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이긴다는 갱년기의 엄마가 낡은 여권들고 떠나더니… [여책저책]
누구나 인생의 전환기인 중년을 맞이할 테죠. 누구보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오던 자신에게 느릿한 여유가 있는 여행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요. 화려한 명소를 소비하는 관광 대신, 스스로 선택한 고요 속에서 하루의 밀도를 채워가는 방식으로 말이죠.

김경아 | 미다스북스

갱년기는 단순한 신체적 노화를 넘어 ‘엄마’와 ‘아내’라는 사회적 역할의 변화와 맞물린다. 거대한 심리적 지진이라고까지 할 만큼 요동친다.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음에도 문득 찾아오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과 무기력 앞에 서면 삶의 궤도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불안에 휩싸인다.
책 ‘날아 봐, 떠나 봐, 나를 봐’의 저자 김경아는 이 무거운 갱년기라는 신호탄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낡은 여권을 챙겨 들고 길 위로 나섰다. 이 책은 50대라는 생의 중간 지점에서 조용히 비행 방향을 바꾸어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 걸어간 성실하고 담담한 치유의 기록이다.
저자는 “살고 싶어 떠났고, 돌아와 피어났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가장 미덕 있는 지점은 시중의 수많은 가이드북처럼 극적인 치유를 성급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책은 흔들리는 상태 그대로의 삶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를 취한다.

관광지의 화려한 이면을 들추는 대신 철저히 저자 개인의 감정 지형을 따라 이동하는 여정은 독자들에게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책은 중년 여성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나이가 들며 변화하는 몸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옷차림 하나에도 검열을 붙여야 했던 억압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와 독일의 거리에서 나답게 입는 법을 배우는 저자의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눈물겹다.
바티칸 피에타 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딸이었고 엄마였고 마침내 나’라는 주체적인 존재로 우뚝 서는 순간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는 낭만적인 풍경 이면에 숨겨진 우울과 불안, 노화의 징후들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을 억지로 이겨내려 애쓰기보다 삶의 무게중심을 ‘잘 버티는 삶’에서 ‘조금 덜 애쓰는 삶’으로 미세하게 옮겨갈 뿐이다.

건강하게 잘 자란 할머니가 되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쓴다는 저자의 다짐처럼 이 책은 화려한 성취 대신 작고 소중한 것들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폭주를 멈추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다면 이 책이 제안하는 느린 걸음에 동참해 볼 일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 책은 일상의 복잡한 소음을 끄고 온전한 나를 마주하려는 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조용한 착륙 지점이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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