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나가 데려오는 세계, 당신의 글이 달라집니다

한낮을 뜨겁게 달구던 볕이 사그라들고 선선한 바람이 거리를 맴도는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초여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어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얼마 전 첫 시집 ‘미래 아이 뜀틀’(문학과지성사 펴냄, 2026)을 쓴 구윤재 시인의 북토크였습니다. 시집을 재밌게 읽었거든요.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시는 책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이름들이 귀로 들을 때는 훨씬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름을 붙이면 해상도가 높아진다
낭독 중간중간 시인과의 이야기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 시집을 묶을 때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시에 등장하는 이름에 관한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미래 아이 뜀틀’에는 은수, 지민, 수연, 나나, 승희, 성우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거든요. 시인은 이름을 쓰는 이유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름을 붙이면 해상도가 높아져요. 해상도를 높이는 명명을 함으로써 살아보지 않은 삶, 가보지 않은 장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제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 대답을 듣자마자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에요. 해상도는 이미지의 선명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해상도가 낮으면 대략적인 형태만 보이고, 높아지면 머리카락 한 올, 눈가 주름, 입술 끝이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까지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해상도가 낮은 카메라를 선호합니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거든요. 너무 선명하면 보지 않아도 될 것까지 자꾸 보여서 말입니다. 그런데 글은 좀 다릅니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찍지만, 글은 선명하게 볼수록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생겨납니다. 이름이 붙는 순간 인물은 ‘누군가’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 존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생각할 수 있는 단서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가 ‘유빈이’가 되는 순간
이름이 없는 문장과 이름이 있는 문장은 어떻게 다를까요. ‘그는 숲에서 걸어 나왔다’와 ‘유빈이가 숲에서 걸어 나왔다’를 나란히 놓고 읽어봅시다. 같은 말 같기도 한데요. ‘그’를 읽을 때는 숲에서 걸어 나오는 실루엣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유빈이’가 되는 순간 카메라의 줌으로 당깁니다. 유빈이는 왜 숲에 있었을까요, 버섯을 따러 간 걸까요, 길을 잃은 걸까요. ‘그’일 때는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유빈이’에게는 묻습니다. 이름 하나가 붙었을 뿐인데 질문이 늘어나고, 상상이 시작됩니다.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인물에게 이끌리기 시작하거든요. 지수라는 이름을 적고 나면 지수는 어떤 골목에 사는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잠이 오지 않을 땐 어떤 행동을 하는지 같은 것이 궁금해집니다. 작가가 인물을 만드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름이 작가를 안내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당연하게도 이름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의 조건은 아닙니다. 이름을 꺼내놓지 않아도 좋은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요. 이름을 쓰지 않아야 완성되는 글도 있지요. 다만 글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 이름은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거기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까요.
이름은 글 밖에서도 작동합니다. 2025년 기후 시 앤솔러지 ‘여름, 연루’(빠마 펴냄)를 준비하며 시인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습지에 간 적이 있습니다. 화성습지는 멸종위기종 철새들이 이동하는 경로에 있는 곳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입니다. 그런데 생태복원이라는 명목으로 비식생 습지를 염습지로 전환하는, ‘말뚝 벽’을 세우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도요새들의 쉼터가 훼손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장을 찾았지요.

보이지 않던 훼손과 맴돎이 보인다
막상 습지에 도착했을 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새들이었습니다. ‘그냥 새들’이었어요. 아름다웠지만 그저 바닷가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지요. 탐조를 하며 중부리도요,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저어새를 보고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비슷해 보이던 새들이 서로 다른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리와 깃털의 색이 눈에 들어왔고, 다른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들이 좀처럼 착지하지 못한 채 하늘을 맴돌고 있다는 것도 그제야 보였습니다. 공사로 인해 쉼터가 사라진 탓이었습니다.
이름을 모르던 때였다면 새들이 하염없이 날고 있구나 하고 지나쳤을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자 그 맴돎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일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풍경이 사건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루된 것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가장 작은 형태의 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양꼬치집 이름이 ‘봉화양꼬치’인데요. 일하는 곳 근처에 있기도 하고 사장님이 푸근하고 서비스도 좋아 자주 찾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사장님 이름이 ‘봉화’여서 가게 이름이 봉화양꼬치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가게 간판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사장님 얼굴이 함께 떠오릅니다. 이름을 알기 전과 후, 세계는 같은 세계지만 관계가 조금 달라진 것이지요.
