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유묵 보존한 일본인 추모” 日고치현에 ‘동양평화 기념비’ 세워

일본 고치현/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2026. 6. 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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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이낙연 前총리, 日의원 참석
일본 고치현에서 6일 열린 ‘일한우호 동양평화(日韓友好 東洋平和)' 기념비 제막식에서 김황식 안중근 숭모회 이사장, 이낙연 전 총리 등이 일본 측의 히로타 하지메 참의원 의원, 니시모리 시오초 전 고치현 의회 의장 등과 손을 잡은 채 기념비 건립을 축하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안중근 의사와 그의 유묵을 보존해 온 고치현 출신 일본인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고치현=이하원 기자

6일 오후 일본 고치(高知)현 고난(香南)시에서 안중근 의사와 그의 유묵(遺墨)을 보존해 온 고치 출신 일본인을 기리는 ‘일한우호 동양평화(日韓友好 東洋平和)’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가 시작할 때만 해도 굵은 빗발이 쏟아져 사회를 맡은 니시모리 시오조 전 고치현 의회 의장이 “좋은 날 비가 내리는 것도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전 국무총리), 히로타 하지메 일본 참의원 의원 등 한일 양국의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비 제막을 위해 천막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쳤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민남규 안중근의사숭모회 부이사장과 우에타 소이치로 무로토 시장, 오카자키 다카시 쿠로시오 호텔 회장 등이 나와 기념비를 감싼 포장 끈을 당기자 80여 명의 한일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일본 미야기현의 대림사,청운사에 안 의사 추모비가 있고, 사가현에 한때 안 의사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으나 이날처럼 한일 양국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처음이다. 이 때문에 이 행사엔 일본 측에서 고치현 관계자, 현 의회의 전현직 의원 등 40여 명, 한국 측의 안중근숭모회, 독립운동가 최재형 추모 모임 등에서 40여 명이 참석했다. 일본의 전직 총리 한 명도 참가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비는 한일 우호 증진 취지에 공감한 오카자키 회장이 제공한 호텔 부지에 건립됐다. 행사를 주최한 고치일한근대사연구회는 “안중근 재판에 관여했던 고치 출신의 재판관, 검찰관, 변호인, 경찰 간부, 형무소 간부, 신문기자가 안 의사의 옥중 유묵을 일본으로 가져가 보존했고, 훗날 유족들이 이를 한국에 기증해 한일 우호의 가교가 됐다”고 설명했다. 안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미완성 유고 ‘동양평화론’을 필사해 세상에 알린 시치조 기요미 역시 고치현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연구회 회장인 니시모리 전 의장은 “안중근과 고치현 출신 인사들의 인연을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념비를 세웠다”고 말했다. 히로타 의원은 축사와 인터뷰에서 “안중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그의 인격과 의연한 행동이 많은 일본인에게 감명을 준 것은 분명하다”며 “동양평화론의 정신처럼 양국이 협력해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황식 이사장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와 조국 독립의 신념을 지켜낸 안 의사의 뜻을 후세에 전해준 고치현의 선인들과 후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 인연이 양국 우호와 동아시아 평화를 잇는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치현은 목포에서 3000여 명의 고아를 돌본 다우치 치즈코(한국명 윤학자) 여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2018년 김 이사장이 고치현을 방문했을 때 “윤학자 여사 기념비에 이어 안중근 의사 관련 기념비도 세우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 이번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후 일본 근대화에 대한 공적으로 일본 국회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연구회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과 유묵 기증의 역사를 알리며 설득 작업을 벌였고, 당초 계획보다 1년 늦게 기념비가 완공됐다. 기념비에 부착될 동판 문구는 조만간 확정돼 부착될 예정이다. 전남지사 시절 고치현과 자매결연을 맺은 이낙연 전 총리는 “오늘의 제막식은 미래의 가능성과 현재의 한계를 보여준 행사”라며 “희망의 씨를 뿌렸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제막식에 이어 열린 만찬 간담회는 한일 양국의 화합을 기원하며 참석자들이 함께 손뼉을 치는 일본 전통 의식 ‘잇폰지메’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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