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미만으로 나눠 쓴 육아휴직…“기간 합산해 급여 신청 가능” [이인혁의 판례 읽기]
[법알못 판례 읽기]

육아휴직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1987년이다. 처음엔 여성이 대상이었다. 1995년부턴 남성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됐다. 2001년부턴 육아휴직자들에게 휴직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육아휴직 대상과 혜택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육아휴직 제도가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긴 힘들다. 휴직급여 지급 자격 등을 둘러싼 분쟁이 여전히 적지 않게 일어난다. 최근 육아휴직을 한 달 미만으로 나눠 썼을 때 전체 휴직 기간을 합해 30일째 되는 날을 휴직급여 신청 기준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강우찬)는 지난 5월 28일 A 씨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육아휴직급여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쪼개기 휴직’에 들어가는 직장인이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는 평가다.
21일 육아휴직 후 2차 휴직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사기업에 다니는 A 씨는 둘째 양육을 위해 2024년 3월 25일부터 같은 해 4월 14일까지 21일간 첫 육아휴직(1차 육아휴직)을 썼다.
이후 2024년 9월 1일부터 다음 해 8월 10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두 번째 휴직(2차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즉 육아휴직을 분할해 사용한 것이다.
참고로 고용보험법에 따라 휴직 기간이 30일 이상이면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A 씨는 2차 육아휴직 중이던 2024년 10월 18일과 2025년 6월 2일, 같은 해 6월 1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2차 육아휴직에 대한 급여를 신청했다. 그리고 이를 지급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2025년 5월 18일에 불거졌다. A 씨는 이날 앞선 1차 육아휴직 부분에 대한 급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고용노동청이 이를 불허한 것이다. 고용노동청은 “육아휴직 종료일 이후 12개월 이후 신청했다”는 사유를 댔다.
고용노동청의 계산은 이랬다. A 씨의 1차 육아휴직은 2024년 4월 14일에 종료됐다. 그런데 A 씨는 2025년 5월 18일에서야 신청했다. 1년이 이미 지났다. 제척기간 경과로 A 씨의 1차 휴직분 급여는 소멸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A 씨의 생각은 달랐다. A 씨는 이에 대해 “제1차 육아휴직에 대한 휴직급여를 수령할 권리는 1차와 2차 휴직을 합해 30일 이상 됐을 때부터 봐야 한다”고 맞섰다. A 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A 씨의 1차 휴직 기간은 21일에 불과했다. 30일 미만이었다.
따라서 1차 휴직 종료일 기준 A 씨에겐 휴직급여 신청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2024년 9월 1일 A 씨가 2차 휴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2024년 9월 10일께 1·2차 휴직 기간을 합해 ‘30일 조건’을 충족하게 됐다.
30일 조건을 충족하게 된 시점(2024년 9월)과 A 씨가 실제 휴직급여를 신청한 시점(2025년 5월) 사이 기간은 1년 이내다. A 씨는 “제척기간을 준수해 급여를 신청했다”고 주장했다.
5년 전 우려가 현실로
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의 1차 육아휴직 기간 만료일 기준으로, A 씨는 육아휴직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실체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이 기간 휴직급여에 대한 급부청구권은 2차 육아휴직이 시작돼 합산 기간이 30일이 된 때 비로소 발생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권리가 발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척기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 권리가 소멸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앞서 “육아휴직은 한 번의 신청에 따라 휴직이 허용되면 허용 기간 전체에 대해 육아휴직을 실시할 수 있는 ‘하나의 권리’가 성립한다”며 “육아휴직 실시를 지급요건으로 하는 육아휴직급여 청구권 역시 허용된 육아휴직 기간 전체에 대해 하나의 권리가 발생한다고 볼 것이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과 이번 재판부의 판단을 종합하면, A 씨의 경우 1·2차 육아휴직을 합쳐 30일이 경과한 날에 1차와 2차 휴직을 합산한 기간 전부에 관해 하나의 급부청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원고가 이후에 2차 육아휴직에 대해 휴직급여를 신청한 이상 2차 휴직은 물론 그 기간의 일부와 함께 발생한 1차 육아휴직 기간에 관하여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급부청구권이 행사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냈다.
이 사건은 공교롭게도 2021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안철상 대법관이 언급한 가상의 사례가 진짜 사례가 된 사안이기도 하다.
당시 안 대법관은 “육아휴직급여 신청 기간의 기산일이 ‘육아휴직이 끝난 날’인데 육아휴직 분할제도, 유아기 근로 시간 단축급여제도가 도입된 이후엔 ‘끝난 날’이 일정하지 않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에 대한 예의 없음 느껴져”
이번 판단에서 재판부가 고용노동청을 질타한 대목도 있어 눈에 띈다. 피고는 “A 씨는 30일 미만의 육아휴직에 대해서도 휴직급여를 ‘신청할 권리’를 갖고 있었고 이를 신청하는 행위 자체는 가능했다”며 “(그런데 A 씨가 신청을 하지 않았으므로) 1차 육아휴직 기간 만료일부터 제척기간이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거절될 신청이라도 미리 해두어 거절이라도 받아두지 않는다면 향후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지극히 형식 논리적인 주장”이라며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 없음’마저 느껴지게 한다”고 비판했다.
A 씨가 휴직급여를 받을 실체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휴직급여를 신청할 권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행정청이 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실체적 기준과 국민이 그 급여에 대한 신청권을 갖는 기준은 원칙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며 “국민이 아직 갖지 못한 미완의 권리에 대해서까지 일단 신청행위를 해둬야 할 것을 당연히 전제하거나 기대하고 그에 따라 제척기간 경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의 대전제를 허무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돋보기]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 추진 후 첫 모성보호 사건
이번 판결은 서울행정법원이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을 추진한 뒤 처음 선고되는 ‘모성보호’ 사건으로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사건 쟁점의 알기 쉬운 정리’란 제목의 그림 자료를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전국 유일의 행정 전문법원이다. 올해 초부턴 ‘원고 친화성 원칙’이 주요 특징인 독일의 사회법원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난 2월 산업재해 사건 전담재판부의 명칭을 사회보장 사건 전담재판부로 바꿨다.
그러면서 장애 관련 사건, 공공부조에 관한 사건, 육아휴직 급여 관련 항고소송, 사회보장급여 수급권 인정 거부·중지·변경 등에 관한 소송 등을 사회보장 전담 합의부 담당 사건으로 명시했다.
이 사건은 서울행정법원이 사회법원 시스템을 추진한 뒤 전문합의부에서 선고된 첫 모성보호 사건이었다. 서울행정법원이 사실관계와 쟁점을 파악하기 쉽도록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생성한 그림과 도표를 판결문에 첨부한 것도 눈에 띈다.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의회민주주의에서 법률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공지적 기능’”이라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국민들의 알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도록 판결의 쟁점과 요지가 보다 알기 쉽게 전달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보를 이어온 판사들이 포진해 있다. 정선재 법원장은 2009~2010년 사법연수원 기획총괄 교수로 재직할 당시 국내 첫 시각장애인 법관이던 최영 판사의 사법연수원 입소 준비를 총괄했다.
이번 사건의 재판장인 강우찬 수석부장판사는 2022년에 국내 최초로 ‘이지 리드’ 판결문을 작성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3월엔 사회보장법 연구회를 창설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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