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재개발과 전세난 - 공급과 멸실

구경하 2026. 6. 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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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주요한 주택 공급 수단은 재개발,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이다. 그런데 신규 택지 개발이 빈 땅에 새집을 공급하는 것과 달리, 정비사업은 주민이 살고 있는 주거지를 대상으로 한다. 정비사업으로 새집을 지으려면 누군가 살던 집을 허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비사업은 주택 시장에 이중적인 효과를 낸다. 주택 수를 늘리기만 하는 택지 개발과 달리, 정비사업은 멸실을 거쳐 주택을 공급한다. 멸실 과정에서 주택 재고량은 감소하고 대규모 이주 수요가 발생한다. 모두 전월세 가격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결국 정비사업은 새집을 공급해 가격을 낮추기 전에, 멸실을 통해 가격을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멸실에 따른 이주대책이나 임차 시장 불안에 대한 대비 없이 서울에서는 대규모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정비사업 현장을 통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 철거민 정착지였던 정릉골 …재개발하면 임대주택 '0'

서울 성북구의 정릉골은 북한산 아래 달동네다. 1960년대 청계천과 북아현동 일대 판자촌을 정리하면서 산기슭으로 옮겨온 이들이 정착한 마을로 전해진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연탄으로 난방하는, 주거 취약계층 거주지다. 철거민을 품었던 이곳에도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철거가 임박했다.

그런데 이주가 시작된 지 2년이 되도록 아직 마을을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있다. 이주비 지원 대상이 아닌 데다 이사 갈 집을 찾지 못한 이들이다. 성북구 주거복지센터가 실시한 '정릉골 재개발지역 주거세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곳에 살던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은 평균 2,700만 원, 월세는 평균 20만 원이다. 전월세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제 서울에서 이 가격대의 셋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세입자 평균 나이는 67살, 월 소득은 150만 원대에 불과했다. 대출받기도 힘든 경제 사정에 놓인 이들이다.

정릉골 통장이자 20년 차 주민인 김우권 씨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모습. 이 지역에서 평생 살아온 김 씨는 재개발 이후 세입자들도 재정착할 수 있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달라고 요구한다.


재개발이 되면 정릉골에는 1,411세대의 새집이 공급되지만, 이 가운데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은 없다. 주민 가운데 세입자 비율이 73%로 1,974명에 이르지만, 성북구청은 재개발조합이 용도지역을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대주택이 없는 재개발 계획을 허가했다. 재개발 조합은 남아 있는 세입자들에게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법원을 통해 통보한 상태다.

김우권 정릉골 세입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그는 "정부가 재개발을 권장하는 만큼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일터와 교류해 온 관계가 이 지역에 있는 만큼, 생활권을 고려해 주거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다. 도시정비법은 이미 정비사업을 할 때 사업 시행자가 살던 주민들을 위해 순환용 주택을 마련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비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 정비사업에선 사업성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순환 정비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재개발 과정에서 저소득층의 주거지가 멸실되고, 주택 시장에서 대체 주거지도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공공이 대체 주거지에 관한 대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정비사업 추진에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미칠 영향을 평가해 정비계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 영향 평가 또는 사회 영향 평가를 도입해서, 예상되는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공공이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1호로 지정된 신림1재정비촉진지구의 모습. 4,185세대를 공급하기 위해, 이보다 많은 4,410세대가 멸실될 예정이다. 인근의 신림2구역은 이미 1,100여 세대가 철거돼, 이주 수요를 흡수할 대체 주택이 사라졌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하면 전세가 상승"…멸실의 충격

멸실의 부정적 영향은 정비구역에 살던 이들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멸실의 충격은 해당 지역의 전세가를 올리고, 인접 지역의 주택 시장까지 파급된다.

최진 한양대 박사(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와 진창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논문 '주택 공급이 전세가격 변동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및 공간적 파급 분석'을 학술지 주택도시금융연구에 발표했다. 논문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일어난 주택 멸실과 준공이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인 9년간 서울의 멸실 주택은 27만 8,106호, 공급 주택은 61만 176호였다.

