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저는 초중급 배우... 으스대는 거, 꼴보기 싫다”

최보윤 기자 2026. 6. 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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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사병, 전설이 되다’ 코믹 열연 화제
“내년 해병대 수색대 지원할 것”
흥행 배우 박지훈. 최근 솔로 앨범도 발표한 그는 팬콘서트 'RE:FLECT'를 통해 도쿄를 시작으로 쿠알라룸푸르·호찌민·하노이·홍콩·타이베이·방콕·싱가포르·마닐라·자카르타로 이어지는 아시아 투어에 나섰다/YY엔터테인먼트

눈물을 쏟게 하는 ‘비극의 왕’과 코믹해서 눈물 쏟을 것 같은 ‘전설의 취사병’, 그 사이의 진폭은 과연 한 사람이 해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극과 극이다. 그러나 이 남자 박지훈은 그 진폭을 ‘변하지 않음’으로 돌파하는 배우다. 소년과 청년의 표상이 묘하게 오가는 그는 들뜨지도, 부담을 끌어안지도 않는다 했다. 대신 매번 대본을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으며. 그가 못 가본 연기의 진폭을 넓히려 다시 눈빛을 갈아 끼운다. 일곱 살부터 카메라 앞에 선 그 성실의 시간이 오늘의 박지훈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만난 박지훈(27)은 첫 마디부터 숨을 골랐다. 어깨를 으쓱하지도 않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689만명을 돌파해 국내 상영 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오르고, 같은 시점에 공개된 티빙·tvN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가 최고 시청률 7%대를 기록하며 두 작품을 동시에 ‘대박’ 반열에 올린 직후였다. 한창 들떠 있어도 모자라지 않을 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자세를 낮췄다. “변한 건 없어요. 그냥 늘 주어진 임무를 하는 것뿐입니다.”

◇덜어내야 산다

이번 인터뷰는 웹툰 원작의 ‘취사병, 전설이 되다’ 종영(16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단종의 처연한 잔상이 가시기도 전, 박지훈은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서 ‘S급 관심병사’ 강성재로 돌아왔다. 총 대신 식칼을, 탄띠 대신 앞치마를 두른 이등병이 게임 상태창의 안내를 따라 ‘전설의 취사병’으로 각성해 가는 B급 밀리터리 코미디다.

미역을 온몸에 감고 명화 ‘천지창조’를 패러디하고, 돼지 등뼈로 피리를 불며, 도토리묵으로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시청자 사이에서 “출연료를 얼마나 받기에 저런 연기까지 하느냐”는 우스개가 돌 만큼 파격적이었다. ‘취랄’(취사병+지X)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에 있을 법한 장면들을 너무나도 진지하게 실사로 연기해 내는 모습에 시청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티빙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박지훈(오른쪽)과 정웅인/tvN캡처

그런 박지훈이기에 코미디 도전은 자신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더 치열하게 연기 톤을 발전시키는 과정 중 하나로 보였다. 코미디 연기에는 정극 못지않은 내공이 든다.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덜 하는 것’이었다.

“저는 오버 페이스로 연기하지 않는 편이에요. 충분히 납득될 만한 상황에서 애드리브를 했고, 또 ‘웃기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때만 했거든요. 그래서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화제가 된 장면 상당수가 대본에 없던 즉흥이었다. 닭장 안에서 선임 취사병과 서로 부둥켜안고 비명을 지르는 신, 왈츠풍 음악에 맞춰 러시아 민속춤을 추는 장면 모두 현장에서 리허설하다 살이 붙은 것들이다.

“노래 하나만 틀어 달라고 해서 거기서 영감받아 나온 동작을 감독님이 다 써주셨어요. 현장이 빵빵 터져서 오히려 ‘현타’가 올 틈이 없었습니다.”

박지훈/ 티빙 제공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서 ‘천상의 미역국 맛’을 표현하기 위해 취사병 강성재(박지훈)가 ‘미역 천사’로 변신한 모습.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은 이번에도 진지했다./티빙

◇요리를 몰라서 도전했다.

박지훈은 2006년 드라마 ‘주몽’의 소금 장수 아들 역으로 데뷔한 21년 차 배우다. 다수의 아역과 재연 출연을 거쳐 2017년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2위로 워너원에 합류했고,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그룹 해체 이후 그는 가요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무게중심을 연기로 옮겼다. 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연애혁명’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을 거치며 조금씩 배우의 입지를 다졌다.

‘배우 박지훈’의 이름을 새롭게 각인시킨 분수령은 2022년 ‘약한영웅 Class 1’이었다. 상위 1% 성적의 모범생이자 자발적 아웃사이더 연시은 역에서 그는 미소년 이미지를 깨고 무표정 속 서늘한 독기, 공허한 눈빛을 선보였다. 낮은 저음과 차분한 딕션, 민낯에 가까운 분장과 구부정한 자세까지 더해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제2회 청룡시리즈어워즈와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신인상을 받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그를 “마지못해 싸움에 끌려 들어가는 인물의 내면을 정밀하게 보여 주는 배우”로 소개했고, 영문 영화 매체들은 ‘왕과 사는 남자’(영문명 The King’s Warden)를 두고 “박지훈이 단종에게 부서질 듯한 위엄(fragile dignity)을 부여한다”고 평했다.