구윤재 시인이 시 속 인물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도, 제가 도요새들의 이름을 외운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낯선 것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혹은 이미 가까이 있지만 제대로 본 적 없는 것을 비로소 바라보려는 태도 같은 것 말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세계를 향해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그 손을 잡을지 말지는 세계가 결정하겠지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름은 가장 작은 관심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라면 이름 하나를 적어보면 어떨까요. 굳이 실명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어낸 이름이어도 괜찮아요. 이름을 짓다보면 의외의 질문이 따라오는데요. 왜 하필 유빈인지, 왜 경숙이가 아니라 민서인지 이런 질문들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름에는 시대와 취향, 분위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에요.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나이나 성격, 살아온 환경까지 함께 떠오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빈이는 젤리를 좋아할 것 같고, 경숙이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갈 것 같고, 민서는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을 탈 것 같은 식입니다. 물론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때때로 그런 편견과 상상에서 출발합니다. 이 편견을 깨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경숙이가 ‘영크크’를 외치며 릴스를 찍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름 하나를 붙이는 순간 인물은 조금씩 자기 삶을 갖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문장이 그 이름 뒤에서 따라 나올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글을 쓰러 가봅시다.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독자 글
지난 연재에서 연과 행에 집중해 시를 써보자는 과제를 드렸습니다. 보내주신 시를 읽으며 반가웠던 것은 많은 분이 행갈이를 줄바꿈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멈출지, 무엇을 조금 더 오래 보게 할지 고민한 흔적이 작품마다 보였습니다. 같은 문장도 연과 행이 달라지면 읽는 속도가 달라지고, 강조되는 단어도 달라집니다. 직접 시를 고치며 그 차이를 느껴보셨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행갈이는 호흡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시를 쓴 후 북토크를 연다고 생각하고 소리 내 읽어보세요. 나는 어떤 단어 앞에서 멈추고 싶은지, 독자가 어떤 장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할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품들을 읽으며 연과 행이 의미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함께 생각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성호님은 연과 행이 의미를 어떻게 바꾸는지 적극적으로 실험했습니다. 유년의 기억과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을 향한 믿음을 담아내며, 연과 행의 변화를 통해 시의 리듬과 정서를 섬세하게 조절했습니다. 숙연님의 시는 행을 통해 감정이 쌓이는 속도를 조절한 작품이었습니다. 문장이 반복될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이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설명보다 경험과 기억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힘이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정선님의 시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자동차를 ‘바퀴달린 동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재밌습니다. 신호등을 ‘노랑, 빨강, 녹색의 눈깜박임’으로 표현한 부분과 앞차에 그려진 눈동자를 발견하는 장면도 좋고요. 행과 연이 문장을 나누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관찰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매일 지나치는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선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네거리에서
불을 켜고 줄지어 달려가는 바퀴달린 동물(動物)들
때론 소리 지르고 꽁무니에서 시커먼 걸 내뿜기도 한다.
그들을 소리 없이 다스리며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건
노랑, 빨강, 녹색의 눈깜박임.
문득, 저 넓은 도로에 여러 겹의 차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저 신호등 체계에 어느 날 AI가 장난을 쳐서
딸꾹질을 하게 한다면
건널목에서 이제 네가 움직일 차례라고
알려줄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히 하늘의 구름을 보고 있던 그는
얼마나 재밌어할까, 당황할까, 공포스러워질까.
고속도로에서 뒤에 오는 이의 졸음을
깨워주려고 그려 넣었다는
앞차 등짝의 두 눈동자
동그랗게 크게 뜬 눈만 있는 게 아니더만
찡긋 윙크하는 눈, 게슴츠레 한껏 졸린 두 눈에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지다
이정선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이번 달에는 시를 쓰든 에세이를 쓰든 자유입니다. 대신 글 속에 이름을 불러와보세요. 실명이어도 좋고, 지어낸 이름이어도 좋습니다. 사람 이름일 필요도 없습니다. 동물이나 식물, 가게, 골목, 오래된 물건의 이름이어도 괜찮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무엇이 달라지는지 느껴보세요. 이름 하나 때문에 새로운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야기가 따라올 수도 있습니다. 이름이 글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기다리겠습니다.
주제: 이름
분량: 에세이는 1천 자 내외, 시는 분량 제한 없음
마감: 2026년 6월14일
보낼 곳: ha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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