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꼬시러 왔냐고? 그래, 그럼 어떻다는 건가"...야구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
20-30 여성팬 유입이 가장 큰 원동력
팬 사이 진입장벽 높여 신규 여성팬 혐오하는 문화가 진짜 프로야구의 적

(MHN 정철우 기자) 얼마 전 야구를 좋아하는 딸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딸의 친구가 야구장에 갔다가 술 취한 아저씨들에게 욕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소란을 부리지도 않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늘 그랬던 것 처럼 응원가를 따로 부르며 야구를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이유는 황당했다. 화장이 짙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그 취객은 딸의 친구에게 "야구장에 웬 화장을 그리 두껍게 하고 왔느냐. 선수들한테 꼬리치려고 하는 거 아니냐. 너희 같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유혹이 되는 것"이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한국야구의 적은 두꺼운 화장을 한 여성 팬이 아니라 바로 큰 소리를 쳤던 그 취객들이다.
한국 프로야구에 여성팬이 대거 유입된 첫 시기는 2008년 무렵이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전체적으로 야구 붐이 일어났다.
당시 KBO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던 고 하일성 총장은 "9경기가 지상파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가 됐다. 야구를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야구팬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야구와는 거리가 멀었던 20-30 여성층이 유입된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불었던 야구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후 한동안 관중 정체기를 겪어야 했다.

야구는 복잡한 규칙으로 짜여진 스포츠다. 제대로 접근해 알고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처음부터 야구 룰이나 야구의 흐름을 읽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충분히 익히고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그 시간 동안 야구에 질리지 않고 야구에 계속 머물게 하려면 야구의 오락적인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도 즐겨가며 야구장을 꾸준히 찾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1000만 관중을 넘어선 프로야구는 이제 1300만 관중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중 적지 않은 지분은 20-30 여성들에게 있다. 그들은 야구를 소비하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었다.
시끄러운 응원 도구 대신 스케치북이 등장했고 응원가 떼창은 야구를 즐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야구를 좋아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잘 생기고 젊은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반해 야구에 빠져들 수도 있다. 야구를 연애감정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게 어떻다는건가. 선수 얼굴보고 팬이 됐건 연애 감정을 느끼건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꼭 야구를 많이 알고 깊은 공부를 하는 팬만 진짜 팬이 아니다. 야구장은 어떤 방식으로 야구에 접근했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생생한 현장이어야 한다. 모두가 어우러져 맘껏 소리치고 즐기는 커다란 노래방이 돼야 하나.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불렸던 2000년 대 후반 사직 구장은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핫한 곳이 됐다. 모든 야구 팬이 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만들어 낸 문화였다.
야구가 소비되면 소비될 수록 구단 재정은 나아지게 돼 있다. 아직은 모기업의 도움 없이는 운영이 어렵지만 점차 흑자 구단으로 가능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20-30 여성이 자리잡고 있다.
야구를 많이 아는 팬들일수록 보다 친절해 질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야구를 접하는 신규 팬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이 돼 주어야 한다.
의도가 무엇이건 야구 팬은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하다. 그들의 열성에 더해져 우리는 야구장이라는, 매우 합리적인 가격과 쾌적한 환경을 갖춘 놀이터를 갖게 됐다. 이제 야구장은 뭔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승/패를 떠나 진정으로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야구 시장은 더 크고 넓게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의 작은 성공에 만족하고 분열을 조장한다면 한국 야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구장은 지금보다 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 아직은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야구 아는 척이나 하며 신규 팬들을 배척하는 이들은 한국 야구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야구 좀 안다고 거들먹 거리며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적이다. 무엇이 한국 야구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 하겠다.
Copyright © MH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G 엔트리 유일한 확정 선수, 누구도 김도영에게 고개를 가로 젓지 못한다
- 최형우에게서 '국민 타자'의 향기가 났다...전설들의 겸손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
- KIA 아데를린 재계약 유력? NO! 카스트로의 반격이 시작됐다
- 한 방이면 충분했다…강민호 결승포+리드 "김호령 삼진이 가장 짜릿"
- 초구로만 ‘쾅! 쾅!’ 환상적이었던 노시환의 밤 “시원하게 뒤집었네요”
- “제가 얘기할 게 있을까요?” 나이 잊은 다승 1위, 코리안몬스터를 향한 감탄사
- 화이트 장기 부상에 결국 결단…SSG, 150km 우완 해치 영입
- AG 대표팀 무혈입성? 키움 1라운드 포수에게 필요한 반성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