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일 정치인 영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 별세

김종목 기자 2026. 6. 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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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1932~2019) 프랑스 전 대통령 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6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별세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딸 클로드 시라크는 “6일 저녁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AFP에 알렸다.

고인은 ‘정치 거물의 아내’로 60여 년을 살았지만, 자기만의 정치 영역을 개척한 이기도 하다. 프랑스 영부인 중 유일하게 자기 이름으로 선출직 공직을 맡았다.

고인은 1933년 5월 18일 파리에서 베르나데트 테레즈 마리 쇼드롱 드 쿠르셀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부친 집안엔 군인, 산업가, 외교관이 많았다. 파리정치대학에 다닐 때 자크 시라크를 만났다. 1956년 결혼했다. 남편이 장관·총리·파리 시장을 거쳐 1995년 세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정치 여정을 함께했다.

베르나데트 시라크 여사가 2007년 1월 19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 중 남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5일(현지시간) 93세로 별세했다고 딸 클로드 시라크가 6일 AFP에 전했다. AFP연합뉴스

고인은 “고전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외모, 남편보다 더 보수적인 성향, 강한 정치 감각”으로 유명했다. AFP는 “(2002년 대선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베르나데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우파 정치인들이 경쟁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했다. 고인이 1994년부터 이끈 병원 아동 지원 자선 캠페인 ‘피에스 존(Pièces Jaunes·노란 동전 모금 운동)’이 2002년 대선 즈음 큰 호응을 얻었다. 2019년까지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AP는 “샤넬 정장, 선글라스, 콧소리 섞인 목소리,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독설은 프랑스 국민이 기억하는 그의 상징이 됐다. 그 이면에는 쉼 없이 일하는 사람, 냉철한 정치 감각을 지닌 전략가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AP는 자크 시라크의 악명 높은 외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남편의 평판을 냉정하고 절제된 태도로 관리한 방식 때문에 주목받았다”고도 했다.

자크 시라크는 회고록에서 “내 삶의 여인이다. 우리는 함께 너무나 많은 일을 이뤘다”고 했다. 남편은 훗날 2002년 대선 때 극우 정당 지도자였던 장 마리 르 펜의 급부상을 유일하게 경고한 사람이 아내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프랑스 중남부의 코레즈 지역 선출직 도의원을 지냈다. 1979년부터 2015년까지 줄곧 당선됐다. 딸 클로드가 2021년 이곳 도의원에 당선됐다. 장녀 로랑스는 오랫동안 병을 앓다 2016년 사망했다. 이 일로 베르나데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고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위대한 마음을 지닌 여인이었다. 조용하지만 끈질긴 헌신으로 수많은 삶을 바꾼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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