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주목하기 시작한 ‘李 대통령 공소 취소’
WSJ, 대북송금 재판 무력화·민주주의 우려
“권력 집중되면 사실상 일당 국가 될 수도”
87년 민주화 후 韓 민주주의 후퇴 여부 주목
청와대, “심각한 왜곡” 이라며 이례적인 반박
“한국은 세계서 가장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

미국 보수 진영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를 포함한 민주주의 훼손 논란과 대미 외교 정책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위원과 로런스 펙 북한자유연합(NKFC) 고문의 공동 기고문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칼럼의 제목은 ‘한국, 미국에 등 돌리며 급격히 좌경화(South Korea Takes a Hard Left Turn Against America)’였습니다. 부제는 더욱 직설적입니다. “서울의 과격한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무기한 집권을 가능케 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The radicals in charge in Seoul are pushing constitutional revisions to permit their own indefinite rule)”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뿐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 처리 방식까지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특히 이 대통령이 관련된 대북 송금 사건 재판을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움직임과 장기 집권 가능성을 연결시켜 비판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이 문제는 국내에서도 6·3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부담을 주는 이슈가 됐는데, 이제 미국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난 3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공화당 대럴 아이사 의원(공화·캘리포니아)은 이 칼럼을 회의 기록에 남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청와대가 WSJ에 요구, 최성아 해외 언론 비서관 명의로 반론 칼럼을 기고한 것은 역설적으로 문제의 칼럼이 미국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에버스타트는 누구인가
WSJ 기고문의 필자 중 에버스타트는 미국에 제법 알려진 보수 성향의 한반도 전문가입니다. 하버드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모두 취득한 그는 수십 년째 미국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 왔습니다. 현재는 AEI에서 헨리 웬트 정치경제학 석좌(Henry Wendt Chair in Political Economy)를 맡고 있는데, 필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2007년 가장 먼저 만난 미국 학자 중 한 명입니다.
당시 워싱턴 DC에 체류 중이던 고(故) 현홍주 전 주미 대사는 미국 사회 주류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에버스타트의 분석을 자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그를 소개해 줬습니다.
에버스타트는 오랫동안 북한 문제와 한국의 대북 정책을 연구해 왔는데 진보 정권의 대북 접근법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이 평화 공세를 펼칠 때마다 한국 사회가 반복적으로 이에 휘말리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껑충한 키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남북 관계를 설명하며 고개를 젓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몇 차례 에버스타트의 글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뉴욕타임스 아시아판에 실린 ‘North Korea Plays the South Again’이라는 칼럼입니다. 이 제목은 “북한이 또 한국을 갖고 논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당시 남북 관계를 ‘윈윈 게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이기고 한국은 지는 게임으로 규정했습니다. “북한이 ‘점프’라고 말하면 한국은 ‘얼마나 높이 뛰면 되느냐’고 묻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2018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평화를 언급하자 문재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호응하며 ‘낮은 자세’로 임했습니다. 당시 첫 남북 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은 “북한 신년사를 거의 옮겨 적은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로런스 펙은 미국의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자유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 고문으로 활동 중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로욜라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 후 북한 인권과 한미동맹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해 왔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예측 가능한 한국 좌파 정부”
에버스타트와 펙, 두 필자는 이번 기고문에서 현재 한미관계가 직면한 위협을 두 가지로 규정했습니다. 하나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는 예측 가능한 한국의 강경 좌파 정부라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행정부와 씨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의 강경 좌파 정부가 보여주는 예측 가능한 무모함과도 맞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이고 때로는 동맹국을 일방적으로 대하는 접근 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맹의 다른 한 축인 한국 정부 역시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들은 특히 한국 정치권과 언론이 민주당을 ‘리버럴(Liberal)’로 부르는 것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습니다. “한국 언론과 외신 기자들은 흔히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을 자유주의 세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보수로 분류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강경 좌파 지도자들은 사실상 자유주의 자체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이 대통령 공소 취소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특검을 통해 대북 송금 사건 등 이재명 대통령 관련 공소를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합니다. 이 칼럼은 “이 대통령은 대선 승리 전 북한으로 800만 달러를 불법 송금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며 “이 대통령은 앞으로도 이 사건으로 법정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칼럼이 전망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입니다. 플랜 A는 현재 국회에서 추진되는 입법을 통해 사실상 사건 자체를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플랜 B는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단임 대통령제를 언급하며 “이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했고 현재는 개헌선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2028년 총선에서 이를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법률과 제도를 활용한 정치적 공세(lawfare)가 뒤따를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일당 국가’ 우려까지 제기
이 칼럼은 더 나아가 민주당이 추진하는 각종 제도 개혁 논의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헌법을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추가 개혁 방안도 거론해 왔다”며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민주당의 권력 장악을 더욱 공고히 하고 사실상 한국을 일당 국가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경고입니다.
이 칼럼에서 주목할 부분은 미국 보수층 내부에 누적되고 있는 이재명 정권에 대한 불만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민주당이 통치하는 한국에서 미국은 한미동맹에 공감하지 않는 동맹국과 상대하고 있다. 이 정부는 미국의 안보 구상에 더 많이 협력하기보다 오히려 협력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여러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받으려는 움직임을 비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이란 전쟁 국면에서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방어 작전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았습니다.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한 발언 역시 비판 대상이 됐습니다. “한국의 한 장관은 북한 핵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기밀 정보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미국이 서울에 공유한 정보를 사실상 평양에 알려주는 결과를 낳았다” 고 함으로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직격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를 ‘강경 좌파’로 부르며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비판을 담은 이 칼럼에 대해 “심각한 왜곡”이라면서 반발했습니다. 청와대의 최성아 해외언론비서관은 5일 문제의 칼럼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 비서관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로, 우리의 제도는 헌법과 법치주의,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는 민주주의 쇠퇴의 신호가 아니라 민주적 회복력의 원천이자 자신감 있고 개방적 사회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또, “팩트 또한 실제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며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해왔다”며 “안보와 경제 회복, 첨단기술·전략산업 등에서 협력을 넓혀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양국 간 이니셔티브는 전략 노선 변경 신호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양국 협력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고도 했습니다.
미국 보수층의 불만 누적돼
WSJ에 실린 에버스타트 연구위원 등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한미관계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쿠팡 사건에 대한 평가나 일부 국내 현안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경제연구원(KEI) 주최 세미나에서 이 칼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청와대의 반박 성명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닙니다. 청와대가 이례적인 반박 칼럼을 게재함으로써 오히려 논란을 키운 측면도 있습니다.
한미동맹 부분을 논외로 한다면, 에버스타트 연구위원 등이 쓴 칼럼의 의미는 미국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 처리 방식, 민주주의 운영 체제 재편 시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대미 정책을 둘러싸고 미국 보수 진영의 비판을 받은 적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운영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이 어렵게 성취한 민주화의 바탕 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민주주의 운영 방식과 법 제도를 활용한 장기 집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미국 보수 진영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공소 취소 논란과 개헌 문제가 이제 단순한 국내 정치 쟁점을 넘어 한미 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향후 이러한 시각이 미국 공화당과 정책 커뮤니티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은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을 제외한 지방 권력을 사실상 모두 장악함으로써 그 힘이 더 커졌습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단념하고 여당은 ‘민주적으로’ 국회를 이끌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돼야 할 때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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