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달리 순채권국… 외환위기 우려 낮지만 中企·서민은 ‘비명’
올해 2분기(4~6월) 달러 대비 평균 원화 환율이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이후 지난 5일까지 평균 환율은 1490.98원으로, 1998년 1분기(1596.88원) 이후 약 28년 만에 가장 높다. 외환 당국 구두 개입에도 6일 야간 시장에서 장중 1560원 선을 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1500원대 고환율이 IMF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같은 외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줄었다고 본다. 당시와 달리 한국은 달러 빚보다 해외 투자 자산이 더 많은 ‘순대외채권국’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환율 고착화가 중소기업, 서민, 채무자를 직격하는 불안 요인이라는 점은 당시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 낮지만
원화 환율이 1560원대까지 치솟은 건 역대 세 차례로,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그리고 현재다. 앞선 두 차례 위기 때 한국은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대외 금융 자산을 다 합해도 외화로 갚아야 할 금융 부채보다 적은 ‘순채무국’이었다. 이때 환율이 오르면 대외 부채가 더욱 불어나면서 빚을 못 갚을 위험이 커진다. 외국 투자자들이 이런 우려로 달러를 계속 빼 가면 외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이 12년째 순채권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이 올라 대외 부채가 불어도 해외 자산이 충분해 빚을 못 갚을 위험이 덜하다는 뜻이다. 민간이 보유한 해외 금융 자산은 계속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보험사 등의 외국 증권 투자 잔액은 1분기 5033억달러로 1년 전보다 17% 늘었다.
다만 이 달러 자산은 해외 증시, 부동산 등에 묶여 있어 당장 국내로 들어와 유통되기 어렵다. 대신 원화 환율은 하루 평균 150억달러쯤 오가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이 시장에서 국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외국인 투자자나,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은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산다. 반대로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이나, 수출 기업은 달러를 원화로 바꾼다. 이때 달러를 사려는 세력(수요)이 많으면 환율은 오르고, 달러를 팔려는 세력(공급)이 많으면 환율은 내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달러가 필요한 세력이 많아 당분간 고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시장에서 달러를 공급할 여력이 있어도 수요에 따라가지 못하면 환율이 계속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한국은 올 들어 4월까지 1027억달러(약 160조원)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뒀지만, 기업들은 해외 투자 수요와 환율 상승세 등을 감안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은 올 들어 국내 주식 120조원 정도를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해 원화를 달러로 바꿔 나가고 있어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서민에겐 고환율·고물가 직격탄
고환율에 따른 경제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1%로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유가 상승과 더불어, 해외에서 원재료를 수입하는 과자류, 간편식, 커피 등 먹거리 물가가 오르고 있다. 이달 1일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일부 간편식과 먹거리 상품 가격은 5~10%쯤 인상됐다. 커피빈, 더벤티 등 주요 카페 프랜차이즈도 환율 상승 등을 이유로 주요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욱 가라앉을 우려가 크다. 한은은 연내 금리를 한두 차례 올릴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고환율에서 시작돼 고물가, 고금리로 이어지는 ‘3고(高) 현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며 “이 같은 부담을 서민층과 대출자가 더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 소비가 위축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여행객들 사이에선 한국처럼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일본 정도가 아니면 해외여행을 계획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크다. 고환율은 해외 유학·연수 수요도 누르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한국인 유학생은 12만9726명으로 가장 많았던 2011년(26만2465명)의 반 토막 수준이다. 또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학·연수 지급액은 2010년 44억8800만달러에서 작년 30억5270만달러로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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