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삶은 수육, 김치 둘둘말아 한입… ‘고향의 맛’ 펼쳐진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연애 시절 매일 찾던 처갓집 동네
이젠 아들과 목욕탕 가려 발걸음
출출한 참에 바로 건너 식당으로
손수 만든 가지런한 반찬 군침 싹
부드럽게 잘 삶은 삼겹살 보쌈에
엄마 손맛 생각나는 쌈장 얹으면
저절로 옛날 김장 풍경 ‘모락모락’
◆자양동
빠르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와이프의 본가는 자양동이다. 결혼 전 연애하는 동안 매일 집에 데려다주던 동네인 자양동은 제2의 고향과도 같다. 자양시장 앞 번화가에서 늦게까지 먹고 마시던 식당들, 강변이 가까워 어느 계절이든 불어오던 물 냄새 나는 바람들, 출퇴근용 오토바이를 처음 샀을 때 함께 드라이브했던 한강공원 가는 길. 자양동에는 정말 많은 추억이 있다.
나는 워낙 걷는 걸 좋아하는지라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처음 보는 공간들에 빠지기 일쑤인데, 자양동에 오면 와이프의 추억상자를 열 수 있어 그게 또 참 재미있다. 와이프가 어릴 적 장인어른과 자주 갔던 갈비집, 친구 어머니가 하시던 식당, 스무 살이 되고 처음 가보았던 술집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했던 편의점. 나를 모르고 있었을 때의 와이프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목욕탕 앞에는 자주 가는 식당이 있다. 선선해지는 계절이면 문을 활짝 열어놓는 곳, 자양동의 안채식당이다. 이곳은 동네 골목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정감 가는 식당이다. 이런 식당은 낮에는 점심 손님들을 받고, 식사시간이 지나면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하는 저녁 영업시간에 맞춰 오랜만에 안채식당을 찾았다. 해가 길어지는 계절,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게에 들어서니 초여름 바람이 입구에서부터 맞아주는 기분이다. 안채의 메뉴는 다양하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찌개류부터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안주 메뉴들도 있다. 정식 메뉴들은 혼자 먹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예전부터 장터와 잔칫상 등 우리의 삶 속에는 늘 돼지고기가 함께했다. 그중에서도 보쌈은 가장 한국적인 돼지고기 문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삶아낸 삼겹살을 김치와 함께 싸 먹는, 어찌 보면 단순한 음식 같지만 그 안에는 오랜 역사와 공동체라는 우리의 정서가 담겨 있다.
보쌈의 어원은 ‘싸다’라는 의미의 ‘보(褓)’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오랜 문화 속에서는 김장하는 날 갓 담근 김치에 삶은 돼지고기를 싸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보쌈 문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겨울을 준비하던 김장날은 단순한 노동의 날이 아니라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온기를 나누는 축제였다.
특히 돼지삼겹살은 지방과 살코기의 균형이 좋아 보쌈용으로 사랑받아 왔다. 오랜 시간 삶아내면 기름은 부드럽게 녹아들고, 살코기는 촉촉한 결을 유지한다. 여기에 된장, 마늘, 대파, 통후추 등을 넣어 삶으면 돼지고기의 잡내는 사라지고 은은한 감칠맛이 남는다. 지역에 따라 커피, 된장, 막걸리, 한약재 등을 넣는 방식도 발전해 왔다.
보쌈의 매력은 단순히 고기에 있지 않다. 잘 익은 김치와의 조화가 핵심이다. 특히 굴이나 무채를 넣은 보쌈김치는 삼겹살의 기름진 풍미를 정리해 주며 입안에서 완벽한 균형을 만든다. 여기에 새우젓 한 점을 곁들이면 짠맛과 감칠맛이 더해져 맛의 깊이가 완성된다. 부드럽게 삶아낸 돼지고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한 상으로 표현된다. 보쌈은 단순한 돼지고기 요리가 아니다. 한국인의 계절, 노동, 나눔, 술자리와 추억이 함께 삶아진 음식이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삼겹살 한 점 속에는 오래된 한국의 시간이 담겨 있다.

<재료> 돼지 통삼겹살 600g, 대파 1대, 생강 20g, 마늘 5알, 간장 120ml, 진간장 50ml, 설탕 40g, 황설탕 30g, 청주 100ml, 물 500ml, 팔각 2개, 계피 1조각, 건고추 1개, 식용유 약간, 계란 1개, 밥 1그릇
<만드는 법> ① 돼지삼겹살은 큼직하게 썰어 팬에 겉면을 노릇하게 구워 기름을 살짝 빼준다.②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대파, 생강, 마늘을 볶아 향을 낸 후 간장, 진간장, 설탕, 황설탕, 청주, 물을 넣고 끓여 준다.③팔각과 계피, 건고추를 넣고 구운 삼겹살을 넣어 약불에서 1시간30분~2시간 정도 천천히 졸여준다. 중간중간 국물을 끼얹어가며 윤기를 입혀 준다.④고기가 충분히 부드러워지면 국물을 자작하게 졸여 농도를 맞춘다. 먹기 좋게 썬 동파육을 밥 위에 올리고 졸여진 소스를 끼얹어 준 후 계란 프라이를 올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 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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