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우주를 파는 기업

이인열 기자 2026. 6. 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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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지난주 금요일 미국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10% 폭락했다. 2020년 3월 코로나 쇼크 이후 6년 만의 최대 낙폭이었다. 뉴욕 증시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1조3000억달러(약 2000조원)가 증발했다. 엄청난 투매의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 오는 12일 상장하는 스페이스X의 역대급 공모주 청약이었다. 기업가치 1조7500억달러로 평가된 스페이스X가 750억달러(약 115조원) 규모 주식 공모에 나서자 여기에 참여하려는 글로벌 연기금과 개미들이 현금 마련을 위해 다른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전 세계 증시 역사상 최대다. 2014년 중국 알리바바(218억달러)와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294억달러)의 기존 기록보다 3배 가까이 크다. 이전의 ‘거인’들은 지상의 확실한 자산인 석유와 디지털 정보를 무기로 삼았지만 스페이스X는 ‘우주’라는 공간을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했다. 우주를 사업화한 세계 최초의 기업이다.

▶미 증권 당국에 제출된 투자 설명서는 거대한 SF(공상과학) 소설을 연상케 했다. 로켓 발사 대행은 물론 화성 이주 계획을 제시하고, 달 기지 건설을 통한 우주 경제권을 선점하고, 우주 위성 인터넷(스타링크)을 팔겠다는 꿈을 적었다. 지구에 한정됐던 물류·통신·자원의 무대를 우주로 확장해 독점적 지배권을 상품화하겠다는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만 머물다간 멸종된 공룡을 따를 것’이라 경고도 했다. 월가는 “인류 미래의 예언서이자 우주 영토 소유권 문서”라고 평가했다.

▶인류가 새 영토를 개척할 때마다 주식시장은 돈을 무섭게 빨아들였다. 17세기 바다를 개척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그랬고, 18~19세기 운하와 철도 등 새로운 교통망 사업에 투자했던 영국이 그랬다. 20세기 말엔 인터넷이란 가상 영토에 열광했다. 스페이스X는 우주와 달, 화성을 자본주의의 영토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우주 비행의 아버지로 불리는 러시아 물리학자 치올콥스키는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지만 평생 요람에서 살 수는 없다”고 했다. 21세기 투자자들은 지구라는 요람의 자산을 팔아 미래의 우주로 가려 한다. 일론 머스크 개인에게 좌우되는 지배 구조 리스크와 밑 빠진 독처럼 돈이 드는 우주 개척의 불확실성은 투자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400년 전 동인도회사에 대한 투자가 대항해 시대를 열었듯 이번 투자가 인류의 영토를 우주로 바꿀 대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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