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공약公約의 위력威力- 김순철(통영쪽빛감성학교협동조합 대표)

knnews 2026. 6. 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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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가 통합해 통영시가 탄생했다. 때를 같이해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전격적으로 민선 시대가 열렸다. 통합 명칭이 충무시가 아닌 통영시로 결정된 그 자체가 극적이고 역사적이었다. 시세(市勢)나 인구가 통영군보다 많았던 충무를 버리고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한 지명 통영을 통합시 명칭으로 선택한 것은 대단한 결정이었다.

충청·전라·경상 등 삼도수군 총괄 본부였던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은 한산진영이었다.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진 통제영은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지금(당시 두룡포)의 자리에 다시 건설한 이후 1895년 폐영 될 때까지 약 292년 동안 조선의 바다를 지킨 해군본부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수많은 관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훼철되고 겨우 세병관 건물 하나만 남은 상태였다. 조선을 침탈한 그들은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삼도수군통제영 내 거의 모든 관아를 초토화 시켰다. 통영세무서, 통영지원, 통영지청 등 세 개의 권력기관과 통영초, 충렬여중, 충렬여상 등 세 개의 학교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중영청, 십이공방, 백화당, 운주당, 내아, 주전소 등 주요 관아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다. 통영시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 것이다.

민선 시대가 시작되면서 삼도수군통제영 복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긴 했지만 누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초대 고동주 통영시장 후보가 삼도수군통제영 복원을 공약하고 나섰다. 많은 시민들이 표를 얻기 위한 헛공약이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쨌든 고 시장은 초대 민선 시장에 당선됐고 연임에 성공하면서 그 헛공약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필자는 통합 통영시의 문화공보실에 발령받았다. 1995년 통제영복원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방문, 기초자료를 찾으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삼도수군통제영 복원사업은 1995년 기본계획 수립 이후 2000년께 본격 시작했고 약 600억 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 2013년에 낙성식을 가졌다. 고 시장이 내건 공약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통제영 복원 경과를 새긴 조그마한 빗돌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김순철(통영쪽빛감성학교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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