논문에 따르면, 자치구에서 세대수 대비 멸실 주택 비율이 1% 증가하면 3개월 뒤 아파트 전세가격이 0.1% 상승했다. 특히, 2천 세대 이상 대규모 멸실이 발생하면 전세가격 상승 폭이 5배 이상으로 올라 시장에 충격을 줬다. 반대로 준공 주택 비율이 1% 늘면 1개월 뒤 아파트 전세가격이 0.07% 감소했다. 그런데 멸실의 충격은 일시적으로 그치지 않고 준공이 되기까지 수년에 걸쳐 시장에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멸실이 발생한 지역의 전세가격은 준공된 이후에도 예전 수준으로 하락하지 않았다.

진 교수는 "신규 택지 조성을 통한 주택 공급은 순증의 효과만 있지만, 정비 사업을 통한 공급은 멸실이 첫 관문"이라고 설명했다. 멸실로 인해 임차인은 물론 집주인까지 임차 시장의 수요자가 되고 준공 시점까지 머물기 때문에 시장에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대규모 정비사업에 따른 주택 감소가 시장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공급과 멸실 물량을 미리 파악해 정비사업 승인 시기를 조정하거나 멸실량을 분산하는 등의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멸실 임박 "정비 물량·속도 조절해야"


최근 수도권 전월세 시장은 불안하다. 전세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2021년 전세대란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럼에도 멸실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시다발적으로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가 최재란 서울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신속통합기획으로 2031년까지 예상 멸실 주택량은 22만 1천 호에 이른다. 준공해서 주택이 공급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준공 시기가 돌아오는 2031년까지는 멸실량이 준공량보다 많다. 이 때문에 주택 재고는 꾸준히 감소해 2031년 최고 12만 6천 호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철거 물량이 많아 보인다고 해서 착공을 미루면 미래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신통기획이 아닌 방식으로 비아파트 주택이 더 공급된다"라고도 설명했는데, 예상 공급량은 올해와 내년 각각 1만 호에 미치지 못했다. 서울시의 해명대로 비아파트 공급량을 더해도, 2028년부터는 멸실량이 더 많아 주택 재고 감소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멸실이 시장에 미칠 충격을 줄이려면, 정비사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계획대로 동시다발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면 이주 수요가 급증해 전월세 대란을 피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한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매년 추가로 공급되는 주택량 이상으로 멸실 주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측을 해서, 정비사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권역별로 정비사업의 순서와 속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사하게 대규모 멸실을 동반하는 1기 신도시 정비 계획은 정부가 선도 지구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연도별 정비 물량과 순서를 관리하고 있다.

서울 정비사업 속도를 수도권 범위에서 광역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진창하 교수는 "서울과 인접한 3기 신도시의 공급 예정 물량이 거의 20만 호인 점을 고려해, 광역적인 수급 체계 속에서 이주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은 이주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주 수요와 임차 시장의 여유 공간을 파악한 다음, 공급 목표를 고민하는 게 순서"라고 강조했다.

집주인까지 불안하게 하는 개발 압력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이 3차례 추진됐던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재개발 구역계. 반대 주민이 더 많아 모두 취소됐다.


정비사업을 촉진하는 정책은 아직 정비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지역에도 개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은 다수의 주민이 아직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동네다. 재개발 구역 지정을 위한 법적 요건인 노후도와 과소 필지 비율, 주택 접도율 등 물리적 환경 지표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이 지난 4년간 3차례 시도됐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구청이 집주인에게 동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서울시에 신통기획 후보지로 추천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재개발 추진 단체에서 고용한 홍보요원, 이른바 OS요원이 집으로 찾아와 동의를 압박하면서 찬반 주민 간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고도 했다. 3번의 시도 모두 반대하는 집주인들이 더 많아 무산됐지만, 2년이 지나면 신통기획 후보지로 재신청이 가능하다. 재개발 추진 단체도, 반대 주민 모임도 모두 해산하지 못한 채 대립하는 이유다.

가격이 상승하는 아파트 단지가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자기 집에서 화단을 가꾸고 이웃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이들까지 개발 압력에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자산 증식 수단으로써 아파트에 대한 선호를 부추기는 주택 정책이 기존 주민의 주거 안정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정비사업을 촉진하는 주택 정책이 누구를 위한 주택 공급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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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구경하
촬영:강우용
편집:유지영
그래픽:솔미디어, 윤예슬
리서처:서유리
조연출:엄희주,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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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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