."

그래픽=이지원 기자

실제로 이공계 분야에서 중국은 독주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논문 생산량 상위 10개 대학은 미국 하버드대(6위)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 대학이다. 한 해 생산하는 논문은 학교당 2만 건 이상이다.

연구 품질도 고도화됐다. 2024년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직전 3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상위 10%를 떼어 보니 그중 3분의 1(31.8%) 정도가 중국 연구자가 저자였다. 미국은 17% 내외로 2위로 밀려났고, 한국은 9위(2.1%)다. 전 세계 학자들이 한국과 미국 논문보다 중국 논문을 질적으로 신뢰해 더 많이 참고한다는 뜻이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에서 책정하는 기술패권지표 역시 중국이 74개 핵심기술 중 66개 분야(89%)에서 가장 많은 상위 10% 고인용 연구를 내놓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빠른 상용화가 가능한 공학 분야에 강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은 전 세계 고인용 연구의 65%를 차지하며, 2위인 미국(10%)을 6배 이상의 격차로 따돌렸다.


한국, 왜 인재들에 포기당할까

4월 14일 서울 강남구 에스제이글로벌유학센터에서 중국 공대 진학을 준비 중인 윤증진군이 공부 중인 중문 교재들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최주연 기자

과학자를 꿈꾸지만 한국에선 연구가 힘들다는 판단에 중국행을 결정한 이들도 있다. 천문학자를 꿈꾸는 외국어고 졸업생 윤증진(18)은 한국에 위치한 천문대를 세어봤다고 했다. 국가급 본소는 대전에 하나, 연구 관측소는 약 10개. 반면 중국은 중국과학원(CAS) 산하 5개 클러스터가 전국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관측소는 40개 이상으로 한국보다 최소 4배는 많다.

"한국에선 학위를 따도 갈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해요. 게다가 응용물리·천문학 분야는 예산을 따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중국에선 주요 거점 관측소 10여 곳(한 곳당 망원경 50기 이상 보유)을 새로 짓고, 우주정거장 근처에 천문대도 띄운대요. 저는 끊기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그래픽=송정근 기자

중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유학생 입학 표준화 학력평가(CSCA)'에 응시해야 되는데, 공대의 경우 중국어로 서술형 답안을 제출해야 하는 심화수학과 물리 과목이 필수다. 작년부터 도입됐는데, 우수한 인재를 가려 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과 출신의 증진은 고교 시절 배우지 않았던 이과 물리를 중국어로 공부하느라 머리가 터질 뻔했다면서도 "외고 출신이라 언어 고생은 그나마 덜했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지난달 베이징이공대 응용물리학과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

올해 중국 푸단대 인공지능학과에 합격한 최모(24)씨도 입시 준비를 위해 재학 중이던 이화여대 공대를 그만뒀다.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공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갈증이 컸다. "연구 환경 차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중국에선 연구실 밖 상용화가 빨라서 (한국과 달리) 수준 높은 기술의 응용 과정을 따라가며 생생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니까요."


역전된 한·중 인재 풀

미국 뉴욕 콜롬비아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사 졸업복을 입은 중국인 유학생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신화 캡처

한국의 예비 과학자들이 더 나은 연구 환경에서 공부하려 중국 대학으로 떠나는 반면, 중국에선 역으로 경쟁에서 밀린 학생들이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중국 대학원은 석사 과정자를 '연구생'이라고 부른다. 학위가 없는 이른 단계부터 연구자로 대우하는 것이다.

올해 한국의 수도권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마친 중국인 유학생 안밍(32·가명)은 "중국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카오옌(전국석사연구생입학시험)'을 치는데, 100명 중 10명 정도만 통과하기 때문에 명문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면 해외 대학으로 밀려나게 된다"고 말했다. 몇 년 사이 중국의 취업난이 심해지며 대학원 입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꽤 '만만한' 도피 유학처다. 인재 포화가 고민인 중국과 학생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는 한국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덕이다. 30년간 한국 유학을 지원해온 중국 현지 유학원 관계자는 "한국 이공계 분야는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입학 문턱이 낮아졌다"며 "적지 않은 대학이 유학생을 유치하려 언어 요건과 성적 기준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학원들도 이런 기류를 인식하고 있다. 중국인 학생의 한국 대학 진학을 돕는 컨설턴트 서모(61)씨는 "최근엔 명문대 공대마저 유학생만을 위한 중국어 강의를 개설하는 등 오로지 학위를 따기 위한 패키지를 홍보한다"며 "고객 유치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연구의 질은 떨어진다는 자조도 들린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유학원을 운영하는 박민혜(32) 대표도 "중국 공대 수업은 외국인용 영어 강의를 없애고 중국어로만 진행해도 학생이 모이는데, 한국은 그 반대가 됐다"며 "이공계 경쟁력에 따라 신세도 역전된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4월 14일 서울 강남구 에스제이글로벌유학센터에서 센터의 박민혜 대표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입시전략 설명의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러한 '인재 크로스오버'가 아직까진 또렷한 수치로 드러나진 않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대두된 새로운 인재 이동의 움직임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이공계 분야 대학 및 대학원에 진학 중인 한국 학생은 각각 653명, 117명으로 집계됐다.

