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 띄우기, 후계 포석? 정치 연출?…‘4대 세습’ 북한의 속내는 뭘까

곽희양 기자 2026. 6. 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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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통일부서 엇갈린 분석…북한은 ‘4대 세습’ 기정사실화
김정은, 파묘 피하려 혈통 승계 원칙 강화…‘핵·독재’ 지속 효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주애(오른쪽 아래)가 지난 5월 7일 취역을 앞둔 최신 구축함 ‘최현호’에 탑승해 군 간부들과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화면·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는 지난 5월 7일 최신 구축함에서 군 간부들에게 보고를 받는 듯했다. 주애는 아버지처럼 가죽 재킷을 입었고, 아버지와 함께 병사들이 먹는 즉석밥을 먹었다. 기념사진 촬영에서도 ‘센터’를 차지했다.

2022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호’ 시험발사에서 첫 등장한 주애(2013년생·당시 9세 추정)는 현재까지 최소 70차례 아버지와 동행했다. 군수공장 방문·신도시 준공식 등 국내 행보는 물론 중국·러시아 외교 행보에도 함께 했다. 고모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을 비롯해 당·군·정 간부들은 주애를 깍듯이 모셨고, 주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주애는 주요 간부들과 소총·권총 사격을 하는가 하면, 아버지를 태우고 신형 탱크를 운전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아버지와 손깍지를 끼거나 아버지 볼에 뽀뽀하기도 했다. 가죽 재킷, 반투명 블라우스, 모피 장식의 외투 등 또래 소녀들이 입을 수 없는 패션도 그가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했다.

국정원 “후계자”, 통일부 “단정 일러”

국가정보원은 주애가 김 위원장 장녀이며, 후계자로 본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지난 4월 보고했다. 주애를 후계자로 단정한 것은 “신빙성 있는 첩보를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전까지 주애를 두고 “유력 후계자”(지난해 9월), “후계 내정 단계”(지난 2월)라고 해왔다. 때문에 주애의 광폭 행보는 어린 시절부터 업적을 쌓아 그의 후계를 정당화시키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다만 주애의 신상이 공식화된 적은 없다. 주애라는 이름이 정확한지 알 수 없고 목소리도 공개된 바 없다. NBA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자 김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데니스 로드맨이 2013년 방북했을 때 “그의 딸 주애(ju-ae)를 안았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주애로 통칭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최종 확인한 바 없다. 당원이 될 수 있는 나이(18세)가 아니기에 공식 직함을 받은 적은 없다.

통일부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주애가 후계자일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지만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주애의 행보에 대해 “후계구도 측면보다는, 사회주의 대가정(수령·당·주민의 관계를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와 같다고 보는 사상)이나 정상국가의 모습을 강조했다”고 해석한다. 이는 첩보에 근거한 국정원과 공개된 정보에 근거한 통일부의 차이일 수 있다.

주애가 여성이라는 점도 신중한 태도를 낳게 하는 요인이다. 4대 세습 이후 자녀가 5대 세습을 할 경우 주애 남편의 성씨를 따르게 된다. 이 경우 백두혈통 승계 원칙이 깨지게 된다. 북한에서 여성은 혁명가를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렇다 보니 각자가 내린 결론에 따라 상반된 분석이 나온다. 국정원은 주애의 미사일 시험 발사 참관 등 군사 행보를 “여성 후계자에 대한 의구심을 희석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반면 통일부는 “군사적 능력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연출”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주애가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불리는 것을 두고도 후계자로서 의전을 고려했다는 해석과 지도자 가족의 친근함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온다.

이 때문에 주애가 유력한 후계자 후보이긴 하지만,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 결정 전에는 삼촌 김영주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후계 결정 전에는 이복형 김정남, 친형 김정철이 후계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현인애 한반도미래여성연구소장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북한에서 주애가 남성화된 모습으로 후계자가 될 수도, 아니면 다른 자녀가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며 “김정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현재로선 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2024년 5월 15일 평양의 뉴타운 격인 ‘전위거리’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파묘가 두려워 ‘혈통’을 택한다