박지훈/ YY엔터테인먼트 제공

‘약한 영웅’ ‘왕과 사는 남자’ 등 어둡고 깊은 작품을 연달아 해 온 그가 가벼운 코미디로 방향을 튼 것을 두고, 의도적 전환이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랑은 별개예요. 요리에 관심이 너무 없는 사람이라 오히려 뛰어든 도전이었어요. ‘어두운 걸 했으니 밝은 걸 해야지’라고 접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왕과 사는 남자’ 촬영을 마치자마자 거의 맞물려 들어간 작품이었다.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사람이 칼을 잡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에게도 궁금증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요리와는 더 멀어졌고요(웃음). 대신 칼질만큼은 정말 늘었습니다.” 촬영 전 서너 달간 요리 학원을 다니며 익힌 결과다.

◇로또 3등에도 담담했던 가족...“으스대는 모습 상상하기도 싫어요”

강성재의 연기에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실체 없는 ‘가디언’과 허공의 상태창이었다. 게임 판타지 요소를 실사로 옮긴 원작 웹툰·웹소설의 묘미를, 그는 대본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 풀어냈다. “대본을 보고 크게 정해 가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보고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내가 어디에 서고, 어디를 보고 시선 처리를 할지를 현장에서 직접 다 시뮬레이션했어요.”

취사병 전설이 되다 중 박지훈의 게임 상태창 스킬 &레시피.보는 연기/티빙

시청자가 보기에 ‘누군가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눈동자를 굴리거나 귀여운 표정을 얹는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쌓았다고 했다. 후반 CG 작업을 본 뒤에는 “현장에서 표현한 만큼 잘 담겨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가 가장 조심스러워한 장면은 웃긴 신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서사를 품은 선임(권철 상병)이 강성재의 햄버거를 먹고 눈물을 흘리는 감정신. “어쨌든 상대 배우의 감정신이라 저는 완전히 정숙하게, 몰입해서 에너지를 드리려고 했어요. 끝나고 ‘네 덕분에 울음이 났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웃기지만 또 파고들면 슬픈 신이에요.”

전국적 ‘단종 앓이’와 ‘취사병 신드롬’을 동시에 일으켰지만 자기 인식은 끝까지 담담했다. 비결을 묻자 그는 가족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가족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으스대는 모습을 보는 걸 제가 너무 싫어해요. 작품이 잘된 건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건데, ‘내가 천만 배우 됐으니까’ 하는 식의 태도는… 어깨에 힘 들어간 제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박지훈과 선임 이홍내/티빙

그 ‘담담함’에 대해 한 가지 일화를 들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로또 3등에 당첨돼 형과 어머니, 자신에게 “갖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첨이라고 하면 막 좋아할 법도 한데, 저희 가족이 다 그렇게 덤덤했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그런가’ 싶더라고요.”

◇“초중급 배우입니다” ― 자기 객관화의 미학

슬픔에도, 코미디 속에도 중심을 잡는 박지훈이 있었기에, 함께 출연한 출연진들이 만들어간 작품이라고 공을 돌리는 그가 있었기에 시청률도, 작품성도 날개를 달았다. 드라마는 프랑스 릴에서 열린 유럽 최대 시리즈 페스티벌 ‘시리즈 마니아 2026’ 비경쟁 부문 특별 상영작으로 초청됐다. 페스티벌 측은 “과감한 형식미와 독창적 위트로 상실의 잔해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길어 올린 흔치 않은 수작”이라며 “극의 중심을 굳건히 잡는 박지훈의 연기가 경이롭다”고 평했다.

화려한 성취와 별개로, 그의 자기 평가는 단호할 만큼 박했다. “중급, 초중급 배우 정도라고 생각해요. 제 연기를 맛으로 표현하면 단맛과 짠맛 정도만 보여드린 단계예요. 쓴맛, 매운맛, 강렬한 악역은 아직 안 해 봤습니다.” 들떠있는 자기 모습을 가장 경계한다고도 했다. “꼴보기 싫다”고 넌더리를 쳤던 그다. 비결을 묻자 그는 의외로 단순한 답을 내놨다. “대본을 아주, 아주 느리게 봅니다.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장면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만들면서요. 한 장에 30분도 걸려요. 그게 쌓이면 현장에서 즉흥이 나올 자리가 생깁니다.”

박지훈/ YY엔터테인먼트 제공

◇취사병, 해병대를 꿈꾸다.

대화의 끝은 입대였다. ‘취사병의 전설’이 된 그를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만날 수 있을까? “해병대 수색대에 지원할 생각이에요. 떨어진다 해도 해병대는 무조건 갑니다.” 자타공인 ‘밀리터리 덕후’인 정작 취사병을 연기하고 나서 그 보직과는 더 멀어졌다며 웃었다.

“취사병의 노고는 정말 알게 됐어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늦게 퇴근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저는 해병대에 대한 꿈을 이뤄보고 싶어요.” 인기의 정점에서 군대로 향하는 결정에 미련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답했다. “제가 ‘이제 다 됐다’ 하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두렵습니다.”

‘17세 소년미’로 강렬하게 각인됐던 그의 청랑한 얼굴은 어느 새 연기 고민으로 가득한 중견 배우의 노련미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흥행의 왕’이자 ‘시청률의 전설’이란 애칭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대본 대신 미역줄거리 같은 색상의 군복에, 군장을 장착할 그는 ‘연기파’의 길을 스스로 수색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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