박한진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문과에 치중됐던 과거와 달리 자발적으로 중국 공대로 떠나는 한국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인재 흐름에서) 유의미한 시그널"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연구 지표나 테크 기업 규모 등 중국 이공계의 성과가 최근 들어 두드러진 만큼 우등생들의 중국 대학 진학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온 미래로

4월 29일 대전 유성구 대전외국인학교의 중국어 교실에서 중국 칭화대 스마트제조및장비공학과에 진학 예정인 김승현군이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대전=최주연 기자

우리가 얼마나 뒤처졌는지를 알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현실 직시다. A교수는 한국 이공계의 위치를 냉정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모를 수가 없어요. 연구 퀄리티, 분량, 속도 모두 중국이 압도적이거든요. 우리(교수)끼리는 늘 얘기해요. 이제 중국은 우리 기술을 훔쳐가는 견제 대상이 아니라 기를 쓰고 따라가야 할 선두 주자라고요."

그가 승현의 중국 공대 진학을 독려한 것도 이러한 현실 인식의 연장선이었다. 먼저 온 미래에 직접 부딪히고 편견 없는 연구를 통해 따라 잡자는 것. "한국이 뒤처진 걸 인정하고, 끊겨버린 학술·인적 교류를 복원해야 해요. 그 첫 타자가 승현이 같은 학생들이 될 겁니다. 그들을 통해 조금씩 '1위 기술'을 접하고 또 배워 나가겠죠."

4월 18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 인재공원 내부에 있는 '로봇 카페'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손님들에게 내줄 커피를 준비하자 관광객들이 이 과정을 촬영하고 있다. 선전=나광현 기자

한국일보 특별취재팀도 먼저 온 미래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장시간 중국 땅을 밟기로 했다. 목적지는 선전, 그리고 광저우·홍콩. 지난해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세계 혁신 클러스터 순위에서 1위로 꼽힌 곳이다.

지난 4월 도착한 선전의 바오안 국제공항. 출장을 다녀온 듯 단정한 셔츠 차림의 중국인부터 들뜬 표정의 서양인 관광객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댔다. 그때 한 남자가 캐리어를 끌며 천천히 국내선 터미널에 들어섰다. 수속까지 몇 시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이는 인파에도 당황한 기색 없이 대기 줄을 지나치더니 곧장 게이트 앞으로 걸어가 섰다. 한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공학자 신영철이었다.

 

2026 차이나 리포트

  1. ① <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1. 한국 영재 '중국 공대' 갈 때, 중국인은 '한국 도피 유학' 온다
    2. '인재에 미친 나라' 중국이 한국인 교수에게 건넨 것들... 억대 연봉·공항 프리패스·영주권
  2. ② <2> 중국 과학굴기 해부: 우리가 외면한 중국
    1. 짝퉁? 탈취?… 중국이 말했다 "첨단기술 빼앗길까 걱정"
    2. "협력 안 하면 중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중 정서'에 주한중국대사의 경고
    3. 중국의 과학기술은 훔친 것?... '현실 직시' 막는 혐중 인식
    4. 주한중국대사 "중국 과학기술 새로운 단계, 한국 객관적 인식 확립해야" [인터뷰 전문]
  3. ③ <3> 중국 과학굴기 해부: 중국의 실리콘밸리
    1. 인재들이 '제 발로' 모인다… 잘 나가는 美 창업자들도 앞다퉈 '선전행'
    2. 미국에서 6개월 걸릴 일이 '여기'선 6주… 대표 '기술 관광지' 된 선전
    3. 15분 만에 드론이 망고주스 배달… 선전에선 미래기술이 일상이다
  4. ④ <4> 중국 과학굴기 해부: 마피아와 카피캣
    1. "퇴사했대" 사흘 안에 소문이 '쫙'… 선전 생태계 확장하는 'DJI 마피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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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대전= 소민교 인턴기자 sohminkyo0214@gmail.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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