독재자에겐 자신을 보호해줄 인물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권력을 이어받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개인숭배를 비판한 것이 김일성의 후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핏줄’만큼 독재자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독재자와 함께 나라를 지배하는 엘리트 집단도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주판알을 튕긴다. 김정일·김정은 후계 당시 엘리트 집단은 후계자에 편승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활동한 20년을 함께해온 엘리트 집단은 1990년대 중반 최악의 경제난을 김정일과 함께 버텨냈다. 반면 공식 후계자로 2년을 활동한 김정은은 집권 이후 4년 동안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아버지와 가까웠던 엘리트 260여명을 숙청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김정은에게 도전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 위원은 “그러나 권력 승계기에 후계자의 권력이 약할 경우 정치적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11일 군수공장을 방문해 권총 사격을 하고 있다. 군수공장 현장지도에 동행한 딸 주애도 군 간부들과 함께 권총 사격을 했다. 위 사진은 김 위원장과 주애의 사진을 하나로 붙인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파묘를 당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후계자의 ‘능력’은 핏줄에 비해 부차적이다.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가 된 이후 1980년대 발표된 북한의 ‘후계자론’은 후계자에게 4가지 덕목을 요구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뛰어난 영도력, 주민들 속에서 권위를 갖춰야 하며 수령의 다음 세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후계자는 “혈통만 절대시되고 그 인물이 완전히 무시되는” “부르주아 군주제 왕위의 혈통적 계승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세습이 사회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김정은도 1972년 발표된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2013년 개정하면서 혈통승계 원칙을 강화했다. “혁명의 명백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간다는 문구를 추가한 것이다. 이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상(혁명적 수령론)이나 수령을 중심으로 당의 영토 밑에서 주민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사상(사회정치적 생명체론)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다. 북한 주민들에게 세습이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진 이유이기도 하다. 오 위원은 “후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혈통”이라며 “후계자는 평균적인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 꾸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선대 세습 때와 다른 점

김정일·김정은 세습은 ‘선대 수령의 후계자 결정→당의 후계자 공식화→수령 사망 후 권력 이양’ 순서로 진행됐다. 후계자로 공식화되기 전후에는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중심으로 우상화 작업이 진행됐다.

김정일은 33세였던 1974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비공식 후계자가 됐다. 이때부터 ‘당중앙’으로 불렸고,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문구가 보급됐다. 이어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돼 공식 후계자가 됐다.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물려받았다.

김정은은 23세였던 2007년쯤 비공개 후계자가 됐다. 2009년 ‘만경대 혈통, 백두의 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라는 문구가 퍼졌다.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발걸음’도 보급됐다. 2010년 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돼 공식 후계자가 됐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물려받았다.

주애가 비공식 후계자로 지명됐는지 확언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주애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당 간부와 당원을 대상으로 주애를 우상화하는 교재가 배포되거나 주애를 찬양하는 노래가 보급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매체가 김정은과 주애를 “향도의 위대한 분들”이라고 호칭한 적은 있다. 향도자는 인민을 이끄는 지도자를 일컫는 것으로, 주애를 후계자로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당 간부 강연회에서 주애가 ‘샛별 여장군’으로 불렸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해당 보도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애가 후계자이냐 아니냐의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김정은 시대의 기조하에서 ‘내 핏줄을 잇는 차기 지도자가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을 일찍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지난 2월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 기념 열병식을 관람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핵 보유 독재체제 지속’ 효과 얻어

적어도 주애의 등장은 북한의 4대 세습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후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앞서 있는 ‘권력 승계가 이뤄질 것이냐’는 질문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강화된 경제제재, 2019년 북·미 정상회담 결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김정은 건강에 대한 끊이지 않는 의구심 등 국가·체제·정권에 대한 불안 요소는 후계에 대한 궁금증 뒤편으로 밀려났다. 기정사실화된 4대 세습이 북한 엘리트 집단과 주민들의 충성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대외적인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후계에 대한 논의는 북한이 주장하는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핵무기를 통해 미래세대의 안전보장을 담보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핵 수저’를 물고 집권하게 되는 후계자에게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적대적 두 국가’ 선언으로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를 포기한 북한의 독재체제가 지속할 것이란 비전을 만들어낸다.

김상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설사 김정은이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경제제재를 이겨내며 핵 포기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해 국가의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남한과 통일을 포기한 북한이 건재할 것이라는 신호를 4대 세습 논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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