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할머니처럼… 이야기를 마시는 오산양조 [우리동네 ‘스페셜리티’를 찾아서·(6)]
김유훈 대표, 고향 오산 도시재생에 관심
상품 아닌 ‘문화’로서의 전통주 접근
3대째 이어온 식자재 도매업 접고 양조장
“옛날 느낀 할머니 손맛 느끼게 해주자”
주민·후배 출자자 참여, 마을기업 시작

그렇다면, 경기도는 어떨까요. 서울, 인천과 함께 수도권으로 묶인 경기도는 도심 이미지가 강해 대표적인 특산물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경기도에는 판교처럼 에너지 넘치는 도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촌과 어촌이 모두 있습니다. 당연히 31개 시·군마다 그 지역 특성에 맞는 특산물이 있는데요. 쌀, 포도, 율무 등 지역 특색에 따라 종류도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그 ‘변신’이 눈길을 끕니다. 단순 1차 생산물에 그치지 않고 특산물을 활용해 특산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동네 ‘스페셜리티’를 찾아서]는 우리가 몰랐던 경기도 지역의 특산물을 알리고, 이를 새롭게 개발·판매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경기도에는 지역마다 특색을 담은 전통주들이 있습니다. 술 하면 대중적인 소주와 맥주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은데, 전통주는 시판 술과 달리 제조 방식에 따라 다양한 향과 맛을 낼 수 있어 애주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특히 지역 특산물을 전통주에 접목시키거나, 시민들이 직접 양조장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도 눈길을 끄는데요.
우리동네 스페셜리티를 찾아서는 지역 특산물과 전통주의 만남, ‘우리 술 특집’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 중 첫 번째로 오산 세마쌀을 이용해 전통주를 빚는 오산시의 유일한 양조장, ‘오산양조’의 김유훈 대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옛날 할머니 손맛, 오산막걸리

막걸리를 두고 보통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곡물을 주재료로, 도수가 낮아 쉽게 취하지 않고 농사짓는 농부들이 새참으로 즐겨 찾던 술이기 때문이죠. 막걸리는 오랜 시간 한국인, 특히 서민들의 곁을 함께한 술입니다. 특히 과거 집에서 빚던 대표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담근 술) 중 하나인데요. 이 때문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옛날 할머니, 어머니가 빚어주던 집 막걸리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오산양조의 오산막걸리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어릴 적 시장에서 사온 누룩으로 집에서 빚어 먹던 그 맛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죠. 오산막걸리가 탄산 없는 순곡주(純穀酒, 순수한 곡물로 빚은 술)로 만들어진 이유기도 합니다.
“제가 어렷을 때 오산은 농촌이었어요. 그래서 명절만 되면 다들 시장에 나와 누룩을 사서 집에서 막걸리를 빚었어요. 양조장을 되살리자 생각하고 고민한 부분이 어차피 쌀과 누룩으로 전통주를 빚을 거면, 옛날에 느꼈던 할머니, 어머니 손맛을 느끼게 해주자 그게 시작이었어요”

오산양조는 오산의 대표 전통시장인 오색시장과 오산 창작예술촌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김유훈 대표가 나고 자란 곳이자 옛날로 치면 ‘오산의 명동’, 김유훈 대표가 할아버지부터 3대째 식자재 도매업을 하던 곳이기도 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는 나이가 들었고 생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동네가 낙후되면서 2015년쯤 도시재생사업으로 선정됐어요. 그때 담당 공무원이 전통주 전문가를 소개해줬어요. 그분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전통주를 상품으로 보지 말고 ‘문화’로 보자고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생각이면 우리 동네를 다시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고, 그렇다면 없어졌던 양조장을 복원해 도심을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보자 했죠”
그렇게 김유훈 대표는 나이 50살에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를 다시 살려보자는 결심으로, 할아버지부터 이어온 식자재 도매업을 접고 그 자리에서 오산양조를 시작한 것이죠. 주민들과 후배들이 출자자로 참여해 2016년 마을기업을 시작했고, 그 뒤로 1년 내내 술 빚는 방법을 배워 2018년 오산양조의 첫 전통주 오산막걸리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지역 농협서 공급 특산물 ‘세마쌀’ 사용
‘하얀까마귀’ ‘독산 30’ 등 스토리텔링
오색시장 장날 ‘오픈 주막’ 문화행사 개최
함께 즐기며 동네 활성화 마중물 바람
오산양조를 보면, 오산이 보인다

오산막걸리에는 오산의 특산물 ‘세마쌀’이 들어갑니다. 지역 농협을 통해 오산에서 나오는 세마쌀을 공급받아 막걸리를 빚고 있는데요. 오산양조에서 만드는 제품에는 모두 오산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김유훈 대표는 오산양조를 보면, 오산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알코올 도수 6도의 순곡주인 ‘오산막걸리’, 오산의 시조인 까마귀를 접목시킨 알코올 도수 8도의 ‘하얀 까마귀’, 오산 인근 지역의 이름을 합친 탁주의 ‘산수화(오산·수원·화성)’, 임진왜란 당시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에서 왜군을 물리쳤던 권율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만든 맑은 술의 ‘율’, 약주를 증류한 쌀 소주이자 오산을 알리기 위해 만든 ‘독산 53’, 오산의 시승격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독산 30’ 등 오산양조 제품을 소개하면 자연스레 오산시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을 만든겁니다.
“신생 양조장들을 보면 대부분 제품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전통주는 지역의 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전통주로 동네를 활성화하겠다는 결심으로 출발했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태어나 술을 빚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전통주를 만들고 소비자한테 선택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이죠. 김유훈 대표는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며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지역 내 기업과 전통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색시장 장날이 있는 주말에는 ‘오픈 주막’이라는 문화행사를 열며 지역상생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오색시장을 들러 맛있는 안주를 사오면 테이블을 제공해 오산양조의 제품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이처럼 오산양조가 오산 대표 특산품이자 관광상품으로, 동네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 김유훈 대표의 꿈이자 목표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오산양조를 중심으로 골목상권을 활성화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술이다 보니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산양조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오색시장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잖아요. 주변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왔다가 관광 차원으로 양조장을 들러 전통주도 구매해 가는, 그렇게 상생하며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어떻게 편하게 살까 하며 자신과 가족들의 앞날만 걱정하던 김유훈 대표는 오산양조를 운영하며 이제는 지역 상생을 고민합니다. 10년 전 마을기업을 시작하며 출자자로 함께한 후배들도 이제 하나 둘 정년퇴직을 하며, 오산양조에 함께하고 있는데요. 김유훈 대표는 후배들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오산양조를 성공시키겠다 다짐합니다.
“오산양조는 저한테 마지막 자존심이에요. 그동안 잘 살아왔는데 오산양조하면서 힘들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꼭 성공시켜야죠. 양조장 복원해 동네 다시 살려보자고 함께 고민했던 후배들도 이제 퇴직하고 오산양조에서 함께 일할 텐데, 그 친구들과 일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죠”
/신현정·공지영 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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