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갚아도 나라가 빚 없애줘?”…개인회생 청년을 위한 변명 [Book]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카드 대출 관련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07/mk/20260607060605845xrvg.jpg)
저자에 따르면 이들의 빚은 탐욕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 덫의 산물이다. 학자금대출을 짊어진 채 사회에 나온 대졸 초년생들은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주거비와 원리금 상환에 쏟아붓는다. 최근 몇 년간 급증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70%는 2030세대다.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은 당장의 급전을 구하려다 대포통장 명의 대여라는 위험한 선택지로 내몰리고, 그 결과 사기 피해자에서 보이스피싱 피의자가 되는 악순환에 갇힌다. 저자는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청년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신간 ‘청년 파산’은 박기태 변호사의 현장 기록이자 정책 제언집이다. 12년째 회생·파산, 금융 범죄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그는 대학 시절부터 15년간 노숙인 지원 봉사를 이어오며 감당 불가능한 부채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지켜봤다. 최근 상담실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가 급격히 낮아지는 현실 속에서 그는 청년 부채 문제를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구조적 재난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속 판결을 빌려 회생 제도의 법적 근거를 설명한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계약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베어가겠다고 주장하지만, 재판관 포셔는 “계약서에 피는 쓰여 있지 않으니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선 안 된다”고 판결한다.
이 판결은 현대 도산법이 보장하는 최저생계비 보장과 압류 금지의 정신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회수할 권리는 인정되지만, 그 과정에서 채무자의 생명과 최소한의 생존권까지 박탈하는 ‘피의 추심’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의 생존권은 계약서상의 숫자보다 항상 우위에 있으며, 이것이 국가가 사적 계약에 개입해 채무자를 구제하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저자는 회생·파산을 시혜나 특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로 규정한다. 도산법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상태를 법적으로 확인하고 종결하는 절차라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털어내고 이들을 정상적인 경제활동 인구로 복귀시키는 것이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저자는 경제학적 맥락을 짚으며 논리를 확장한다. 금융기관에 내는 대출 이자의 본질은 일부의 파산 위험을 미리 반영한 ‘리스크 프리미엄(위험 대가)’이다. 금융기관은 대출 실행 시 이미 일정 비율의 채무자가 파산할 것을 통계적으로 예상하고, 그 손실액을 이자에 미리 반영해 거둬들인다. 채무자는 ‘파산의 값’을 보험료 형태로 미리 낸 셈이다. 저자는 부실 대출의 책임이 채무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금융기관도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빚에 짓눌려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진짜 책임은 법적 절차를 통해 부채의 사슬을 끊고, 다시 당당한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복귀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9가지 정책 처방전을 제시한다. 불법 브로커 퇴출을 위한 ‘클린 바우처 제도’, 추심의 공포를 즉각 차단하는 ‘48시간 임시중지 제도’, 법원별 고무줄 판결을 막는 ‘전국 법원 표준 실무준칙 법제화’, 금융기관에도 대출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 등이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을 평생 낙인찍는 사회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사회. 저자는 청년 파산 문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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