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재 원자재값 63% 급등"…초고환율에 K중기 비명
전쟁발 물류비 폭등 이어
원자재 수입 단가도 치솟아
납품가에 반영 못해 삼중고
제약사도 달러결제 직격탄
"해외원료 수입비용 30%급증"

국내 주요 대기업에 공장 건설용 알루미늄 패널을 공급하는 중소기업 A사는 원화가치 폭락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 수입하는 알루미늄 소재 가격이 올 초 1㎏당 5000원에서 이달 6200원으로 24% 상승했기 때문이다.
배관용 파이프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B사는 제품가격을 최근 30~40% 올렸다. 원가의 50~60%를 차지하는 PVC(폴리염화비닐) 레진 가격이 올 초 t당 110만원에서 현재 180만원까지 60% 이상 상승한 데다 고환율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고환율 파고는 일선 의료 현장까지 덮쳤다. 국내 병원에서 쓰는 대형 의료장비와 핵심 치료재, 수술 소모품 역시 대부분 외국산 제품이라 환율 상승분이 가격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심장수술 필수 재료인 대동맥 판막 가격이 개당 3000만원이나 되는데, 전량 수입해야 한다"며 "환율 때문에 단순 수술비용이 10% 이상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인 1550원대를 기록하자 산업계 전반에 '초고환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지난 3월 발발한 중동 전쟁 여파가 이어져 원재료 품귀 현상을 겪는 상황에서 환율 리스크까지 더해진 탓이다. 특히 대기업에 소재·부품을 납품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은 인상된 가격을 대기업 납품가에 반영하지 못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A사 대표는 "일부 물량은 겨우 납품단가를 올렸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라며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품 비중이 큰데, 계약 구조상 납품단가 인상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고환율은 제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웨이퍼와 유리기판,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검사장비를 개발하는 C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구동에 핵심적인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가격이 연초 대비 2배로 치솟았다. 검사장비에 쓰이는 최고 사양인 지포스 RTX 5090 가격은 600만원에 달한다.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영향에 환율까지 더해져 원가 부담이 더 커졌다. 반도체뿐 아니라 머신비전 장비에 들어가는 센서 가격 역시 이달부터 30% 인상됐다.
이에 C사는 대기업 고객사에 납품가격을 환율과 연동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센서 등 부품가격은 환율에 연동해 매달 올린다는 통보가 왔는데, 우리는 납품가를 조절하지 못해 영업이익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고 말했다.
제지업계도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아 환율 변동에 따른 타격이 크다. 제지 생산의 핵심 원료인 펄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펄프 관련 자재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80%에 육박한다.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 원료를 사용하는 완구업계 또한 환율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호소했다. 한 중견 완구업체 대표는 "올 초에 비해 원가만 7%나 올라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다른 완구업체 대표도 "중동 전쟁 이후로 물류비가 3배 가까이 뛰었는데, 원화가치마저 떨어져 원료 가격이 올라 힘들다"고 말했다.
제약사들도 원료의약품 비용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2024년 기준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31.9%에 불과하다. 70%에 가까운 22억5070만달러(약 3조원)를 유럽·중국·인도 등에 의존하는데, 이 거래가 대부분 달러로 결제돼 고스란히 비용으로 전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환율 영향으로 원료 조달비용이 10~30% 급등했다"며 "한국 의료체계 특성상 약가를 임의로 인상할 수 없어 환율에 따른 비용을 제약기업들이 떠안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한미약품(원재료 수입액·781억원) 대웅제약(478억원) 등 주요 제약사의 해외 의약품 매입 규모와 고환율 기조 등을 감안하면 제약사별로 100억원 안팎의 추가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식품업계도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자 가격 동결 사이에 끼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BBQ 관계자는 "올리브유 등 튀김유를 비롯해 닭고기·밀가루 가격이 많이 올라 현재 비용 수십억 원이 추가됐다"면서도 "소비자와 가맹점에 부담을 떠넘길 수 없어 원가 상승에 따른 비용을 본사가 직접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이윤식 기자 / 이호준 기자 / 양세호 기자 / 심희진 기자 /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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