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대’ 호화 전용기 여행…제재 비웃는 푸틴 측근들
트럼프 행정부 무관심도 영향

서방의 전방위 제재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들의 호화 생활을 멈추진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 특권층을 겨눠 제재의 그물을 촘촘히 죄어왔지만 이들은 여전히 서방산 최고급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항공기 수입 데이터와 비행 추적 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이 제재를 비켜 가며 서방 제조사의 비즈니스 제트기를 계속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적인 장면이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있다. 세계 부유층이 선호하는 7500만 달러(약 1169억원)짜리 봄바디어 글로벌 7500 한 대가 이곳에 세워져 있다. 이 제트기의 주인은 러시아 국영 방산기업 로스테크의 세르게이 체메조프 최고경영자(CEO)다. 푸틴 대통령과 옛 소련 정보기관 KGB에서 함께 몸담았던 그는 전쟁 전만 해도 스페인 등 유럽을 즐겨 찾았지만 제재가 강화되자 발길을 두바이와 튀르키예, 동남아시아로 돌렸다.
항공 추적업체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체메조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최소 6차례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왔다.
푸틴 대통령의 오랜 측근 아르카디 로텐베르크, 방산업과 얽힌 신흥재벌 이고르 케사예프 역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이면서도 서방산 제트기를 굴리고 있다. 푸틴 집권 이후 정부 계약을 따내며 부를 쌓은 로텐베르크는 2022년 말부터 캐나다 봄바디어의 글로벌 제트기 두 대를 운용하며 UAE와 아제르바이잔의 휴양지를 오갔고, 케사예프는 2023년 봄바디어 글로벌 익스프레스를 들여왔다.
매체는 “러시아 엘리트들이 전쟁 이후 생활 방식을 일부 바꿨을 뿐 제재가 이들의 국제적 일상을 크게 옥죄진 못했다”고 짚었다. 런던과 프랑스 리비에라, 스위스 알프스를 누비던 이들이 이제는 UAE와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으로 무대를 옮겼다는 것이다.
비결은 중개업체를 낀 우회 거래다. 매체에 따르면 유럽의 항공 중개·관리 회사들이 봄바디어나 걸프스트림 제트기를 신규 또는 중고로 사들인 뒤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UAE·오만·카자흐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등록하고 다시 러시아 측에 넘기는 식이다.
서방 제품의 러시아 유입이 최근 다시 늘어난 배경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느슨해진 제재 집행도 꼽힌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국장을 지낸 존 스미스는 현 행정부가 마약 밀매와 이란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러 제재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재 이행은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며 “회피 수법을 추적하고 차단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지금 행정부는 러시아 압박에 집중하지 않기로 했다”고 꼬집었다.
박동휘 기자 slypd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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