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누구의 것인가”…AI시대, 인간이 마주한 상실의 여정

김태언 기자 2026. 6. 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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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신작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디어캐슬 제공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세계적인 거장인 건 알고 있었어요?”

5일 서울 강남구 영화배급사 NEW 사무실. 올해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상자 속의 양’ 주인공인 쿠와키 리무(10)는 질문을 듣고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옆자리에 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64)이 “그냥 아저씨인 줄 알았지?”하며 웃자, “그건 아닌데…. 진짜에요?”라고 되물었다.

배우 쿠와키 리무가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상자 속의 양‘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6.4 뉴스1
고레에다는 세계적인 감독이지만 아역 발굴에 탁월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캐스팅 때 보는 건 오로지 첫인상.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 ‘괴물’의 구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 등 그를 거쳐간 아역배우들이 모두 그랬다. 이번에 그의 직감은 말간 얼굴을 한 쿠와키에게로 향했다. 200대 1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쿠와키는 고레에다 감독의 첫 공상과학(SF)물 아역이 됐다.

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은 2년 전 발견한 한 중국 스타트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과 동영상을 바탕으로 고인의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만드는 이 기업을 본 뒤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오토네(아야세 하루카)와 켄스케(야마모토 다이고)가 아들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카케루(쿠와키)를 집에 들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은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로봇 카케루(쿠와키 리무)가 아이를 잃은 부부의 삶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공상과학(SF)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0번째 칸 국제 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 NEW 제공
다만 영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 가정의 회복을 다룰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점차 카케루 내면 변화에 집중한다. 제아무리 똑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카케루는 죽은 아이가 아니다. 자신 또한 스스로 인간과 다른 존재란 걸 깨닫고, 이내 부부의 보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다른 휴머노이드 아이들과 무리를 이뤄 사는 삶이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작품을 ‘AI 영화’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며 “자아를 갖게 되는 휴머노이드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휴머노이드를 원하는 인간들과 그들의 마음’을 그려내려 애썼다”며 “영화를 볼 때 부부에게로 시선이 갔으면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인간들은 생전의 좋은 기억들만 골라 죽은 아이를 되살려내고, 카케루에게 진짜 아들의 영혼을 투영하면서 다시 한번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란 희망을 욱여넣는다. 하지만 영화는 인간의 바람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파고들면서, 부부가 카케루를 통해 비로소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쫓는다.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통하는 순간이다.

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은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로봇 카케루(쿠와키 리무)가 아이를 잃은 부부의 삶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공상과학(SF)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0번째 칸 국제 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 NEW 제공
“아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부모 각자가 깊이 후회하는 지점이 있어요. 아빠는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어하고, 엄마는 상처줬던 말을 뼈저리게 후회하죠. 부모는 이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상처를 주고요. 쉽게 성장하지 못하고 또 다른 후회를 반복하는 인간의 모순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영화는 명작으로 불리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아쉽다. 솔직히 범작(凡作)에 가깝다. 가족애나 상실, AI 윤리, 자연 등 여러 소재가 뒤섞이다 보니 다소 산만하다. 여러 문제의식을 끝내 한 줄기로 수렴시키지 못한 듯하다. 다만 수많은 화두 속에 길을 잃었다면, 고레에다 감독의 출발점을 참고하면 좋겠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정말로 전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요. 그럼에도 죽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죽은 사람의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기술은 사람의 이기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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