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비행기 대신 느릿한 크루즈 여행 떠난 중년이 말하는 여행 [여책저책]
누구나 인생의 전환기인 중년을 맞이할 테죠. 누구보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오던 자신에게 느릿한 여유가 있는 여행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요. 화려한 명소를 소비하는 관광 대신, 스스로 선택한 고요 속에서 하루의 밀도를 채워가는 방식으로 말이죠.

정찬수 | 북베이크

이러한 관광의 피로감은 역설적으로 가장 느린 이동 수단을 통해 여행의 속도와 삶의 밀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책으로 탄생했다. 현직 법조인이자 오랜 시간 여행과 사진, 와인을 기록해 온 정찬수 변호사가 책 ‘생애 한 번쯤은, 지중해 위를 걷다’를 썼다. 그는 서부 지중해의 푸른 물결 위에서 길어 올린 인생 후반전을 향한 나직하고 단단한 사색의 기록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이탈리아 로마를 시작으로 시칠리아, 스페인 바르셀로나‧마르세유, 그리고 몰타와 제노바 등 서부 지중해의 유서 깊은 항구 도시들을 순환하는 크루즈 여행을 이 책의 무대로 삼았다. 그러나 이 책은 흔한 크루즈 여행의 화려함을 찬양하거나 기항지의 이국적인 풍경을 다루는 관광 가이드북이 아니다.

책의 서사는 법조인 특유의 치밀한 관찰력과 여행자의 유연한 감성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독특한 결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서두르지 않고 하루를 깊이 있게 채워가는 방식을 통해 그동안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온 이들에게 ‘머무는 여행’의 진짜 가치를 일깨워준다.
더 많은 곳을 빠르게 지나치는 전반전의 삶이 지나갔다면, 인생의 후반부에는 하루를 얼마나 밀도 있게 보낼 것인가가 더 중요한 화두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60세 이후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묵직한 공감대를 선사한다. 직선의 속도전을 멈추고 곡선의 유랑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새로운 주파수가 켜진다면서 말이다.

책은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차리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익숙한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살아있다는 감각을 다시금 깨우고 싶다면, 이 책이 건네는 지중해의 느린 시간에 주파수를 맞추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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