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칩 공급 넘어 AI 인프라 생태계 심는다···젠슨 황 광폭 행보가 말하는 것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방문해 서울에 인공지능(AI) 연구개발 거점을 세우고, 새 AI 하드웨어 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삼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엔비디아가 한국을 AI 생태계 구축의 ‘전략적 동맹’이자 ‘테스트베드’로 낙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월 ‘1차 깐부회동’과 비교해 이번 ‘2차 삼겹살 회동’에서 황 CEO는 소프트웨어와 제조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기업을 만났다. 한국이 엔비디아의 글로벌 AI 인프라 확장에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황 CEO 방한의 주된 목적은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핵심 파트너를 확보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 CEO는 지난 5일 방한 직후 취재진과 만나 “한국에 큰 선물로 엔비디아의 4개 새로운 사업을 가져왔다”면서 “아주 큰 신규 사업들이다. 한국은 정말, 정말 바빠질 것”이라고 했다. 언급된 사업은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베라 중앙처리장치(CPU)·AI PC용 슈퍼칩 ‘RTX 스파크’·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를 위해 설계된 AI 엣지 슈퍼컴퓨터 ‘젯슨 토르’다.
베라 루빈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이 공급하는 HBM4가 탑재될 예정이다. 젯슨 토르는 현대차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에 탑재될 것으로 전망된다. RTX 스파크는 고성능 PC나 온디바이스 AI에 적용될 수 있다. 차세대 AI 가속기, 피지컬 AI, AI PC 등 엔비디아의 새 사업 축마다 한국 기업과의 접점이 생기는 셈이다. SK는 8일 오전 SK 서린사옥에서 엔비디아와의 AI 관련 협력 청사진을 발표할 방침이다.
엔비디아가 한국 내 AI 연구개발 거점 설립을 공식화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황 CEO는 지난 5일 방한해 “한국 내 AI 연구 엔지니어, 로봇공학 연구를 위한 매우 뛰어난 연구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한국에서 디지털 트윈과 로보틱스를 담당할 직원 채용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센터는 엔비디아의 최신 기술을 한국 제조업·로봇·클라우드 생태계에 접목하는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센터 장소로는 서울이 유력하다.
로이터는 지난 5일 “(젠슨 황의 방한이)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들과 반도체뿐 아니라 로보틱스, AI 팩토리 분야에서도 관계를 깊게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1차 방한 때와 비교해 접촉 대상도 넓어졌다. 황 CEO는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삼겹살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구광모 LG그룹 회장·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 ‘형님 회동’을 했다. 7일에는 김택진 엔씨 대표·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과 피지컬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저녁에 강남에서 ‘2차 깐부회동’을 가진다. 이어 8일에는 한국 로봇·AI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나 자사 피지컬AI 플랫폼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1차 방한에서는 반도체 공급망 관리 의미가 컸다면 이번에는 게임사·로봇 기업 등 수요 확장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젠슨 황의 광폭 행보에는 ‘AI 테스트베드’로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방한 당시 젠슨 황은 GPU 공급자라는 ‘슈퍼갑’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AI 생태계 구축에 함께 나설 파트너를 찾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메모리 등 반도체, 자동차·로봇 등 피지컬 AI 기업, 디지털 인프라 등 역량이 고루 갖춰져 있어 제조 분야가 약한 미국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AI가 반도체를 넘어 데이터센터, 통신·전력망, 클라우드 등 국가 인프라 사업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유럽, 중국 등도 각국 주도로 ‘소버린 AI(주권 AI)’ 구축에 나서고 있고, 한국도 LG·SK 등이 소버린 AI 구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칩 공급자를 넘어 AI 인프라 사업자로 도약하려는 엔비디아가 한국 소버린 AI 수요를 선점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다른 빅테크 등 경쟁사의 추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엔비디아는 피지컬 AI와 같은 차세대 밸류체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한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현재 엔비디아가 구축한 AI 밸류체인에 적극 동참하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역량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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