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108>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플루언서가 된 오페라 속 여왕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순간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하는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어떤 작품은 처음 만났을 때 오히려 더 많은 물음표를 남긴다. 거대한 압축 파일을 메모리가 부족한 컴퓨터로 억지로 열 때처럼 버벅거리며 조금씩만 열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며 여러 경험과 감정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그 안의 내용이 천천히 풀리기 시작한다. 예술은 어쩌면 한순간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에서 함께 살며 조금씩 이해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최근에도 종종 지난겨울 독일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본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공연을 감상하는 동안에는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품고 돌아온 수많은 물음표를 지난 몇 달 동안 조금씩 풀어가며, 그 안에서 얻은 생각이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조금씩 바꾸고 있음을 느낀다.
도니체티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 등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이다. 특히 1835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그의 대표적인 비극 오페라이자, 벨칸토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 속 인간 심리의 균열과 권력의 긴장을 치밀하게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메리 스튜어트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다. 두 사람은 각각 신교(영국 성공회)와 구교(가톨릭)를 상징하는 존재다. 실제 역사 속 두 여왕은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원작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과 오페라를 거치며 둘은 무대 위에서 정면으로 충돌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정치적 위협이 되는 메리 스튜어트를 오랫동안 감금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녀를 향한 불안과 열등감을 숨기지 못한다. 메리 스튜어트는 왕가의 정통성과 혈통 그리고 여성적인 매력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존재였고, 이는 후계 문제와 정통성 논란 속에 있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끊임없는 위협이었다. 여기에 엘리자베스 1세가 총애하는 레스터 백작이 메리 스튜어트에게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더해지며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권력과 사랑, 질투와 정치, 종교와 왕가의 대립이 서로 얽혀 결국 메리 스튜어트는 처형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향하게 된다.
당시에도 이 작품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군주를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로 묘사했다는 점, 무엇보다도 당시 유럽 사회에서도 여전히 민감했던 구교와 신교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도니체티는 엘리자베스 1세보다 오히려 메리 스튜어트를 희생자이자 순교자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검열 문제로 공연이 번번이 무산되거나 수정되기도 했다.
또한 공연 준비 과정에서는 두 주역 소프라노 사이의 갈등이 실제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대립 장면 리허설 도중 엘리자베스 1세 역의 안나 델 세레가 실제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메리 스튜어트 역의 주세피나 론치를 공격했고, 주세피나 론치 역시 맞서 싸우며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기도 전부터 이미 사회적·정치적 논쟁과 인간 감정의 폭발 한가운데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함부르크 공연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출’이었다. 생각해 보면 오페라는 참 독특한 장르다. 200~300년 전 작품일지라도 오늘날 다시 무대에 올려질 때는 연출이라는 통로를 통해 현재의 삶과 적극적으로 연결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오페라 속 왕과 귀족은 어느 날 현대의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되고, 군인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소셜미디어(SNS) 속 스타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무대장치와 조명 역시 현대 기술을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오늘날 피아니스트 역시 19세기 초·중엽에 살던 프레데리크 쇼팽의 곡을 연주할 때 당시 사용하던 플레이엘이나 그라프 피아노 대신 현대 콘서트 그랜드를 사용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하나의 현대적 연출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페라는 그 가능성을 훨씬 더 직접적이고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오페라극장에서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곤 한다.
현대의 삶과 이어지는 오페라
이번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의 프로덕션은 독일의 대표적인 연출가 카린 바이어의 연출이었다. 독일 현지 평단은 이번 연출에 대해 “두 여왕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인플루언서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억지스럽지 않게 동시대적이 된다”고 호평했다.
실제로 무대는 시종일관 회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높은 벽 한쪽에는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감옥 같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여왕을 오늘날의 ‘슈퍼 인플루언서’처럼 그려낸 설정이었다. 수천만 명, 때로는 수억 명 그 이상에 이르는 팔로어를 가진 존재가 대중의 감정과 사고를 움직인다는 점에서, 현대의 인플루언서는 어쩌면 과거의 군주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 역사 속 두 여왕 역시 직접 만나기보다 편지와 소문, 타인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속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경계했다. 메리 스튜어트는 끊임없이 음모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소비됐고,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주변 신하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 속에서 메리 스튜어트를 더욱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둘은 서로의 실제 모습보다 타인에 의해 끊임없이 가공되고 전달된 ‘이미지’ 와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설정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끊임없이 정보를 만들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삶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왜곡 가능성 또한 조용히 드러낸다. 누군가의 짧게 편집된 영상, 자극적인 문장, 알고리즘이 반복적으로 밀어 올리는 이미지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흔든다. 최근 화두가 되는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 기술은 그 경계를 더욱 흐리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시뮬라크르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실제보다 이미지가 더 강력한 현실이 되는 시대라는 의미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진실 그 자체보다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편집되는 이미지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약 450년 전에도 인간은 서로를 오가는 편지와 소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오해하고 갈등했다. 오늘날 우리는 AI와 스마트폰이라는 훨씬 정교한 기술을 손에 쥐고 살아가지만, 인간 사회의 본질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마지막 처형 장면이다. 전통적인 연출처럼 사형집행인이 등장하는 대신, 무대에는 두 명의 카메라맨이 등장했다. 메리 스튜어트는 카메라 앞에서 자기 억울함과 감정을 토해내듯 노래한다. 자기 존재를 끝까지 기록하고 증명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곧 그것이야말로 오늘 시대의 인간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기록하며 소비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공유되어야만 비로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시대 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술 작품 속 죽음은 단순한 육체의 끝이 아니라, 인간을 옭아매던 어떤 갈등과 욕망, 두려움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메리 스튜어트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기를 옭아매던 권력과 시선, 왜곡과 갈등에서 벗어난다. 무대 마지막 순간, 회색 공간을 떠나는 그녀 얼굴에는 오히려 해방감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시대에는 과연 무엇이 사라져야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난 뒤 오래 남은 것은 16세기 여왕의 비극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미디어의 시대에 관한 질문이었다. 빠르고 자극적인 이미지가 끊임없이 소비되는 시대에,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나는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누군가를 더 자극적으로 소비하거나 왜곡하기보다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감정과 침묵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아직 음악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안은 채, 오늘도 다시 연습실 피아노 앞에 조용히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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