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탐구생활] 석탄 저문 자리에 ‘햇빛·바람’이 분다… 태안의 청정 부활 서곡
석탄화력발전 총 8기, 2037년까지 순차 폐쇄
유휴 인프라에 해상풍력 1.4GW·태양광 600MW 개발 추진
국산 기자재 38.9조원 규모... 3.9만 고용 창출 효과 기대

최근 찾은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1호기. 발전소 내부에 들어섰지만, 거대한 보일러가 뿜어내던 특유의 굉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방을 채운 것은 기묘할 정도의 적막감뿐이었다. 지난해 12월, 30년간 대한민국의 밤을 밝히던 대형 굴뚝 하나가 가동을 멈춰 섰기 때문이다.
석탄 수송 라인과 회처리장 비산 먼지가 메우던 이 간척지 일대는 지금 태양광 패널과 해상풍력 인프라 기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로 걱정이 많던 태안군은 주민 상생을 매개로 한 ‘에너지 대전환 도시’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태안발전본부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지난 3월 말 기준 총 설비용량 1만519MW(메가와트)로, 국내 총 발전 설비용량(15만8279MW)의 약 6.6%를 담당했다. 30년간 누적 11만8000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고 멈춰 선 태안 1호기를 시작으로, 오는 2037년까지 8호기가 순차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다.
서부발전은 폐쇄 과정에서 생기는 유휴 전력계통과 인프라를 활용해 태안을 해상풍력과 태양광 중심의 재생에너지 거점으로 육성하는 중장기 전략을 세웠다. 타 발전사들이 기존 부지에 LNG 복합발전을 건설하는 우회로를 택할 때,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설비를 빠르게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태안발전본부 터빈동 전망대에 오르자 앞으로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설 서해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서부발전은 태안발전본부가 위치한 원북면 해안가에서 약 40㎞ 떨어진 격렬비열도 인근 바다에서 태안(500MW)·서해(495MW)·가의(400MW) 등 총 1.4GW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3월 일부 해역의 군 작전성 협의 등을 조건으로 이 일대를 해상풍력 집적화단지로 조건부 지정했다. 평균 풍속 7m/s 이상의 우수한 효율을 가진 이곳은 발전기 설치에 그치지 않고 해저케이블, 변전설비, 송전망에 전용 부두까지 결합되는 거대한 해양 안보 산업의 청사진을 품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태안해상풍력은 진행 속도도 가장 빠르다. 정부 고정가격계약 입찰을 거쳐 올해 하반기 착공, 2029년 말 상업 운전을 목표로 공유수면 허가 협의 중이다. 서해·가의해상풍력은 현재 환경영향평가 단계를 밟고 있다.

다시금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청정 영토가 펼쳐졌다. 전망대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이원호 수상태양광의 모습은 잔물결 하나 없이 짙푸른 빛을 머금은 거대한 인공 바다 같았다. 이미 가동 중인 이원호(43MW)와 햇들원 태양광(60MW)에 이어 향후 이원간척지(500MW)와 2회처리장(100MW) 등까지 포함하면 태양광 설비는 총 600MW 규모로 확대된다. 이는 20년 동안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며 지역 소멸을 막는 ‘상생’의 가치인 셈이다.
다만 석탄의 빈자리를 거대한 바람과 햇빛으로 채우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최우선 과제는 기존 계통을 단순히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출력 특성에 맞게 안정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라며 기술적 난제를 짚었다.
일정한 출력을 내는 석탄화력과 달리 해상풍력과 태양광은 자연 조건에 따른 출력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서부발전은 지난 4월 개발·운영 인력을 기존 131명에서 161명으로 대폭 확대하고 재생에너지 건설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 기반의 관제·예측·입찰 통합시스템을 강화했다.
국내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한 공급망 국산화 역시 당면 과제다. 현재 국내 태양광 패널과 인버터의 약 90%가 중국산일 정도로 외산의 저가 공세가 거센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공공주도형 해상풍력 사업은 국내 제조업, 항만산업, 해양엔지니어링 등을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산업정책적 의미를 갖는다”며 “2040년까지 해상풍력 7.4GW를 확보할 경우 국산 기자재 공급은 약 38조9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며 이는 약 3만9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유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전환도 함께 하고 있다. 현재 태안의 에너지 전환은 근로자 및 지역 주민 대표, 외부 전문가, 고용노동부 관계자까지 참여하는 확대 거버넌스 형태로 공동대응 워킹그룹을 개편했다. 올해 말 폐지가 예정된 태안 2호기 근로자 176명에 대한 고용 안정 논의도 테이블에 올라 있다. 석탄하역부두를 재생에너지 건설용 부두로 전환하고, 기존 건물과 창고를 자재창고 및 정비동으로 리모델링하는 등 산업구조 재편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거대한 석탄의 유산 위에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내 산업 생태계를 지키며 청정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태안. 대한민국 전력의 6.6%를 책임지던 이 거대한 전력의 심장은 국가 에너지 지도를 바꿀 이정표를 향해 긴 여정을 시작했다.
태안=정라진 기자 realjin0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