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세상만사 <51>] 파운드화의 몰락과 GDP 100% 부채, 영국 정치가 흔들린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 전문위원 2026. 6. 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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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치권은 자당의 공약을 달성할 수 없는 구조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어서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상황은 똑같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영국은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국가로 여겨져 왔다. 입헌군주제와 내각책임제라는 정치체제로 작동하는 영국 정치는 지난 100년간 안정적인 양당제 시스템으로 운영돼 왔다.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영국은 비례대표 없는 소선구제로 운영돼 왔다. 이런 선거 시스템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제를 떠받쳐왔다. 수시로 의회가 해산되고 합종연횡에 따라 다수당이 결정되는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영국 정치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책임 있는 여당과 야당의 협력과 견제로 운영되는 양당제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국가가 영국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현재 영국의 집권 여당은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다. 2024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노동당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당 내부적으로 스타머 총리에 대한 사퇴 압력이 커지고 있다. 스타머 총리로는 다가오는총선을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스타머 총리는 사임 압박을 거부하면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총리 자리를 둘러싼 당내 권력 다툼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준영 - 법무법인 율촌 수석 전문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아웃사이더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노동당 내부적으로는 맨체스터 시장 앤디 번햄이 가장 유력한 차기 후보로 꼽히고 있다.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번햄은 노동당 당원 여론조사에서 40%가 넘는 당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9월 노동당 연례 총회에서 투표가 이뤄진다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내각제 국가 특성상 현역 의원만 총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번햄은 조만간 치러질 보궐선거에 출마해 의회 진출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56세의 정치인인 번햄은 과거 토니 블레어 및 고든 브라운이 이끌던 노동당 전성기 시절 재무부 차관 및 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노동당 권력 핵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민영화와 비용 효율을 강조하던 번햄은 2010년 노동당이 패배하면서 야당이 되자, 점차 좌파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7년 맨체스터 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세 차례 선거에서 모두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번햄은 애초의 아웃사이더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정치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번햄 시장의 인기는 맨체스터 광역 버스에 대한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시장 취임 이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광역 버스를 민영화한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를 공공 소유로 전환함으로써 번햄은 노선과 요금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새로운 노선 발굴, 신규 차량 도입 및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병행하면서 정시 운행률을 높이자, 시민의 이용도가 증가하면서 수익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과거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 및 대중교통 환승제 도입으로 대권 주자로서 이미지를 굳힌 것과 유사한 상황에 있다는 점은 흥미롭게 느껴진다. 번햄은 현재 영국이 처해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규제 완화, 민영화, 긴축정책 그리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네 가지를 가장 큰 원인으로 규정하고 만약 자기가 총리에 취임한다면 이를 바꿔놓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GDP 100% 돌파한 영국 부채

최근 영국 정치권에선 자당의 공약을 달성할 수 없는 구조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어서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상황은 똑같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적자를 메우고 있는데 최근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를 넘어서면서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보다 지출을 늘려 적자를 확대하는 정책이나 정치인의 발언이 등장할 때마다 국채 투매가 이뤄지면서 차입 비용이 증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때 G7(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정치·경제 환경을 자랑하면서 투자자의 피난처로 자랑하던 영국의 상황이 2000년 이후 급변했다. 영국 정부의 공공 부채는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30% 미만의 아주 건전한 상태였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현재 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서고 있다. 연간 국채 이자만 GDP의 4%에 육박하면서 전체 정부 지출 가운데 국채 이자 지급 비용은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에 해당하는 국민보건서비스(NHS) 지출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영국 국채 25% 이상이 물가연동제여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프랑스(10%), 미국(7%), 독일(3%)에 비해 월등히 높은 물가연동제 국채 비중은 투자자의 낮은 신뢰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유로화 동맹에 밀린 파운드화

영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부채 비중이 높은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문제는 영국보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부채가 더 많지만, 국채 금리는 영국이 1%포인트 이상 높다는 데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유로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축통화인 유로화의 구성원이라는 이점을 누리고 있다. 자체적인 체력과 더불어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 여부 및 독일의 재정 건전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영국은 파운드화의 국제적 위상이 점점 낮아지면서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부채 비중이 높고 국채 발행을 통한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영국 정부 및 정치권의 조세 및 지출 자율성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지출을 늘리고 싶지만, 그때마다 국채 투매로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공약 이행을 포기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당연히 유권자의 실망과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노동당과 보수당 양당은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번갈아 정권을 잡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야당 시절에는 방만한 재정 운용과 복지 혜택 축소를 비난하지만, 막상 정권을 잡아도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지출 확대를 시도하는 순간,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금융시장이 발작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영국 총리 평균 재임 기간이 500일 미만으로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진 것은 이와 같은 원인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햄을 비롯한 노동당 내부에서 인기 있는 인물 대부분은 정부 개입 및 재정 집행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금융시장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연기금마저 외면하는 영국 국채

영국이 재정 부실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년 재정 흑자가 GDP의 1.3% 규모로 유지돼야 하지만 금융시장은 이러한 상황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영국 국채 매입을 중단하거나 계속 축소하고 있다. 오랫동안 영국 국채의 주요 구매자였던 영국 연기금도 국채 투자를 중단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선택의 폭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투자자가 굳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경제구조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영국 국채를 선택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권이 부채의 덫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급진 정치 세력은 꾸준히 세력을 키우고 있다. 과거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가 주도하는 개혁당은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민 중단을 포함, 화끈한 공약을 내세우는 개혁당이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영국 정치권은 더욱 큰 혼란에 빠질 것이며 차입 비용도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화끈한 말은 유권자를 열광하게 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국채 금리 상승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권, 그중에서도 노동당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민의 지지도를 유지하는 묘수를 내놓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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