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 대신 HBM, 그래픽카드 대신 로봇…달라진 컴퓨텍스

강민경 2026. 6. 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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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따라잡기]
HBM·SSD·OLED·로봇…AI 공급망 총출동
AI 산업 지형도 한눈에 보여준 컴퓨텍스

컴퓨터 전시회에 왜 HBM과 SSD, 로봇이 등장했을까요.

올해 '컴퓨텍스 2026'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AI'였습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AI 서버와 HBM(고대역폭메모리)·SSD·로봇·AI PC가 자리했고 주요 기업 부스마다 엔비디아 로고가 걸렸습니다. 관람객들의 시선 역시 신제품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1981년 출범한 컴퓨텍스는 원래 PC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행사였습니다. CPU와 그래픽카드, 메인보드 제조사들이 최신 기술을 선보이는 무대였죠. 하지만 올해 컴퓨텍스의 주인공은 PC가 아니었습니다. AI 서버와 HBM, SSD, 로봇이 전시장 중심을 차지했고, 기업들은 저마다 자신이 AI 공급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칩 하나로는 부족한 시대

생성형 AI가 모든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더 이상 GPU 하나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메모리와 저장장치, 이를 만드는 장비, 결과물을 구현하는 디스플레이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개별 반도체 성능에서 공급망 전체의 완성도로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올해 컴퓨텍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메모리였습니다. AI 산업이 커질수록 중요성이 높아지는 부품이 바로 HBM(고대역폭메모리)입니다. 여러 장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전송 속도를 끌어올린 메모리죠.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 AI 가속기에는 사실상 필수 부품으로 꼽힙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4E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달라(Please Make More)"고 적은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됩니다. AI 산업의 최대 과제가 GPU 성능 향상에서 HBM 확보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겁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일(현지시간) '컴퓨텍스 2026'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4E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달라(Please Make More)"는 메시지와 서명을 남겼다./사진=SK하이닉스

HBM 수요가 늘면서 생산 장비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한미반도체가 이번 컴퓨텍스에 처음 참가해 HBM4 생산용 'TC본더4'와 차세대 '와이드 TC본더'를 공개한 이유입니다. TC본더는 여러 장의 D램을 정밀하게 쌓아 올리는 핵심 장비로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기술 난도가 높아집니다. AI 반도체 경쟁이 GPU에서 HBM으로, 다시 HBM 제조 장비로 확장되고 있는 셈입니다.

저장장치 역시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AI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처리해야 할 데이터양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연산 성능이 뛰어나더라도 데이터를 읽고 저장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기업 파두가 이번 컴퓨텍스에서 차세대 'Gen6 SSD 컨트롤러'를 공개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AI 추론 환경에 최적화한 저장장치 기술을 앞세워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에 나선 것입니다.

디스플레이·로봇까지…넓어지는 AI 영토

AI 영향력은 데이터센터를 넘어 디스플레이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OLED입니다. 과거 TV 중심이었던 OLED 경쟁은 최근 게이밍 모니터와 AI PC 시장으로 무대를 옮기고 있습니다. 특히 AI PC 확산과 함께 더 선명한 화질, 빠른 응답속도, 높은 전력 효율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패널 성능 역시 AI 생태계의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죠.

LG디스플레이는 이번 컴퓨텍스 기간 글로벌 고객사를 대상으로 게이밍 OLED 로드쇼를 열고 차세대 기술 로드맵을 공개했습니다. 세계 최초 5K2K 해상도 39인치 OLED와 RGB 스트라이프 OLED 패널을 선보인 데 이어 최대 2000니트 밝기와 '트루 블랙 1000', 초고주사율 구현을 위한 DFR 2.0 기술 등을 공개하며 하이엔드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휴대용 게이밍 PC용 8.8형 OLED부터 49형 QD-OLED 모니터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전시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4K 해상도와 360Hz 주사율을 동시에 구현한 QD-OLED와 기존 제품보다 20% 이상 얇아진 '울트라 슬림' 노트북용 OLED를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죠.

두 회사의 경쟁은 단순 화질 개선을 넘어 AI 시대에 요구되는 디스플레이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초고휘도·초고주사율 기술을, 삼성디스플레이는 초슬림 설계와 고성능 QD-OLED를 앞세우며 차세대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습니다. 결국 AI 경쟁이 반도체를 넘어 디스플레이 기술 진화까지 이끌고 있는 셈입니다. AI PC와 게이밍 기기 수요가 늘어날수록 OLED 시장의 주도권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로봇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올해 컴퓨텍스 전시장 곳곳에서는 로봇과 스마트 모빌리티가 주요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대만무역센터 역시 로봇을 핵심 전시 분야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고요. 엔비디아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AI의 다음 성장 무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AI가 데이터센터를 넘어 산업 현장과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 컴퓨텍스가 CPU와 그래픽카드 중심의 PC 기술 전시회였다면 지금은 AI 생태계 참여 기업들이 모여 협력 관계와 공급망 경쟁력을 보여주는 무대로 바뀌고 있다"며 "젠슨 황 CEO가 어느 부스를 찾는지가 화제가 되는 것도 결국 AI 공급망 안에서 각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AI 시장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칩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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