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선택권이 전부가 아니라면 [.txt]

한겨레 2026. 6. 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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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미래 의료인을 위한 책장
2019년 6월27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바버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 ‘바버라 크루거: 포에버(FOREVER)’에 그가 1989년 작업한 대표작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의 원이미지 작업이 전시되어 있다. 현대 의료에서 몸은 선택권, 책임, 제도, 돌봄이 충돌하는 ‘전쟁터’다. 지배 담론은 오랫동안 몸에 대한 선택권을 모든 것에 앞서 우선시해왔다. 그러나 만성 질환의 돌봄은 그 당연함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현대 의료나 병원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이를 고치기 위한 최우선 과제를 꼽는다면 무엇을 선정할 수 있을까요? 표현 방식은 다르겠지만, 아마 많은 분께서 “선택권”을 떠올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냥 던져보는 말은 아니고, 지금까지 제가 공부해왔던 것, 그리고 다녔던 여러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이런 장면입니다.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화를 냅니다. 설명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왜 분노의 이유가 될까요? 설명을 잘 듣고 무언가를 잘해야지만 치료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당연히 그 이유는 치료와 관련하여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존엄사와 관련한 논의는 그 자체로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지요. 연명의료를 계속 받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 더 나아가, 존엄사는 내가 예정된 죽음을 앞당겨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느냐의 질문이라는 점에서, 의료적 선택권이 가장 첨예해지는 자리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제가 전공한 의료윤리나 의료인문학을 채운 논의 또한 어떻게 하면 환자가, 심지어 의료진이 ‘외부의 압력이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그 중심에서 다뤄왔어요. 현대 의료윤리의 많은 논의도 결국 이 질문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연명의료, 임신중지, 연구 참여, 정신건강 치료, 유전 정보에 이르기까지 핵심은 “시스템이나 전문가가 아니라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선택은 여전히 중요하지요. 다분히 위에서 아래로 주어져온 한국 의료는 여전히 환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데 인색하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어려움을 느껴요. 여전히 선택은 중요하지만, 선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선택이라는 말이 환자에게 책임을 돌려보내는 무기로 작동할 때도 있지요. 잠깐, 여기서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제가 문제 삼으려는 것은 환자의 선택권 자체가 아니라,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우선,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다루는 질병의 성격이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근대 의료가 힘을 발휘해온 대표적 장면은 급성 질환과 외상, 감염병처럼 원인을 찾고 처치하고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때 선택은 중요하고,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료가 점점 더 오래 붙들고 씨름하는 문제는 당뇨병, 고혈압, 치매, 암 이후의 삶, 우울과 통증 같은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질환들입니다. 이런 질환은 “선택” 한번으로 해결되지 않지요.

돌봄의 논리 l 아네마리 몰 지음, 김로라 옮김, 갈무리(2025)

또, 환자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말이 책임 전가로 오용될 때가 많아졌어요. 의료를 시장에서의 소비와 동일시한 다음, 물건 산 사람이 골랐으면 책임지는 것과 동일하게 의료에서도 “선택”한 환자가 책임을 다 진다는 식인 거예요.

이런 선택들이 21세기, 우리가 마주한 의료를 설명하기엔 불충분하다고 전 생각해요. 선택권은 환자를 침묵에서 구하는 데 필요합니다. 하지만 질병과 함께 사는 일은 선택의 순간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지요.

다행히, 이 지점을 잘 풀어서 설명해준 책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의료인류학자 아네마리 몰이 저술한 ‘돌봄의 논리’라는 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돌봄은 병든 몸과 생활을 계속 맞추어 가는 의료의 실천입니다. 즉, 이 책은 제가 한참 설명한 “선택의 논리”가 더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살펴봅니다.

몰이 오래 들여다본 것은 당뇨병인데요. 인슐린의 발견 전 죽음의 병이었던 당뇨병은 이제 관리의 영역으로 바뀌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염이나 외상처럼 “완치”될 수는 없습니다.

몰은 이런 병에선 선택의 순간보다 선택 이후의 시간이 훨씬 길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당뇨병 환자는 치료법을 한번 고르고 끝내지 않습니다. 혈당을 재고, 먹은 것을 떠올리고, 약의 종류와 복용 방식을 바꾸고, 몸의 반응을 살피고, 실패하면 다시 맞춥니다. 이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실험이고, 훈련이며, 조정입니다.

이런 차이는 병 자체가 개인의 삶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데에서 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치료를 받을까 말까 고민할 때, 병 자체는 그대로 있다는 숨은 가정을 두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성 질환에선 몸도, 생활도, 병도, 치료도 그때그때 달라지지요. 환자는 그 변화 속에서 삶과 치료를 계속 맞추어 가야 합니다.

즉, 급성 질병 앞 의료는 의료진이 선택지를 만들고 환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게 당연했어요. 하지만 만성 질환에선 환자가 어떻게 삶의 방식과 양식, 장소와 시간을 결정할지, 그리고 그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선택보다 매 순간의 대응과 조정, 변화의 양식을 같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인식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여전히 급성 질병의 방식으로 의료의 모든 문제를 봅니다. 그리고 현실과 관념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지요. 삶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예요. 연명의료를 할지 말지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실제 말기 돌봄에서는 남은 시간을 어디서, 누구와, 어떤 고통을 줄이며 보낼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지요.

사실 이것은 꼭 일반인의 문제는 아니에요. 전문가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몸담은 의료윤리나 의료인문학 영역의 연구자들도 과거의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함께 견딜 것인지는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의 질문은 자꾸 어긋납니다.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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