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가느니 죽여줘"… 11년 '간병 지옥'에 갇힌 효자의 비극 [사건 플러스]
아내·모친 살해 후 자살 시도한 부자
남편 징역 3년·아들은 징역 7년 선고
"살인, 정당화 안 되지만 희생은 감안"

2025년 3월 3일. 40대 남성 A씨는 86세 아버지와 함께, 누워만 지내던 82세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팔당댐으로 달렸다. 때늦은 봄눈이 창밖에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두꺼운 옷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어머니는 뒷좌석에 앉아 흐릿한 눈동자로 잿빛 하늘만 바라봤다. 부자간 나직이 오가는 대화에도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세 가족의 마지막 가족여행이었다.
이튿날 오전 10시 30분. 어머니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한 빌라 침대 위에서 숨을 거뒀다. 남편이 차려준 아침을 먹은 뒤 아들이 건넨 수면제(졸피뎀)를 삼키고 잠든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 이날 오후 한강에 뛰어들었다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구조된 A씨는 넋을 놓고 말했다.
“엄마가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해서… 죽였어요.”
'효자'라는 이름의 감옥
11년 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자리를 구하던 A씨의 삶도 거기서 멈췄다. 누나와 형을 대신해 셋째인 그가 간병을 도맡았다. 청력이 매우 나쁜 고령의 아버지까지 함께 모셔야 하는 이중고였다. 간병에 청춘을 갈아 넣느라 결혼도 하지 못한 그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지극 정성인 효자’라고 칭찬했다. 매월 누나와 형으로부터 생활비와 병원비 등을 지원받으며 그렇게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기약 없는 간병이 길어지면서 ‘효자’란 칭송은 이내 A씨를 가두는 감옥이 됐다. 어머니는 2023년 3월 수두증(NPH) 의심 진단을 받은 데 이어, 같은 해 9월 알츠하이머 확정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6월에는 고관절 골절로 사실상 하반신 마비 상태가 됐다. 효심은 서서히 증오와 좌절로 얼룩졌다. “어머니 간병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나만 할 수 있다”는 자기희생적 집착 속에서 그의 영혼은 서서히 병들어 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결정적 도화선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형과 누나의 말이었다. “요양원에 들어가느니 죽여달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와중에도 어머니는 요양원만큼은 완강히 거부했다. 병세가 심해질수록 유언처럼 이 말만 반복했다. A씨가 극심한 간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간병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도미노 파탄에 갈 곳은 요양원뿐
피할 수 없는 비극은 연달아 찾아왔다. 2024년, 생활비 대부분을 지원하던 형이 실직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끊었다. 누나 역시 가계 재정 악화를 이유로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설상가상으로 빌라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어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요양원뿐이었다.

A씨는 어머니는 물론 자신과 아버지까지 모두 버려지는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인생을 바친 11년의 희생이 완전히 부정당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부자는 결국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결론에 도달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뒤따르자는 계획이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는 가족의 제안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당한 것으로 여겼으며, 경제활동 및 사회복귀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됐다”고 짚었다.
아버지가 건넨 5.2m 멀티탭
2025년 3월 4일. A씨는 어머니의 숨통을 맨손으로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몸에 힘이 없던 어머니의 생명력은 모질도록 질겼다.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자 집 안에 있던 5.2m 길이 멀티탭을 가져와 목을 조였다. A씨는 법정에서 “아버지는 방 밖에 있었다” “집 안 어딘가에 멀티탭 전선이 있었던 것이지 아버지가 건넨 것은 아니다”라며 아버지를 끝까지 보호하려 했다. 자신의 존속살인 혐의는 시인하면서도 아버지의 가담만큼은 부인한 것이다. 공교롭게 범행 도구인 멀티탭에서는 A씨의 유전자정보(DNA)만 검출됐을 뿐, 아버지의 것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 검찰은 아버지가 전선 한쪽을 함께 잡아당겼다며 ‘공동 실행’을 주장했다. 법원은 아버지가 검찰 조사 당시 이를 일부 인정했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척하며 해당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A씨와 함께 살인을 모의하고 범행 도구를 조달한 ‘공동정범’이란 사실까지 뒤집을 수는 없었다. 멀티탭에서 DNA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범행 직후 동반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차를 타고 나눈 부자간의 대화가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팔당댐, 잠실한강공원 등을 헤매는 6시간 동안의 대화가 스모킹건이 됐다.
“천하의 죽일 놈이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죽였어”라는 A씨의 한탄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겐 미안하지만 같이… 죽어야지”라고 답했다. 이어 “난 아빠가 동의 안 할 줄 알았어. 엄마 죽이는 것을”이란 A씨 말에서 사전 범행 동의 사실도 드러났다. 아버지가 “수면제를 먹였는데… 수면제 안 줬으면 큰일 날 뻔했어”라며 범행에 조력한 정황도 확인됐다.
누나의 눈물과 남겨진 자들
부자는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비극적인 생존이었다. A씨에게는 존속살해 및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가, 아버지에게는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재판 과정에서 누나는 눈물로 채운 탄원서를 제출했다.
“10년 동안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다 동생의 영혼이 괴물이 되었습니다. 제발 저희 가족을 선처해 주십시오.”
재판부는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참작해 A씨에게 징역 7년, 아버지에게 징역 3년이라는 법정 최소 수준의 형량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10년 이상 거동이 힘든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피며 큰 희생을 감내해 왔다”며 “피해자가 요양원 입소를 완강히 거부하자 이에 따른 극심한 좌절감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요양원에 가느니 죽여달라’는 어머니의 말이 살해 촉탁에 해당한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들은 피해자의 살해 촉탁이나 승낙을 전제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살해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살인은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로서 결과가 참혹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를 회복할 수 없으므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지난달 20일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법정마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간병 잔혹사’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유죄가 확정된 간병살인 228건을 분석한 ‘간병살인의 실태와 특성 분석’에 따르면, 범행의 75.8%는 가족의 지지 없는 이른바 ‘독박 간병’이 원인이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36건이던 간병살인 선고는, 최근 6년(2018~2023년) 사이 113건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형기를 모두 채우면 아흔이 되는 아버지가 범행 직후 자살을 마음먹으며 나직하게 읊조린 말은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엄마가 더 (병을) 앓으면 더 힘들어… 기저귀도 제대로 안 갈아주고 그러는 데를 어떻게 보내냐. 엄마 힘들어.”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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