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류문명의 여정] 토기, 문명을 담은 오래된 그릇

최정필 세종대학교 명예교수 2026. 6. 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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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필 세종대학교 명예교수

토기는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발명품이다. 농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도구도 늘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토기는 정착생활 또는 농경 문화의 확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바구니나 저장 구덩이, 박 나무 열매 그리고 동물 가죽으로 만든 용기를 이용해 식량과 물을 보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습기와 해충, 오염에 취약해 장기 저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토기의 출현은 식량 저장의 안전성을 높이며 생활의 기반을 바꾸어 놓았다.

토기는 조리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토기가 등장하기 전 인간 사회에서는 불에 달군 돌을 이용해 음식을 익히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토기가 출현하기 이전 선사인들은 구덩이에 바구니나 가죽 주머니를 놓고 물과 식재료를 담은 뒤 흙과 뜨거운 돌을 넣어 끓여 음식을 조리했다. 곡물을 돌 위에 굽거나 재 속에 직접 굽는 방법도 흔했다.

토기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번거로운 과정은 줄어들었다. 그릇 안에서 죽이나 국을 끓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가능하게 했다. 조리 기술의 변화는 영양 섭취와 건강, 나아가 일상의 리듬까지 변화시켰다.

토기 문화는 지역에 따라 농경보다 먼저 등장하기도 했고, 농경 이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토기는 약 2만 년 전 중국 양쯔강 중류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일본 동북지역에서는 약 1만6천 년 전의 토기가 확인되었으며,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과 일본 규슈 지역에서도 1만4천 년 전의 토기가 보고되었다. 한반도 역시 제주도 고산리 유적을 통해 1만 년이 넘는 토기 전통을 보여준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의 더 이른 토기 유적이 현재는 서해 바닷속에 잠겨 있다고 생각된다.

토기는 제작 과정이 비교적 복잡하기 때문에, 제한된 지역에서 발명된 뒤 인접 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초기 토기는 거친 흙을 손으로 빚어 낮은 온도에서 구운 형태였지만, 액체 음식을 조리하고 단기간 저장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시간이 흐르며 기술이 발전하자 토기는 점차 정교해졌고, 저장과 조리, 나아가 의례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토기의 확산은 정착 생활을 더욱 가속화했다. 토기 사용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는 농경 문화와 함께 정착으로 이어졌다. 토기는 정착 생활의 결과이자 동시에 그 원인이었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토기 양식의 유사성은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기원전 1천 년 무렵, 북미 동북부 지역에서는 한반도의 빗살무늬 토기와 닮은 토기가 나타난다. 둥근 바닥과 곧게 뻗은 아가리, 물결무늬와 기하학적 장식은 신석기 시대 토기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토기의 형태적 유사성은 선사시대 인류 사이에 문화적 접점이 있었다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20세기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이어달의 콘티키 항해를 통해 주목받았다. 그는 잉카 시대의 방식으로 제작한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폴리네시아 군도에 도달함으로써, 고대인 역시 대양 횡단이 가능했음을 실증했다. 그의 항해는 인류 문화가 결코 고립된 채 발전하지 않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레가 발명되기 전, 많은 원주민 사회에서 토기 제작은 여성의 몫이었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진 제작 방식과 문양은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았다. 손으로 빚고 노천요에서 구운 토기에는 기술뿐 아니라 삶의 리듬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토기는 인간 삶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릇의 형태와 무늬, 흙과 불의 흔적 속에는 고대인들의 생활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토기는 인류가 정착하고 서로 연결되며 문명을 이루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위대한 발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